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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화 교과서 반대" 학생들이 광화문에 온 이유는?

[취재파일] "국정화 교과서 반대" 학생들이 광화문에 온 이유는?
교과서가 이렇게 뜨거운 이슈인 적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정부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행정예고하자, 관련 집회가 그야말로 ‘잇따르고 있습니다’. 백발의 교수, 사학과 졸업생, 예비 교사, 대학생들까지 가릴 것 없습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국정화 교과서를 반대하는, 또 지지하는 이들의 기자회견과 집회가 열리는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고등학생들이 나섰습니다. 학생들의 집회가 처음은 아니지만 시민사회단체나 학계의 기자회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인만큼, 이례적인 집회입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 저녁, 광화문 지하철역 인근으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 20여명을 만나러 갔습니다. 경찰에 집회 신고가 된 시각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저녁 7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 상당수가 7시 전에 도착해 학생들을 기다렸습니다. 전철을 타고 온 학생들이 도착한 시각이 8시쯤입니다. 예상했던 시각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이들의 집회 겸 기자회견은 시작됐습니다. 

상당수 집회, 기자회견에서는 이른바 '퍼포먼스'가 포함됩니다. 동물 보호를 주장하며, 동물 옷을 입고 우리 안에 들어가거나 탈핵을 주장하며 핵 이미지가 포함된 우산을 펼쳐보이는 등의 행동입니다. 언론 매체가 '그림'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고,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위해서 동원되는 방식입니다. 학생들의 기자회견이 시작됐지만, 이런 '퍼포먼스'는 볼 수 없었습니다.

준비해 온 피켓을 들고 선 학생들은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종이에 적어 온 발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의 발언 일부를 옮깁니다.

"저희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헌고등학교 2학년 구예서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결코 하나일 수 없습니다. 원뿔이 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면 동그라미처럼 보입니다. 옆에서 바라보면 세모모양으로 보입니다.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는 사람은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원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란 우리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반영합니다. 위치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를 낳는 큰 요인이 되고, 무수한 관점을 통일화시키는 방법은 힘으로 통제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관점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찬성 측은 (현 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좌편향됐다고 말합니다. 국정 교과서도 편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체제를 유지할 때-기자 설명) 좌우 논란이 되는 의견을 동시 기술하거나 역사학계의 판단에 따라서 중립을 유지할 있습니다. 저희는 현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검정 체제로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학생의 발언입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고 많은 삶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겪은 한국, 기업인이 겪은 한국, 우리가 겪는 한국은 모두 다릅니다. 역사가들은 그 무수한 사건과 무수한 관점들 중 몇 가지를 골라 역사를 펼칩니다. 따라서 역사의 관점은 다양합니다. 아니, 다양해야 합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때에만 역사는 비로소 진실 됩니다. 국정화는 단순히 교과서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의 가능성을 말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과서 내용이 북한 체제를 미화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집회 신고를 하고,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은 왜 일까요. 기자회견을 제안한 인헌 고등학교 양진영 학생을 만났습니다. 양진영양은 ‘소동’이라는 토론 동아리 소속입니다. 매주 다른 이슈를 선정해 토론하는 곳인데, 토론 주제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선정됐습니다. 학생들 의견이 비슷해 토론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위에 한번 참여하자는 생각이 든 양진영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이라고 합니다. 위의 발언을 담은 글은 양진영 학생을 비롯한 일부 학생들이 선후배동료 학생들에게 교과서 논란을 알리기 위해서 직접 작성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 학교 고등학생들 20여명이 이동한 만큼, 현장에 교사들이 동행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 교사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동행했다고 하니, ‘누군가가 시키지 않았을까’ 색안경 끼고 보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서 미리 물어봤습니다. 양진영 학생은 “이 시위는 저희가 토론을 하면서 먼저 하게 된 것이고요. 절대 어른이 시키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저희가 먼저 주도해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논란 내용을 알리고, 신청을 받는 식으로 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두시간 가량의 '아마추어' 집회가 마무리됐습니다. 학생들은 자리를 지키다가 집회가 끝난 뒤, 왔던 그대로 전철을 타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중간 지나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지켜봤습니다. 일부는 박수를 보냈고, 일부는 이들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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