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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동물과의 공존 '골든타임' 있다

[취재파일] 야생동물과의 공존 '골든타임' 있다
● 야생동물 다녀간 농경지는 쑥대밭

 수확을 앞둔 충북 괴산의 논은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평온한 결실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산과 접한 곳이 많은 농경지는 사정이 달랐다. 논도 밭도 전쟁터처럼 변해있었다. 벼는 이삭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밤새 다녀간 야생동물 때문이다. 논에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길을 낸 것은 멧돼지고 이삭을 먹은 것은 고라니다. 태풍이 지나가 쓰러진 벼는 일으켜 수확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멧돼지와 고라니가 밟고 간 논은 그럴 여지도 없어 보였다.
야생동물이 짓밟고 간 논

논두렁과 물이 흐르던 도랑은 아예 편편하게 다져져 있었다. 맨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멧돼지가 놀다간 것이다. 돼지의 굴토성(掘土性)이 문제다. 주둥이로 땅을 파는 버릇이다. 근처에 사는 농민은 "밤새 쿵쾅거리는 소리를 낸다"  "무서워서 밤에는 밖에 나가지 못한다" 고 말했다. 바로 옆 고구마밭은 아예 농사를 포기했다. 밭을 그냥 놀린 것이다. 고구마를 심은 흔적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밤마다 멧돼지가 와서 파헤쳤다. 밭 주인은 "세 번을 다시 심다가 포기했다"고 말했다. 밭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멧돼지가 파헤쳐 사라진 논두렁

● 수확 철 농촌 밤새 쫓고 쫓기는 전쟁
야생동물 포획단
밤을 기다렸다. 야생동물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괴산군에서 운영하는 야생조수 방지단 소속 엽사들과 함께 이동했다.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야생동물 포획단이다. 낮에는 쉬고 밤에 활동한다. 움직임은 민첩했다. 운전도 빨랐다. 취재차량이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다.

포획단은 3인 1조로 움직였다. 한 명은 차량을 운전하고 두 명은 뒷자리에서 좌우로 한 명씩 랜턴을 비추며 동물을 찾았다. 동물을 발견하면 운전석에 있던 엽사가 바로 총을 발사했다. 초저녁에는 고라니가 나타났다. 고라니는 빛을 비추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궁금한 듯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총이 발사됐다. 금 새 두 마리가 포획됐다. 논에서 이삭을 먹던 놈이다. 차 소리에 놀라 논에서 마구 뛰던 놈도 포획됐다.
고라니 포획 중

멧돼지는 더 늦은 시각에 포착됐다. 한 엽사는 "멧돼지는 11시가 넘어서야 활동한다"고 말했다. 멧돼지는 빛을 비추면 바로 도망갔다. 그래서 포획이 고라니보다 힘들었다. 멀리 떨어진 논에서 움직이던 멧돼지는 총을 발사했지만 그대로 달아났다. "이렇게 한 번 놀란 곳에 멧돼지는 3일 이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엽사는 말했다. "비가 오면 금방 다시 오기도 한다. 냄새가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달아나는 야생동물과 이들을 쫓는 포획단 사이의 전쟁이 계속됐다.


● 매년 수백억 농산물 피해
쓰러진 벼를 바라보는 농민
정부는 최근 6년 사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을 643억 2900만 원이라고 밝혔다. 한해 평균 129억 원의 피해다. 농민들은 정부의 피해 집계를 믿지 않는다. 충북 괴산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세 배는 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보고되는 피해를 집계한 것이 정부 통계 일 텐데 신고되지 않는 소규모 피해가 더 많다는 것이다.

싹을 따먹거나 심어놓은 종자를 파먹어 아예 농사를 포기한 피해까지는 집계되지 않는다. 농지를 망쳐놓는 일도 다반사(茶飯事)다. 논에 호수가 생기기도 하고 앞서 말했듯이 논두렁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해 농사까지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피해가 훨씬 많다는 농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까지 피해는 사람 입장이다.


