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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국민 구하다 순직하면 감점 당하는 대한민국

“사고 발생하면 인사상 불이익…자비 치료하라” 강요

[취재파일]국민 구하다 순직하면 감점 당하는 대한민국
● 사고 발생하면 인사평가 감점, 상여금 못준다"

지난 2월 인천 한 소방서에서 일선 119센터에 내려 보낸 내부 공문입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당사자와 지휘 책임자에 대해 상훈과 근무평점, 상여금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경고가 담겼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려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불이익이라뇨? '소방관 자비 치료' 실태를 취재하면서 인지하게 된 소방관들의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 사고 순직하면 8점 감점, 화재현장서 질식하면 7점 감점

아래는 10월 4일 SBS <인사 불이익에 부상 ‘쉬쉬’...치료비는 자비로>( ▶ 기사 바로가기) 보도 이후 파장이 커진 뒤에야 가까스로 입수한 소방본부 평가 기준표입니다. 국정감사 종료가 임박해서야 실제 평가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앞서 입수한 공문에 적시된 ‘사고시 인사상 불이익’이 실제로 어떻게 평가에 반영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예측하기 어렵거나 불가항력적 사고로 순직한 경우, 해당 소방관이 속한 조직을 평가할 때 감점하라는 지시가 담겼습니다. 말그대로 ‘불가항력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사고에 용감하게 나서 안타깝게 고귀한 생명을 잃게 됐는데 감점이라니요. 지하 맨홀이나 화재현장에서 질식해도 추가감점이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급류 휩쓸림에서 사고가 나도 추가 감점이라고 명시된 부분 보이십니까?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대한민국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 부상 치료비 지급 백명 중 한명

 화재 진압 과정에서 다친 소방관 가운데 '공무 중 부상'으로 치료비를 지원받는 소방관은 백 명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전체 부상자 4만406명 가운데 공상 처리돼 치료비 지급방은 경우는 전체의 0.8%, 고작 325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려져 도저히 서류상 숨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이 백명중 한명이 받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소방관들은 전했습니다.

● “사고 나면 부주의하다고 찍혀…치료비 신청 엄두도 못내”

 소방관들이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 사고 자체를 쉬쉬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도록 한 
내부 규정 때문입니다. 정당하게 구조 활동을 하다 다쳤는데,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는데 왜 치료비 지급을 신청하지 못하는지 소방관들에게 물었습니다. "순진하게 ‘공무상 부상 처리’ 서류 올리면 조직 안에 난리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또 사고가 났느냐", "관서평가 시즌인데 자꾸 이러면 어떡하냐..." 소방관들 비공개 사이트에서는 "치료비 받으려고 나서면 이것저것 꼬투리 잡히고 다 털린다. 다른 곳으로 쫓겨갈 수도 있다"는 푸념이 쏟아졌습니다. 치료비 받아보겠다고 '공무상 부상 신청' 올려봐야, 심사 통과해서 치료비 지급받을리는 만무하고, 조직 인사평가에서 감점당해 불이익 받고 조직생활 어려워지는데 왜 그 복잡한 걸 올리겠느냐는 겁니다. 정부에서 '안전사고 줄이겠다'는 발표가 나오면 곧바로 소방본부와 119센터에서는 '사고 나면 각오하라'는 경고가 내려온다는군요. 사고 감점이 두려우니 응급환자 이송하느라 구급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도 보험이 아닌 자비로 차를 수리하는 경우도 다반사라 했습니다.

● 가까스로 살아 남아도 치료비 걱정

 실제 현장 출동 중 부상당한 소방관들을 찾아봤습니다. SBS 보도를 통해 생생하게 사고 상황이 세상이 알려졌던 소방관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지난 5월 28일 파주 가구공장 화재 현장에서 전기 불꽃이 크게 번쩍인 뒤 감전사고로 쓰러지는 장면이 방송됐었죠. 당시 소방관 두명이 감전 사고로 부상을 당하는 모습이 전해지면서 걱정이 컸는데요, 다행히 감전 치료는 잘 받고 복귀를 했는데, 또 벌집 제거에 나섰다가 벌에 쏘이는 부상을 당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건강함을 확인했으나 치료비가 문제죠.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려진 감전사고 치료비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 겨우 ‘공무상 부상’ 신청은 했으나 사고 넉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통 자비로 치료를 하고, 아주 큰 사고의 경우에만 치료비 지급 신청을 한다는 군요. 두 사고에 백만원 가까이 들었지만 벌에 쏘인 치료비는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했습니다. 특히나 인사평가 시즌인데, 자꾸 사고가 나면 ‘부주의한 사람’으로 찍혀 소방관 생활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앞서 문서를 통해 확인한 평가상 불이익, 감점 탓이겠죠.

 벌집 제거하다 감전 사고를 당해 왼손을 잃게 된 한 소방관은 아홉 차례 수술 끝에 치료비만 7천5백만원이 넘었습니다. 5천만 원은 '공무상 부상'을 신청해 지급이 될 예정이라지만, 까다로운 절차 탓에 지급을 받지 못하고 자비로 부담해야 할 돈이 2천 5백만원..안타깝게 지켜보던 동료들이 모금을 해서 보탰지만 그래도 일단 퇴원까지 남은 치료비 5백만원과 앞으로 후유증 등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막막한 처지입니다. 국민 안전을 위한 공무를 수행하다 사고를 당해 손을 잃고도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겁니다. 그런데도 소방본부 측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보다는 언론에 어떻게 나올지만 신경쓰느라 예민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 정부, 10.8 국정감사서 재발방지 약속

10월 4일 SBS 보도와, 10월 8일 국회 안전행정위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의 집중 질의가 이어지자, 정부는 소방관 순직자와 부상자에 대한 감점 등 인사상 불이익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과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모두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소방관 부상과 관련한 공상처리 절차를 제대로 개선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안타까운 소방관들의 현실을 담은 질의를 들으며 일부 의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언론 보도로 논란이 커진 뒤에야 "부상 공무원은 즉각 치료비 지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소방본부별 관서평가 항목에 순직, 부상 감점 기준을 전면 폐지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럽게 하는.. 우리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 늦었지만 이제라도 달라지는 모습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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