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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가 북한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취재파일] 우리가 북한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고된 한 주였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직접 간 것도 아닌데, 현장에서 들어온 영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대한민국 질곡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뉴스의 눈물은 천박하다는 제 철학이, 이들의 역사 앞에서 참 건방지게 느껴졌습니다.

눈물을 잠시 가라앉혀 보겠습니다. 가족 분들이 나눴던 대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뉴스가 워낙 극적인 만남과 이별의 순간에 치중되다보니 대화 내용을 오롯이 보여드리진 못했습니다만, 북의 가족들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게 다 김정은 원수님 덕분이다."란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정권에 대한 고마움은 잊을만하면 나왔습니다. 모두들 예상하셨을 겁니다. 꽉막힌 북한 체제를 모르는 건 아니니까요. 대학 시절 전공도 정치학이었고, 북한 관련 수업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에 권력이 일상을 통제하는 북한 사회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가장 번뜩이게 했던 표현은 "김정은 원수님 덕에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서 가족을 만나게 됐다."는 말이었습니다. '상봉'을 이끌어냈던 제도적 도움, 이에 대한 감사를 권력을 향해 표현한 것과는 그 화법이 매우 달랐습니다. 이건 일종의 기도문에 가까웠습니다. 80대 노인이 본인의 '장수'를 30대 초반 권력자의 수혜로 생각하는 표현 방식은, 일상 자체를 하느님 덕분에, 부처님 덕분에, 알라 덕분이라고 믿는 종교적 언어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우리 시각에선 이해하기 어렵죠. 북한 사회가 중세 사회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북한이 지금껏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힘의 원천이, 어쩌면 종교적 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방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전근대’, ‘중세’, ‘미개’라는 용어만으로 설명하면 끝일까요. 그저 김정은 정권의 ‘탄압’ 때문이라고 해석해버리고 말면 그만일까요.

조금 깊게 들어가 보죠. 북한 사회처럼 정치권력의 종교화되는 현상은 정치학에서 여러 차례 거론돼 왔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분야의 시초는 근대 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장 자크 루소입니다. 루소는 자신 명저 '사회계약론'을 '시민 종교'의 필요성으로 끝마칩니다. 루소가 말하는 '시민 종교'는 국가의 권위를 신성한 종교로 보고, 이를 통해 사회적 통합과 유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루소가, 정치의 종교화를 강조한다는 게 매우 의아한 일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계에서는 나치즘의 원류를 루소에서 찾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납득이 됩니다. 국가 개념이 지금처럼 견고하지 않았던 유럽 근대 사회에서, 일단 국가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하는 루소의 바람일 수도 있겠죠.

핵심은 정치권력의 종교화가 사회 통합으로 직결된다는 레토릭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화법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장수마저 권력의 수혜로 이해하는 그들의 언어를 보면서, 북한 사회의 통합 수준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다는 가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북한 정치에 대해 여러 차례 수업까지 들었던 저 역시도 북한의 정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가 언론 보도로 대했던 북한의 모습은, 주민들이 강압에 의해 ‘장군님’을 외치고 있고, 마치 풍전등화처럼 언젠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당위였습니다. 저 역시 폭압으로 형성된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믿습니다.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예상외로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표현은 ‘사회 방언’ 그 이상일 수도, 오히려 사회 통합을 견고히 만드는 메커니즘일 수도 있습니다. 좀 더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통일 대박’을 위해서라도 상대에 대한 이해는 더욱 필요합니다. 북한 사람들의 표현 방식을 지금 우리가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틀대로 '사회 방언'으로 치부해버린다면, 통일로 대박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북한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그들의 사유 체계가 어떤지, 그리고 그 사유체계로 어떻게 국민 통합을 이뤘는지, 더 나아가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남한의 정치 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수학이나 과학처럼 몇몇 천재 학자들의 몫이 아니라 통일을 대비한 국민 모두의 과제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사유체계는 통일 이후 우리가 맞닥뜨려야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이산가족 상봉 시즌 때마다 '우리는 한 민족' 이러면서 어깨동무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습니다.

물론 그 시작은 교육이 될 겁니다. 북한을 모르고는 통일 대박은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독일 통일 이후 교과서와 동독의 교과서를 비교한 논문 ‘동독과 신연방주의 역사 교과서 분단사 서술 비교 연구’(2010, 한국교육학 연구, 김상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논문의 결론으로 갈음합니다.

“동독의 분단사 서술이 특정한 분단사 인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진 폐쇄적인 것이라면 신연방주의 분단사 서술은 학생들로 하여금 상이한 해석을 담은 자료를 토대로 나름의 입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통일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적통일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이유는 동독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 신연방주의처럼 비슷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북한의 역사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의 교과서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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