● 야생동물도 수만 마리씩 희생
포획된 멧돼지
야생동물 입장에서도 희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 통계로만 지난 5년 동안 72만 779마리가 포획됐다. 멧돼지만 5만 800마리가 죽었고, 고라니는 세배 이상인 16만 9500마리가 죽었다. 숫자로 가장 많이 죽은 것은 30만 1700마리가 포획된 까치 등 조류다. 이 피해도 몇 배는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밀렵(密獵)이 아직도 많다. 허가받지 않고 사냥하는 것이니 당연히 집계에서 빠지는 것이다. 괴산군의 포획단원은 "밀렵꾼이 얼마나 많은 지 허가받은 포획단과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방어도 이젠 치명적이 됐다. 풍산개를 비롯한 사냥개를 기른다. 농작물 주변에는 올무같이 엄청나게 많은 덫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많이 죽어 가지만 야생동물 개체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100ha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4.3마리라고 밝혔다. 2010년 3.5마리보다 0.8마리 더 많아진 것이다. 서울. 경기를 다 포함한 것이니 산과 농경지가 많은 지역은 더 많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는 7.2마리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라니는 100ha당 8.2마로 늘었다. 5년 사이 1.8마리가 늘었다.

충남은 무려 12.2마리나 된다. 물론 이 집계도 신빙성은 많지 않다. 숨어 있는 야생동물을 전부 찾아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집계보다는 훨씬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포획단만으로는 야생동물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전문가들은 산림이 많이 우거졌고, 무엇보다 천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 대책없는 정부…적극적인 공존책 마련해야
야생동물 퇴치용 전기 울타리
정부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 한 해 수백억씩의 농민 피해가 나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새를 막는 망이나 조수 퇴치기, 전기 울타리 등 초보적인 방어 시설을 지원할 뿐이다. 시설 지원을 한 농가에 피해가 나면 보상이 없다. 피해를 본 농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다.

논외지만 전기 울타리는 동물이 닿으면 따끔한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시설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이 전기 울타리 감전사고로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전선이 끊어져 누전사고가 난 것이다. 우리 농촌에서도 이 문제는 점검하고 넘어가야 한다. 동물 보호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어떨까? 피해 농민에게 보상을 한다.

농식품부와 마찬가지로 500만 원 한도다. 그것도 인명 피해 때만이고 농작물은 300만 원 한도다. 예를 들어 6년근 인삼을 심어놓은 밭에 멧돼지가 들어가 폐허로 만들었다고 해도 피해보상은 300만 원이 전부다. 그리고 야생동물 개체 수를 조절한다며 수렵기간과 지역을 정해 발표한다. 한 해 수만 마리씩의 야생동물이 죽어가고 있지만 환경부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논에 나타난 고라니

몇 년 전부터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해왔다.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과 적절한 농민 피해보상이 최선이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포획단만 운영하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원시적인 방식으로 사고위험을 무릅쓰고 야생동물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위험천만이었다. 엽사들 조차 "한 때 잠시 운영하는 포획단 대신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 하다"고 강조했다.

길 고양이 불임시술을 응용한 정책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적극적인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야생동물 때문에 한 해 2000억 원의 피해를 보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재해에 버금가는 피해를 막기 위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멧돼지는 사람을 물까?
포획된 멧돼지
 "야생 멧돼지가 도심에 나타나 사람을 물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다. 누군가 궁금해했다. "멧돼지가 사람을 무나요?" 당시는 그냥 추측만 오갔다. "무니까 기사가 저렇게 나갔겠지?" "멧돼지가 주둥이로 들이받거나, 흔들어 대서 상처를 입은 거겠지 개처럼 물지는 않을 텐데" 정도였다. 야생동물 취재를 시작하면서 이점이 다시 궁금해졌다. 환경부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 그도 잘 몰랐다. 웃기만 했다.

그리고 산하의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멧돼지 습성 관련 전문가라고 했다. 그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잘 물지 않는다. 하지만 공격을 당하거나 당황할 때는 물 수도 있다. 물어서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인 멧돼지의 공격 습성은 아니다. 원래 순해서 먼저 공격해서 물지는 않는다"  외진 길에서 멧돼지와 맞닥뜨렸을 때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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