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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누군가 악몽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파리 테러 현장, 그 피해자들의 시신 더미 아래 누워 겨우 목숨을 건진 22살 여성 생존자 이소벨 바우더리가 남긴 글입니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금요일 밤의 록 공연이었어요. 모두가 춤추고 웃고 있는 행복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정문으로 남자들이 들어왔고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것이 쇼의 일부라고 믿었는데…

테러를 넘어선 학살이었어요. 내 바로 앞에서 십여 명이 총에 맞았고 바닥은 피바다가 됐어요. 여자친구의 시체를 안은 남자들의 울음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고…. 사랑하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 저는 그 속에 누워 한 시간 넘게 죽은 척을 하고 있었어요.

숨을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고 울음도 참았어요. 테러범들에게 그들이 원하고 있을 공포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때 세상이 너무 끔찍했어요. 모든 것이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독수리처럼 원을 그리며 돌던 테러범들의 모습과 정교하게 총부리를 조준해 사람들을 쏘는 비현실적인 장면은 평생 나를 쫓아다닐 거예요. 그 순간엔 누군가 이 모든 게 악몽이라고 말해주기를 빌었어요.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생존자로 저는 밝히고 싶은 게 있어요. 바로 영웅들에 대해서 말이죠. 자기 목숨을 걸고 내 머리를 감싸준 남성, 수백 명을 구한 경찰, 길에서 나를 위로한 낯선 사람들, 생존자들에게 집 대문을 열어준 여성, 새 옷을 사다 줘서 피로 얼룩진 옷을 안 입어도 되게 해준 친구. 그들 모두가 영웅이었어요.

그들은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줬어요. 이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겠다는, 절대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죠. 살아 돌아오지 못한 80명의 사람들, 오늘 아침 다신 일어나지 못했을 그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해요. 어떤 말로도 그 고통을 치료할 순 없을 거예요. 다만, 제가 그들의 마지막 숨결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큰 영광이었어요. 

그때 저도 곧 희생자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요. 희생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테러범들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을 거라는 사실을요. 모르는 사람들의 피 속에 누워 22년간의 내 인생을 끝낼 총알을 기다리던 순간, 저도 사랑한 모든 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였기 때문이에요.

지난밤 많은 이들의 삶이 영원히 변했어요. 그리고 이 비극의 죄 없는 희생자들이 꿈꿨지만 이제는 지속할 수 없는 그 삶을 살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에요.

편안히 잠들길, 당신들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거예요."

기획/구성 : 김도균, 김민영
그래픽 :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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