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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위안부 협상 '연내타결', 가능한가?

[취재파일] 위안부 협상 '연내타결', 가능한가?
이번 정부 들어 첫 한일 정상회담이 지난 2일 마무리됐습니다. 회담 직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두 정상의 발언은 다음 두 문구로 정리됩니다. '조기 타결'과 '협상 가속화'.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박 대통령의 '연내 타결' 제안에 호응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회담 당일 한 지상파 뉴스는 이런 아베 총리의 발언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정말 아베 총리가 근본적인 입장을 바꾼 것일까요? 또 박 대통령의 '연내 타결' 제안에 동의한 것일까요?

● 바뀐 것은 없다

이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그간 위안부 협상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핵심은 '당시 위안부 범죄를 지시하거나 이행한 주체가 누구냐'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당시 일본 정부(군)가 관여했고, 따라서 일본 정부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최근 '인신매매' 운운하며 위안부 문제를 민간에 의한 범죄로 격하시키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일 책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두 해소됐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인도적 관점에서 지원금을 줄 여지는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선심쓰듯 합니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라는 국가에 책임이 있다면,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것은 '인도적 지원금'이 아니라 '법적 배상금'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국가책임' 인정 유무, 이것이 위안부 협의의 처음이자 끝이고, 또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관성 있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 2일 아베 총리의 발언을 뜯어보면 그 어디에도 국가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회담 직후 일본 정부가 일본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이미 해결된 보상 문제와 인도적 관점의 후속조치를 구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연내 타결이라는 시한은 정해놓지 않았고, 당분간 국장급 협의를 계속 가속화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베 총리 역시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BS후지TV에 출연해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종합해보자면,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은 달라진 게 없고, 연내 타결이란 시한은 합의한 바 없으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국장급 협의만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특히, 국장급 협의를 열심히 해보자는 건 지난해 11월 베이징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조우했을 때에도 이미 나눈 얘기입니다. 이를 근거로 "아베가 마무리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다는 걸 최초로 인정했다"고 평가하는 건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말하는 '조기타결'은 우리에게 '문턱을 낮춰라', 즉 '국가책임을 인정받을 생각은 포기하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아베 총리는 BS후지TV에 출연해서, " 서로 합의하면 이 문제를 다시는 제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한국 정부가 골포스트를 움직이고 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겁니다. 이를 두고 돌아가자마자 한국정부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는 고사하고, 한일관계 회복에 정말 관심이 있는 것일까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라고 아베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그렇다면 왜 지금 와서 정상회담을 한 걸까요? 위안부 문제 때문에 지금껏 만나지 않은 것인데 말이죠. 우리 정부 역시 이번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나, 일본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지금 만난 걸까요?

● 관객은 따로 있다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어떻게 성사됐는지 한번 거슬러올라가보겠습니다. 취임 이후 서로 만나지 않던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처음 얼굴을 맞댄 건 바로 지난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 때였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양 정상을 초청하는 형식을 갖췄습니다. 미국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한미일 3각 동맹이 단단해야 하는데, 그 한 축인 한일관계가 삐걱대니 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겁니다. 미국의 중재와 한일 양국의 움직임은 이때부터 가속화됐습니다. 올해 초 웬디 셔먼 美 국무차관의 발언 논란도,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속에서 나온 일종의 해프닝이었습니다. 미국이 올해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을 연달아 초청한 자리에서도 중재는 계속됐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한일 양국 모두 성의를 보여줄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별도로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좋은 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과거사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토로도 갈등을 빚고 있어서 한중일 정상회의에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난 9월 중국 열병식 참석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미국의 동맹국 중 유일하게 정상이 참여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한중일 정상회의 확정'이라는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이 선물은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바로 한일관계 회복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일 정상회담은 성사됐습니다.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한중일 정상회의 공식발표는 개최 며칠 전에야 발표됐습니다. 한일 정상회담 일정이 1일과 2일 사이에서 계속 왔다갔다하며 확정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행사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가 한일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불편한 중국도 배려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까지 감수하고 우리 정부가 한중일 회의를 개최한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관객이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적어도 서울에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끝났다"는 말로 회담을 망치지 않은 것 또한  미국 때문입니다. 아베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또 골포스트론을 반복한 것도 미국을 향한 투정이자 언론플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객석에는 양국 국민과 언론, 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있었겠지만, VVIP석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던 셈입니다.

● '연내 타결'은 가능한가

일본 정부의 기본입장이 어떻건, 양 정상이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공표한 만큼 정부 차원의 노력은 일단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당분간 국장급 협의를 가속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말 타결을 시도해 볼 요량이라면 차관이나 장관급으로 협의의 격을 올리거나, 대통령 의중에 더 가까이 있는 청와대 비공식 라인으로 갈아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양 정상이 결단한다면 조기타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타결된다는 건 일본 정부의 요구를 우리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핵심 쟁점인 국가 책임, 법적 배상은 절대로 일본이 수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이번 정상회담 때 타결이 됐을 겁니다.

지난 3일 아사히 신문은 일본 정부 측에서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을 증액해 생존자 47명의 복지사업에 쓰고, 아베 총리가 '마음으로부터 동정하며 책임을 느낀다' 식의 편지를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안을 지난 6월까지 절충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역시 위안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핵심사안은 비껴가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내 타결'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수용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할 것이고, 우리 정부가 주춤거리면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또 골포스트를 옮긴다"면서 (미국을 향해) 소리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실 이렇다 할 골포스트를 세운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만일 이번에 외교적으로 타결을 시도한다면 그 도덕적 우위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연내 타결'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실무자들의 귓가에서 계속 맴돌겠지요.

답이 안보이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어설픈 봉합과 타결은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을 뿐더러 결과적으로는 양국관계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좋은 의도입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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