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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복 왜 입냐고요? "예쁘니까요"

타인 시선 걸림돌 안 돼…한복 입기 '즐거워'

[취재파일] 한복 왜 입냐고요? "예쁘니까요"
한복이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패션 잡지에 나오는 용어를 빌리자면, 그야말로 ‘잇 아이템’(가지고 싶어 하는 것)으로 부상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 와 닿지 않으신지요.

주말 고궁을 다니다보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특이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고궁 밖에서도 한복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 삼청동 길, 인사동 길, 심지어 명동 한복판까지, SNS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검색하면 사진이 그야말로 쏟아집니다. 전통한복에서부터 생활하기 편하도록 변형된 형태의 한복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이 선보이고 있어서 한복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① 한복입기는 ‘놀이’…즐거워서



‘한복 놀이단’이라는 한 단체의 가입자 숫자는 줄잡아 3-4천명 가량이라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모여 놀자는 공지를 운영진이 SNS에 띄우면, 글을 읽은 누구나 그날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명절 연휴를 한 주 앞둔 주말, 명동 한복판에서 이들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어떤 이벤트가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각자 취향대로 한복을 입고 나와, 쇼핑도 하고, 차도 마시고, 먹을 것도 사먹고 말 그대로 일상적인 나들이를 하는 것입니다. 

행동은 별날 게 없지만, 복장은 분명 별나게 느껴졌나 봅니다. 길을 가다 대놓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사람, ‘흘긋 흘긋’ 시선만 돌리는 사람, 이렇게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 됐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은 즐거워하며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죠.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요? 이들에게 타인의 시선은 (신경이 전혀 안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복입기를 방해 할 만큼 부담스러운 요소가 아닙니다. 한복 입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입을 뿐이라는 것이죠. 한복놀이단 단장인 권미루씨에게 한복을 왜 입느냐고 물었습니다.

권 단장은 “ 한복이 특정한 장소나 때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잘 어울릴 수 있고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복을 입는 이유에 대해 "전통이라는 부분도 같이 지켜나가기는 하지만, 취향”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놀이단 친구들은 한복이 ‘예쁘고 좋다’라는 의견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국인이 한복을 입지 않는 상황을 고쳐보자는 공익적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모임이 진행되고 회원수가 늘어날 수록 한복 입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문화로 번져가는 모습이었습니다.
 
② 여러 벌 소장…직접 맞춰 입기도

기성세대들이 가진 한복이라고 해 봐야, 결혼할 때 지었던 한 벌, 보통은 그게 전부일 것입니다. 한복을 입는 경험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앙대 한복 동아리 ‘햇귀’ 회원들은 이와 정 반대입니다.

‘햇귀’는 한 달에 한 번을 한복 입는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캠퍼스를 누비고, 강의도 듣는다는 얘기입니다. 강의 발표 날에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남학생도 있습니다.정례적인 행사 외에 주말에는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가는 등 시시 때때로 한복 입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원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올해만 30명이 들어왔을 정도로 동아리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입학도 하기 전에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며 연락해 온 신입생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게 동아리에 들어와서는 공용 한복을 입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복 체험 카페 등으로부터 한복을 기부 받거나, 선배가 물려 준 한복 등을 공용 한복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한복을 가지고 싶어지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기성품을 사기도 하고, 한복을 맞추기도 합니다. 한복집을 찾아가 백 개 가까운 원단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디자인도 상의하는 수고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햇귀 회장인 정성윤씨는 허리에서 끈을 묶도록 디자인 돼 일상복과 매치가 쉬운 ‘허리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렇게 맞추는 데 1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③ 거추장스럽지 않아…“승마·트래킹도 했어요“


한복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데도 입기 꺼려지는 것은 불편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점을 개선해 일상 생활하기 편하도록 디자인을 변형하기도 합니다. 치마의 기장을 발목 선 정도로 올리거나, 소매의 폭을 줄여서 움직이기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빨래가 용이하도록 면 소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든 한복으로는 못 할 것이 없다는 게 이예나씨의 이야기입니다. 예나씨는 지금 페루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남미 지역을 여행하고 있는데, 출발할 때 전통한복 2벌과 생활 한복 1벌을 챙겨왔습니다. 저고리 3개, 치마 3개니 서로 짝을 바꿔 입기도 합니다. 한복을 입으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한복 예찬’이 쏟아집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여성분들은 청바지나 짧은 스커트도 많이 입으시잖아요. 한복이 이렇게 편안함을 주는 옷이라는 것을 이번에 정말 깨달았어요. 보폭도 굉장히 넓고, 걸어 다니기도 쉽고요. (주머니가 따로 없어서) 치마와 속치마 사이에 복대를 차게 되는데, 사람들이 제 귀중품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웃음)”

한복 차림이어서 못했다고 할 만한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실제 이 씨는 한복 차림으로 3박 4일 트래킹을 하고, 잉카 유적지인 마추픽추를 올랐습니다. 승마, 번지점프에도 도전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한복차림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궁금했습니다. “무거운 의미를 벗기고 싶었어요. 정석대로 입어야 하고 늘 갖춰 입어야하고, 과거에만 종속돼 있고 예절에 갇혀 있는 옷이 아니라...”

최청하씨는 한복에 갓까지 갖춰입고 동남아 6개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최씨는 여행지에서 만난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담았는데, 한 외국인은 최씨의 복장을 보고 엄지를 '척' 올렸습니다.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주셨고,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복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한복을 입고 떠나는 여행은 그 이상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셈입니다.  

예나씨나 청하씨 뿐 아니라 ‘한복입고 여행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일, 이른바 ‘버킷리스트’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한복 대여 업체들은 ‘한복입고 여행하자’는 마케팅을 하기도 합니다. 앞서 한복 놀이단장이라고 소개한 권미루씨도 한복여행가로 유명한데, 실제 이런 한복 여행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④ 20~30대 겨냥 팝업 스토어까지



젊은 층을 겨냥한 한복 제품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식용이나 잔치 한복, 중장년층이 위주였던 한복 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에 최근 한 생활한복 업체는 '팝업 스토어‘(하루에서 길게는 한두 달 정도로 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상점)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업체 외에도 여러 업체들이 다양한 형태의 생활 한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쉽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데 사이즈는 S, M, L 식으로, 소매 폭은 좁게 또는 넓게 취향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예식 또는 잔치용으로 비싸게 맞추는 한복에 비해서는 거품도 상당 부분 없어졌습니다.
  
앞서 중앙대 동아리 회장인 정성윤씨가 맞춰 입었다던 ’허리 치마‘는 사실, 기성품으로 이미 인기를 끈 스타일입니다. 블라우스 등과 맞춰 입으면 한복인지 모를 수 있을 정도인데, 아예 무릎길이 정도로 짧게 만든 파격적인 치마도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싶지만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선택하기 쉬운 편입니다.

한복을 왜 입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 가장 많이 들었던 답은 ‘예쁘기 때문’이었습니다. 멋 부리고 싶은 날, 중요한 날, 사람들이 좋은 양장을 차려입듯, 예쁜 한복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전통’이라는 무거운 의미에만 함몰되지 않는 젊은층의 ‘한복 입기’는 신선하고 유쾌해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당위성에 의해서 또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즐기면서 하는 것이 결과물도 좋지 않을까요? ‘한복 입기‘가 한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 거리에서, 해외에서 뽐내는 한복…달라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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