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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얀마 총선'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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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브스웨건 >
미얀마 총선, 
‘저게 도대체 뭔데’
 이 난리야? 

스마트폰을 봐도,
( “미얀마 총선이 왜?” )
TV를 틀어도,
( “미얀마에 무슨 일 있어?” )
계속 눈에 들어오는 ‘미얀마 총선’ 

전 세계가 왜??
미얀마 총선에 관심을 갖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등장한 스브스웨건! 
스브스뉴스가 준비했습니다. 


1960년대 초 아시아의 부국 가운데 하나였던 ‘버마’ (미얀마)
풍부한 자원으로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은 우리나라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1962년 ‘버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이때부터 국가명도 미얀마로 바뀝니다.

1960년대 당시 터키, 라오스, 베트남 그리고 한국까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정도로
세계는 '쿠데타의 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1988년 학생 주도로 미얀마에선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미얀마 군부는 무력으로 3천여 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민주화 운동을 이끈 아웅산 수치는 가택연금돼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1990년 시민들은 선거로 민심을 보여줬습니다.
자유총선거 결과 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겁니다.
하지만 군부는 돌연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을 투옥했습니다.

그 뒤 20만 명 내외였던 군인 수는 
2005년 이후 4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군사정권의 감시와 탄압도 더욱 거세졌습니다.

군사정권은 2007년 일부 소수민족이 독립을 요구하자 약 3천 개의 소수민족 마을을 무참히 파괴했고, 5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을 타지로 내쫓았습니다. 
외화벌이를 위해 주민들은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외국기업의 건설현장이나 관광지에 강제로 동원돼 노역을 한 주민만 300만 명. 이중 1/4 이상은 어린아이였습니다.

2007년 9월 급기야 미얀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님들이 거리에서 평화시위를 벌였습니다. 수많은 시민들도 스님 뒤를 따랐습니다.
평화시위였지만 군 병력은 승려와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위대를 취재하던 일본인 사진기자도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가해지자 군사정권은 최근 들어서야 야당의 정치적 활동을 보장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자유 보통선거가 25년만에 열린 겁니다. 
야당은 압승을 거뒀고 군사정권도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53년간 이어온 미얀마 군부독재의 종식이 눈 앞에 다가온 겁니다.
인구 5천 5백만, 1인당 국민소득 5천 달러로
경제적으론 아시아의 평범한 나라에 불과한 미얀마.

하지만 군사정권의 극심한 탄압 속
수많은 시민들이 보여준 희생정신과 민주화 열망은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그래서 지금 민주화를 앞둔 미얀마에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린 겁니다.

미얀마 총선을 계기로 세계인들이
민주화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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