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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짜 사나이’ 그리고 한 군인의 죽음

‘평균치’보다 ‘이상치’에 분노하는 사회

[취재파일] ‘진짜 사나이’ 그리고 한 군인의 죽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 군대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면입니다. 부사관 학교에 입소한 한 일본 여성이 어설픈 한국말로 엉뚱한 질문을 하다 소대장에게 혼쭐이 납니다.

일본인 : 질문이 있습니다.
소대장 : 뭡니까?
일본인 : 제가 눈썹 문신하고 왔는데 그거 실패해가지고 너무 이상해졌습니다.
(‘한 사람의 양심이 몰고 온 파국’이란 자막이 나오고…)
소대장 : 본인이 눈썹 문신을 했는데 실패해서 이상해진 걸 왜 소대장한테 이야기합니까?
일본인 : 아… 맞습니다. (고개를 숙인다.)
소대장 : (화를 내며) 눈썹 지워달라고 얘기하는 겁니까, 지금?
(내무반 분위기는 삭막해진다.)


아래 내용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선임 : 고참들 숟가락 어디 있어?
후임 : 죄송합니다. 깜빡한 것 같습니다.
선임 : 깜빡해? 왜 한 번 말하면 못 알아듣는데? 군 생활 편하지?
후임 : 아닙니다.
선임 : 편한 데 있으니 꿀 빨고 있는 거지. 넌 군 생활 내내 짬이나 버려.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의 임무인 잔반통 버리는 걸 계속 하란 뜻) 아, XX 정말 패고 싶네.


이 후임은 최근 뉴스로 보도해드렸던 이 모 일병입니다. 지속적인 인격 모독, 구타 가혹행위로 힘들어했던 이 일병은 지난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순직 의결서에 있던 폭언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해 상급자에게 이상한 질문을 했든, 고참의 숟가락을 챙기지 않았든, 둘 다 상급자를 언짢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행위를 관통하는 줄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하나는 보는 이의 배꼽을 잡게 했지만, 또 다른 하나는 소중한 생명을 잃게 만들었던 이유가 됐습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1년 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2012년부터 올 하반기까지 6차례 실시한 교육부의 조사를 보면 학교 폭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교육부가 실시한 학교 폭력 실태조사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발생한 폭력 사실을 조사 설문지에 기재하지 말라고 강요했다는 의혹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제기했습니다.…지난 4월 학교 폭력으로 학생 2명이 숨진 한 고등학교에서도 앞서 진행된 실태 조사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봤다고 진술한 학생은 단 1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사망 사건 이후 경찰 조사가 진행된 뒤 15건의 학교 폭력이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이 모 일병 이야기입니다. 역시 순직 의결서의 내용을 재구성합니다.

“선임 : 포대원들이 너를 다 싫어해. 그 사람들이 너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웃지도 마. 자살하든 말든 신경 안 써. 자살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 … 자살하면 너의 부모님이 널 보러 올 거고 (부검할 때) 네 시신이 산산 조각이 날거고 우리 포대는 해체되고. 그런 무서운 생각 먹으면 너는 정말 이기적인 거야.”

“결국,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소속대 전입 후 소속대에 만연한 부조리 및 이를 보고한 후 발생한 따돌림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판단됨. (정신과 치료를 자청한 뒤) 우울증상이 확인되었고 기분부전장애 등을 진단받았으나 추가적인 진료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고 담당 간부는 보호자에게 허위보고까지 하였음.”


학교는 폭력 사실을 써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습니다. 군대는 더했습니다. 부조리를 고발한 게 발각되자 이기적이라며 왕따를 당했습니다. 구타와 가혹행위로 이어졌습니다. 미운털 박힌 그 병사는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치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조직의 안정, 질서, 위계, 서열….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인격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며 필요 이상의 타박을 하는 과정을 개그 코드로 생산했고, 시청자들은 웃음으로 소비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비슷한 상황 속에서 절망감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폭력이 있다, 살기조차 어렵다 호소해도, 학교는 ‘조직의 배신자’가 되지 말라며 교육했고, 군대에서는 가혹행위란 대가가 따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춘은 또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일병 자살 사건의 결론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한 병사, 그리고 치료를 방치한 지휘관을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개인의 책임으로요. 폭력적인 선임들, 무관심했던 지휘관, 이게 끝이었습니다. 여기에 군 조직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조직의 폭력을 당연시하고 내면화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까지, 풀어내야 할 게 더 있어 보입니다.

가깝게는 윤 일병 사망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 병장에게 분노했습니다. 언론은 그의 친구까지 인터뷰하며 왜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증명했습니다. 분노는 이 병장이라는 ‘이상치’에 맞춰졌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평균치’ 문제는 크게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내면화하고 이를 용인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 평범한 사람들의 그 ‘평균치’ 말입니다. ‘이상치’보다 ‘평균치’에 대한 반성, 사회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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