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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日 운동회 '사람 잡는' 인간 피라미드…연간 8,000건 사고

요즘 일본도 운동회 시즌입니다. 달리고, 굴리고, 힘을 합쳐 터뜨리고. 운동회 종목이나 분위기는 한국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 운동회 하이라이트라면 릴레이겠죠. 물론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본은 짝체조(組み體操,구미타이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힘을 합쳐 3~5단 인간 탑을 만들고, 100명 안팎의 학생들이 10단 높이의 인간 피라미드를 만드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조마조마 숨죽인 채 지켜보던 학부모들이 완성된 인간 피라미드에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보내는 장면, 일본 운동회를 상징하는 모습 중의 하납니다.

그런 짝체조가 최근 일본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안전성 논란입니다. 경쟁적으로 대형화하는 분위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몇 단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교육당국 개입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지난달 27일 오사카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인간 피라미드 붕괴 사고 모습

지난달 27일 오사카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고 모습입니다. 157명의 학생들이 10단 높이의 인간 피라미드를 거의 완성하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학생 한 명의 오른팔이 부러졌고, 5명이 다쳤습니다.

특히 연습 때도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단 높이를 조정하지 않고 강행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무리였다." "단을 조금 낮췄어야 했다"는 지적들입니다. 학교 측은 나름 안전조지 차원에서 인간 피라미드 주변에 지도교사 11명을 배치했지만, 화면에서 볼 수 있듯 순식간에 발생한 상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인간 피라미드를 비롯한 운동회 짝체조 때문에, 다쳐도 너무 많이 다치고 있습니다. 2013년 한 해에만 짝체조 관련 사고가 8,500건이나 발생했습니다. 그 한해 전인 2012년에 6,500건 정도였는데 점점 늘고 있습니다. 사망 사고는 없었지만, 장애가 남을 정도로 다친 경우가 1983년부터 2013년까지 30년 남짓 동안 88건에 이릅니다.

갈수록 단이 높아지고, 대형화하다 보니 부상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운동회에서 대개 인간 탑은 3~5층을 만들고, 인간 피라미드는 9~11층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과거에는 대략 7~9층 정도였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 인간 피라미드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짝체조인 인간 탑 쌓기입니다.

장애가 남을 정도로 다친 경우는, 인간 피라미드보다 인간 탑 붕괴가 더 많습니다. 인간 피라미드가 12건인데, 인간 탑을 만들다가 다친 경우는 41건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 어느 쪽이 더 위험하다는 식의 구분은 조금 애매합니다. 아무래도 인간 탑이 더 쉽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비롯해 더 낮은 학년에서, 또 더 많은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관리나 충분한 연습이 없으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과학적인 분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 피라미드 가장 아래층 있는 학생에게 어느 정도 하중이 가해지는지 분석해, 단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습니다.
 
▲ 151명이 10단 피라미드를 만들 때, 노란색 표시 학생이 가장 많은 하중을 받습니다. 일 NTV 화면

일본 NTV의 분석입니다. 학생 151명이 10단 인간 피라미드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맨 아래 엎드린 학생들 가운데 뒤에서 두번째 줄, 위에서 네번째 학생(노란색 표시)에게 가장 큰 하중이 가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 피라미드가 완성되는 순간, 학생 3.9명의 무게 약 211kg의 하중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난 1993년 후쿠오카에서는 인간 피라미드 붕괴 사고로 척추를 다친 학생 측이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8층을 만들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재판부는 학교 측의 안전조치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억엔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때문에 인간 피라미드는 4층까지, 인간 탑은 2미터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달 초 오사카 교육위원회는 실제로 인간 피라미드 대형화를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앞에서 본 사고도 오사카에서 발생했으니, 별 의미 없는 결정인 셈입니다. 

이런 규제에 반대하거나 지나치다는 반발도 적지 않습니다. 인간 피라미드 같은 짝체조 역시 스포츠의 하나이고, 적절한 안전조치를 통해 학생들의 도전을 장려해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당장 시모무라 문부과학상, 우리로 치면 교육부장관이 "인간 피라미드 규제에는 반대한다. 교육 현장이 판단할 문제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 논조도, 거대화 대형화에 따른 안전 문제를 우려하면서도 직접적인 규제를 가하는 데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문제에 한국 언론이 대안과 결론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을 테고, 다만 한가지.

인간 피라미드 높이는 학교간 묘한 경쟁심을 자극합니다. 우리 학교가, 우리 학생들이, 내 아이들이 더 힘든 도전을 이겨냈다는 식의 경쟁심, 합리화가 작동하기 쉽습니다. 교육 현장에 맡겨 놓으면, 대개 이런 경쟁은 가라앉기 힘들겠죠. 또 오사카 사고처럼 아무리 안전관리를 해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고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교육당국의 할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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