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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 대사] 영화 '내부자들'…"상구야 저들은 괴물이야"

[이 영화, 이 대사] 영화 '내부자들'…"상구야 저들은 괴물이야"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보수 일간지의 논설주간이라는 이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맞은편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으로 이 말을 듣고 있는 이는 재벌 총수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유력 대권후보에게 총수님이 반말로 다그칩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 어찌 됐노?" 대통령 자리를 눈앞에 뒀다는 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합니다. "이 장필우가 목숨 걸고 막고 있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영화 속에서, 돈과 권력과 붓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연일 술판을 벌입니다. '개, 돼지' 안주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질펀한 술판은 참 "단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크린 밖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재벌하고 대권후보, 언론이라...정의롭다, 정의로워!"

개인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영화 안 좋아합니다. 예술은 모름지기 상징과 함축이 많을수록 '클래스'가 생기는 법이라는 고리타분한 편견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도끼와 톱으로 신체를 훼손하고 욕설과 자극적인 대사들이 난무하는 영화 '내부자들'은 결코 '예술적'인 영화는 못됩니다. 심지어 보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한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인물들과 상황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자극적입니다. 영화 속 '내부자들'의 관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언론'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논설주간 이강희는 몹시 과장된 캐릭터입니다. 선악과 부패의 정도를 떠나, 언론사 논설주간이라는 자리가 현실 속에서 그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가 못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재벌 총수와 정치인의 캐릭터 역시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겁니다.

예술성은 떨어지고 현실성도 부족하면 이야기의 얼개나 구성이라도 참신하고 기발해야 하는데 '내부자들'은 사실 그렇지도 못 합니다. 재벌과 정치와 언론의 유착, 이들에게 배신당한 정치깡패, 실력은 출중하지만 '족보'가 없어서 홀대받는 젊은 검사. 약자들의 통쾌한 복수극과 강자들의 몰락, 처음부터 끝까지 익숙하고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면으로 보나 식상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관객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데도 그렇습니다. 웬일인가 싶어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에게 감상을 물으니 '베테랑'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1인 시위 중이던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이른바 '맷값' 2천만 원을 건넸던 재벌가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베테랑' 말입니다.

구체적인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베테랑과 달리 내부자들은 정치-재벌-언론의 유착이라는 추상적인 소재에 상상력을 덧붙인 이야기입니다. 재벌만을 대상으로 했던 베테랑의 비판의식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패로 확산된 반면 현실성은 다소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많은 관객들은 두 영화에서 같은 것을 봤다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관객들이 두 영화를 연장선상에 두는 것은 단지 두 영화에 묘사된 우리 사회가 닮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닮은 건 어쩌면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입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닌 베테랑의 관객들과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고. [저] 진짜 조직을 위해서 개처럼 살"지만, "줄도 없고 빽도 없"어서 늘 밖으로만 빙빙 돌아야 하는 '내부자들'의 관객들. 이른바 '내부'에 계신 그분들이 말하는 "대중"들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내부자들'은 논설주간 이강희의 입을 빌려서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인정합니다. 관객들이 그 괴물들을 보며 '베테랑'을 기억하는 건 돈 없고 줄 없고 빽도 없지만 '가오'만은 포기하지 않은 탓입니다. 그래서 괴물들은 이 숫자를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천341만3천530.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베테랑의 관객 수입니다. 올 시즌 개봉한 영화를 통틀어서 최다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내부자들'이 '괴물'인 건 베테랑에서 내부자들로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의 엄중한 발자국 소리를 그들만 못 듣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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