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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빗살무늬토기는 왜 신석기 시대에 나왔을까?

[취재파일] 빗살무늬토기는 왜 신석기 시대에 나왔을까?
"신석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이런 문답, 아주 익숙하실 겁니다. 빗살무늬토기는 흙으로 빚어서 표면에 빗금을 새겨 넣은 고대 그릇입니다. 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 실렸던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사진은 다들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신석기 시대'는 인류가 돌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석기 시대를 다시 둘로 구분해 후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흔히 쓰던 도구의 재료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로 이어지는 구분법이죠. 이 구분법은 간단한 재료에서 다루는데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한 재료로 옮겨 가는 과정 자체가 문명의 '발달'을 보여줍니다.

모든 과정 사이의 변화에 큰 의미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변화에 가장 주목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둘째, 그 변화가 현재 우리 인류의 삶까지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급진적 변화는 바로 '농경사회'의 시작입니다. 사냥감을 따라 떠돌며 열매를 따 먹던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거죠. 자연에 지배당하던 인류가 자연을 이용하고 개발하면서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농사지은 곡식들을 저장하고 조나 기장 같은 곡물들을 끓여먹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릇이었습니다. 그날그날 따 온 열매를 바로 먹고, 사냥한 동물을 불에 직접 구워 먹던 구석기 시대엔 없던 물건입니다.
신석기 유물
농경사회 시작한 신석기 시대
같은 돌을 재료로 썼지만,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도구도 달랐습니다. 구석기 시대엔 자연석을 그대로 쓰는 '뗀석기', 신석기 시대엔 정교하게 갈아서 쓰는 '간석기'를 주로 썼습니다. 도구를 만드는 기술만 발달한 게 아니라 도구의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구석기 시대엔 없던 화살촉과 낚싯바늘 같은 것들이 신석기 시대 들어서면서 등장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교 땐 이런 것들을 모두 그냥 외웠던 것 같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특징은 무엇이고 유물은 무엇이고. 신석기 시대의 특징은 무엇이고 유물은 무엇이고. 청동기는 어떻고 철기는 어떻고. 그런데 이런 생각 한 번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왜 갑자기 농사를 짓고 활이나 낚시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아마 이럴 겁니다. "곡물을 재배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화살촉이나 낚싯바늘 같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이 대답은 사실은 반만 맞는 말입니다. 그 기술이 왜 발달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진 탓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어느 순간 저절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기술은 필요가 있을 때 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한 산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필요'를 만드는 건 '환경'의 변화입니다.

신석기 시대는 대략 1만 년 전쯤 시작됐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지구의 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중위도 지방까지 덮여있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 때입니다. 그 결과 지구의 환경이 현재 모습과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이처럼 물이 풍부해지면서 어족 자원이 급격히 늘었고,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각종 열매가 풍부해지고 농사가 가능한 환경이 비로소 만들어졌습니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의 종류와 구성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머드로 대표되는 큰 동물들이 멸절하는 대신 크기는 작고 동작이 빠른 동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발 빠르게 도망가는 동물들을 잡기 위해서는 창보다 훨씬 빠른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활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화살촉
낚싯바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로 개막한 특별전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는 환경의 변화라는 맥락을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유물과 신석기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전시입니다. 낚시를 하고 토기를 만들었다는 결과 대신 왜 낚시를 했는지, 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원인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학교 때 그렇게 머리 아프게 외워도 안 외워지던 지식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그릇 하나, 화살촉 하나를 통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삶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특히나 이 전시는 요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딜 가나 기술, 기술, 기술을 외치는 요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미디어들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수십년 전 한 시대를 풍미했다 곧 잊혔던 이른바 '기술 결정론'이 다시 대세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입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에 그랬듯이 모든 기술의 발달과 변화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인문학을 공부하고 역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변화된 환경에 주체적으로 적응한 신석기인의 지혜를 통해 급변하는 우리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해 보자는 이 전시의 기획 취지가 무척이나 공감 가는 이유입니다.

■ 전시정보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2016년 1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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