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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대패질과 국정 교과서

[이주형의 사소하게] 대패질과 국정 교과서
▲ 사진 출처 네이버 (명지대박물관 소장)

# 대패질이란 그냥 대패를 사서 나무를 깎으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대패를 샀다하더라도 나무를 깎기 전에 대팻날을 한참 숫돌에 갈아야한다. 또 대팻집 바닥면을 끌질한 뒤 사포로 가는 '대팻집 고치기'를 해줘야 한다. 그런 다음 대팻날이 머리카락 굵기만큼만 대패집 밖으로 나오도록 망치로 대패날 머리와 대팻집을 쳐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나무를 깎을 준비가 된 것이다. 

# 지금이야 목공일이 트렌디한 취미로 부상하고, 목수가 전문성있는 괜찮은 직업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목수들의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다. 기다란 작업대를 차려놓고 한쪽 귓바퀴에 지우개달린 연필을 척 얹은 흰색 러닝셔츠 바람의 모습이 당시 그 직업을 상징하는 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서 또는 동네에서 집을 수선하는 일이 있을라치면 그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고, 가끔씩은 직접 톱질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강화도에서 태어나 소싯적부터 목수일을 했던 목공 선생님의 코치를 받으며 대패질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대패질을 제대로 하면 톱밥 모양도 고르고 예쁘다는 것을. 그뿐 아니라 대패질 소리도 경쾌하고 균질하다. 팔의 움직임에도 무리가 없다. 톱질도 마찬가지다. 톱질 역시 물흐르듯 유연하고 무리없는 톱질이라면 멀찍이 떨어져 들어도 나무가 잘 켜지고 있구나, 제대로 잘리고 있구나 알 수 있을만큼 좋은 소리가 난다. 목공선생님은 대패질만 잘하면 목수일은 끝이고 대패와 끌, 톱만 있으면 못만들게 없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몇 번해 본 경험 덕분일까? 제대로 힘의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엉성한 대패질로 기우뚱하게 나무를 깎아놓은 허튼 실력이었지만 톱질할 때는 켜는 소리만으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저만치서 다른 사람의 톱질을 봐주던 선생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톱질 소리만으로도 나무가 잘 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막힘없이 물흐르듯 '쓱싹쓱싹'하는 톱질 소리는 아름다운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느껴진다. 소리, 음악, 모양 이런 것들에는 어떤 절대미가 깃들어 있을 것만 같다. 또 소리(음악)와 색, 모양 따위는 어떤 본질적인 것에 맞닿아 있음을 직감하고, 직관한다. 그리고 그러한 본질은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성취될 수 있음도 직감한다.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가 살이나 뼈를 다침이 없이 고기를 발라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은 뒤에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았다는 '장자'에 나오는 포정해우(포丁解牛) 이야기처럼 말이다.

자연스러운 대패질, 무리없는 톱질은 아트다. 한편 너무나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 평범하지 않는 대패질과 톱질은 팔에 무리가 가고, 불협화음이 나며, (톱밥)모양도 곱지 않게 나온다. 마치 홈런을 칠 때의 손맛은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찌보면 밋밋하고 평범한 맛이듯이. 평범한게 자연스럽고 평범한 게 어렵다.

대패질을 하며, 평범함이란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평범함이야말로 비범함과 불협화음을 이겨내는 것임을 깨닫는다.  온 나라가 국정 교과서 때문에 시끄럽다. 이렇게 빠직빠직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이 일이 뭔가 잘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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