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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두환 씨가 YS 상가를 찾은 까닭은?

[칼럼] 전두환 씨가 YS 상가를 찾은 까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문객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단연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화합과 통합의 장이 됐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씨의 조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반 농담조로 그러더군요. 전두환 씨가 국민 모두로부터 박수 받은 일은 YS 조문이 처음이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은 의외였고 파격이었습니다.

김영삼, 전두환 두 사람은 보통 악연이 아닙니다. 정확히 20년 전 벌어졌던 일을 되돌아보면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 알수 있습니다. 1995년 11월 30일, 당시 서울지검특별 수사본부는 전두환 씨를 내란 혐의 등으로 전격 소환합니다. YS 지시로 만든 이른바 5.18 특별법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이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12월 2일, 연희동 골목길에서 측근들을 뒤에 세우고 격하게 반발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때 전두환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가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자 하는데 대한 믿음을 상실한 채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중략) 취임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 대통령은 저를 내란의 수괴라고 지목해 과거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 세력과 야합해 온 김대통령 자신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진은 1996년 8월 26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두환, 노태우 피고인이 재판 시작에 앞서 서있는 모습.
고향 합천으로 내려간 전두환 씨는 급파된 검찰 수사팀에 체포돼서 서울로 압송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1995년 12월 3일 새벽의 일입니다. 전두환 씨는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습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거치긴 했지만 전 씨에 대한 모든 사법 처리 과정의 총 감독은 당시 대통령인 YS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전두환 씨 입장에서 보면 YS로부터 가장 핍박 받은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약 2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YS도 5공 정권 당시 전두환씨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3년 넘게 연금을 당해 아들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고 83년도에는 목숨을 건 23일 간의 단식 투쟁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측근과 가족들이 입은 고통은 말로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 악연이 있는 YS 상가에 왜 전 씨는 조문을 갔을까요? 굳이 가지 않아도 시비 걸 사람도 많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저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우선은 고인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박해하고 박해받은 악연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도 인생 말년에 접어든 상태에서 악연을 풀고 싶은 심정 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범한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요?
"나 YS한테 많이 당했어. 그렇지만 난 이런 사람이야" 뭐 이런 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전두환 씨가 쉽지 않은 조문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전직 대통령의 책임감 때문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니 누구니 해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입니다. 현직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아직도 천 억이 넘는 추징금을 어떻게 할지, 드러난 재산 다 내놓을 처지인 자식들 걱정으로 밤잠을 못이루기도 하겠지만 지역 감정이다 세대 갈등이다 여야 갈등이다 남북 갈등이다 등등으로 사분오열돼 있는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YS 상가에 조문을 간들 누가 그리 환영할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YS의 맹렬 지지자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리는 측근도 있었을 겁니다. 조문 한 번 간다고 미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기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간 것은 자기가 가면 이 분열되고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YS 국가장이 진행될 때 몇몇 사람들과 만약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타계한다면 장례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수 의견은 두 사람의 경우는 국가장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 이었습니다.

아직도 두사람이 집권 과정과 통치과정에서 저지른 일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고 그들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국가장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국가장 불가론의 핵심입니다.

국가장을 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광주 민주화 항쟁 피해자나 유족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할 국가적 이벤트가 우리사회의 갈등을 새삼 부각시키는 자리가 될 것이란 것이지요.

물론 아직 살아있는 두 전직 대통령의 장례 형식을 운운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정하기는 하나 이미 8순을 넘겼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병이 깊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이고 보면 우리 사회가 말 많았던 두 전직 대통령의 장례 형식을 두고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국가장이 어려울지 모르지만 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들의 공과와는 별도로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한 사회의 원로나 지도자에 대한 장례를 격식을 갖추어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제의를 통해 한 사회의 통합이 이루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있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장례가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당사자들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건강할 때 '광주'를 방문할 것을 간곡히 권하고 싶습니다.

퇴임한 이후에 집권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백담사에 유배됐고, 국회에 끌려가 모욕을 당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넘는 감옥살이에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빼앗긴 내가 뭘 더 사과해야 하느냐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공동체를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민주영령들에게 깊이 고개숙이는 그 행동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의 수 많은 응어리가 풀릴 수 있습니다.
YS 상가에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가고 보니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수를 받고 "역시 '전통'(전두환 대통령)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전두환다운 또 한 번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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