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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닭장에서 사육된 금융산업…날아오를 수 있을까

[취재파일] 닭장에서 사육된 금융산업…날아오를 수 있을까
● "22년 만에 이뤄지는 보험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며칠 전 금융위원회가 '보험 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자평한 말입니다. 로드맵의 핵심은 '규제를 풀어줄 테니 경쟁하라'입니다. 세계 8위의 보험시장에 걸맞게 말입니다. 우선 상품 개발과 관련한 사전 규제를 없앱니다. 남들 것 베껴서 파는 '붕어빵 상품' 말고 창의적인 상품을 만들라는 겁니다. 보험상품 가격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전략에 따라 보험료를 높게 또는 낮게 받을 수 있단 얘기죠. 그리고 자산운용 규제도 완화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쟁 구도는 '비슷한 상품을 누가 잘 파느냐'에서 '소비자 구미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어떻게 만드느냐'로 바뀝니다. 소비자로선 싸고 좋은 상품들을 고르게 될 수 있습니다. 보험사엔 도약의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 규제가 풀리는 만큼 손해율(보험료 수입에서 보험금으로 나간 비율)이 높은 실손과 자동차 보험료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또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보험사는 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보험업계 전체적으로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깁니다. 한 보험회사 관계자는 "얼마 전 중소형 손해보험사들이 손해율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보험료를 올리려 할 때, '금융감독당국이 과연 허락해줄까?'가 업계의 관심사였다"며 "앞으로는 이렇게 눈치 보는 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설마 이대로 되겠느냐?'라는 반신반의의 눈길도 적지 않습니다. 93년 가격 자율화나, 03년 사전 신고제 등을 시행했지만, 당국의 규제는 없어지지 않았단 겁니다.
 
실제로 경쟁이 촉진될지, 소비자 편익은 커질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게 하나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보험 산업에, 더 나아가 금융 산업 전체에 이런 대수술이 필요한가란 부분입니다.
 
● 닭장에 갇힌 금융산업
 
금융당국은 이번 로드맵의 배경으로 '보험산업이 상품개발·자산운용 등에 대한 사전적 규제로 판매채널에 의존한 양적 경쟁에만 치중하면서, 질적 성장은 근본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렵죠. 살을 붙여 얘기해보죠. 80~90년대 보험시장 개방 이후 외국계도 들어오고, 많은 보험사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14개 보험사가 없어졌습니다. 이후 금융당국은 '보험회사 부실을 막는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규제가 많다 보니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도 금융감독당국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보험사들은 상품 경쟁보다는 마케팅과 판매망 경쟁에만 치중하게 됐습니다.
 
이는 비단 보험업계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규제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최경환 부총리가 말한 '은행 영업시간'도 연장선에 있습니다. 영업시간이 길다 짧다는 차치하더라도, 국내 은행의 영업행태나 전략에는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목 좋은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영업시간을 똑같이 하고, 비슷비슷한 상품으로만 경쟁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탄력 점포'가 498개나 있다고 하지만, 전체의 7%에 불과합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 탄력점포의 82%인 412개 점포는 입점해 있는 지자체나 기관의 업무처리를 위해 단순히 영업시간을 늘린 것들입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금융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큰 분야입니다. 금융 상품을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추가로 각종 비용과 수수료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견제와 감시의 눈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그동안 보험상품 구조와 보험료, 은행 이자와 각종 수수료까지 대해 금융감독당국은 일일이 통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약은 제대로 써야 하고, 과하면 독이 됩니다. 금융 회사들이 '소비자 보호'를 당국이 제시하는 상품 설계와 비용 규제 위주로 하다 보니, 정작 사전적으로 소비자들의 민원 발생을 막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상품 설계 문제나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당국 지침대로 했다" "직원 한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라며 변명할 뿐이었습니다.

금융당국이 보험회사 부실을 막는다는 이유로 금융회사 운영 전반에 대한 규제를 만든 것도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는 의지를 무뎌지게 만들고 수동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얼마 전 새로운 정책 시행을 위해 참여할 금융사를 공모했다.

그런데 금융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체적인 지침을 주거나, 아예 당국에서 정해주면 안되겠냐?'라는 반응을 보여 당황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융이 '좁은 닭장에서 사육되고 있다'고 비유합니다.

● "망하는 은행, 금융회사들도 나와야"
 
금융산업에 필요한 요소는 돈과 사람, 제도, 그리고 여기에 추가하자면 전산과 같은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나라 금융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입니다. 민간 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금융업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라는 틀에 갇혀서 경쟁 없이 안정적으로만 영업하다 보니 인재를 키우지도 않았고 키울 수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진 금융기술을 받아들이겠다면서, 씨티와 SC 등 여러 외국계 금융사들에 시장을 열고, 외국계 회사들 모시겠다고 여의도에 IFC 건물까지 만들었지만 달라진 게 뭐가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틀을 '닭장형'이 아니라 '목장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건전성을 유지하는 넓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서로 경쟁해 승자도 나오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망하는 곳도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울타리도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금융당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금융상품 온라인 슈퍼마켓'이나 '포털 공시 제도'처럼 소비자의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여 소비자가 스스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회사 간의 담합이나 불건전 행위는 일벌백계해 근절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금융당국과 금융회사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수십 년 동안 해온 관행을 단숨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소비자의 눈높이와 기준을 보면 매우 까다로운 편입니다. 정부가 말한 대로 무한경쟁의 장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서 소비자를 진정 무서워하면서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면, 우리 금융회사들의 세계시장으로의 도약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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