[월드리포트] "反아베 모여라"…일본판 민주대연합 가시권

최선호 기자 choish@sbs.co.kr

작성 2015.12.08 10: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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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까요? 지리멸렬한 일본 야권에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反아베, 개헌 저지로 뭉쳐라!" 일본판 민주대연합이라고 할까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내다보고 야권은 선거공조와 통합 움직임에 시동을 걸었고, 시민사회는 이를 엄호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직은 미풍에 불과하지만, "정치는 생물(生物)이다"라는 말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적용되는 말입니다.마츠노 유신당 대표(좌)와 오카다 민주당 대표(우) 야권공조 협의, 어제(7일)
어제(7일) 일본 국회에서 오카다 민주당 대표와 마츠노 유신당 대표가 만났습니다. 민주당과의 야권 공조에 적극적인 마츠노 대표가 지난 주말 유신당 대표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 대비한 협력 강화에 합의하고, 당장 내년 1월 시작되는 국회에서 '통일회파'를 구성해 원내 협력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합당을 염두에 둔 움직임입니다.

민주당과 유신당의 협력은 지난 9월 강행처리된 '집단적자위권 관련 안보법제 반대'가 핵심 고리입니다. 전쟁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에 위배된다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의원(총원 242명), 중의원(총원 480명) 합쳐서 자민당 국회의원이 406명입니다. 민주당은 131명, 유신당은 26명에 불과합니다. 민주당과 유신당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당장은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1 더하기 1은 2가 될 수도, 100이 될 수도 또 반대로 0이 될수도 있는 게 정치겠지요.

선거공학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최근 일본 언론에 아래 표 같은 '다양한 계산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도 소선거구제입니다.)홋카이도 삿포로시 아츠베츠구 최근 3차례 선거결과
2009년 중의원 선거 때는 민주당이 자민당에 이겼던 곳입니다. 3년 뒤인 2012년에는 자민당이 승리했습니다. 당시 야당 표를 모두 모으면 자민당 후보가 받은 12만8,435표보다 더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실시한 선거에서는 야당 표를 모두 모아도 자민당 후보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어느 경우에든 표차는 근소합니다.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정확하게는 일본은 석패율제도가 있어서 2등을 해도 당선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야당의 선거 공조가 강화된다면 이렇게 역전 가능한 지역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야당 성향의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신문 뿐만 아니라 여당 성향의 요미우리, 산케이신문까지도 이런 저런 선거공학적 분석글을 자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기대감에서 혹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여다 보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게 일본 공산당(국회의원 32명)입니다. 안보법제 정국에서 가장 큰 성장을 했고, '독자 후보 노선'을 한번도 접었던 적이 없는 공산당이 '야권 공조'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분명 큰 변수입니다.

그런데 공산당도 야권 공조에 큰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은 안보법제 폐지를 위해 야권 연합정권을 구성해야 한다며,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진해서 공산당 후보를 철회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독자후보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일본 공산당으로서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지난 8월 일본 국회 앞에서 진행된 안보법제 반대 시위, 일본판 민주대연합의 동력
일본 시민사회단체들이 '개헌 저지'를 위해 야권 연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안보법제 반대 투쟁을 주도했던 청년조직 '실즈(SEALDs)나 시민사회 단체들은 "각 야당이 단독으로 당선을 자신할 수 없는 지역구에는, 개헌 반대 시민후보를 내고 각 당이 함께 지지하는 방식"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일본 민주주의, 입헌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압력이, 범민주-범야권 연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한때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하다가 이제는 군소야당 지도자로 쪼그라든 오자와 이치로도 '올리브 나무 구상'이라는 걸 내놨는데, '야권 통합 명부'를 만들어서 선거에 나가자는 내용입니다.

야권 표의 사표(死票)화를 최대한 방지하자는 구상으로 이 역시 야권통합을 겨냥한 목소립니다. 일본 야권 결집이 가시화되면 십시일반으로 합류할 세력이 적지 않다는 얘기겠지요.

물론 정치공학적인 과제가-사실 정당 통합과 협력에는 이런 정치공학적인 과제를 푸는 게 휠씬 더 어렵죠- 적지 않습니다. 당장 민주당과 유신당이 합당을 하려면, 각 정당의 비례대표들 의원직 유지가 관건입니다. 

의원직 자체도 정치인들에겐 중요한데다, 그 의원 머리수라는 게 각 당의 지분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두 정당이 각자 해산하고 신당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이미 해산과 통합을 여러차례 거친 유신당으로서는 '비례대표 승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애매한 상황입니다.

또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민주당은 "해산하고 들어와라"며 '유신당 합병'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선거의 왕'(여왕은 이미 한국에 있으니까) 아베 총리가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입니다. 지금은 부정하고 있지만, 야당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중의원까지 해산해서 내년 7월 중의원-참의원 더블 선거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상황과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앞으로 몇달, 일본 정치권에서도 별의별 '묘수'와 '꼼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시민사회의 압박으로 야권이 협력하고 결집하는 경향은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거대 여당을 상대로 지리멸렬하기는 한국이나 일본의 야당이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아직 바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면 일본은 그나마 바닥을 쳤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