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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과 평양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취재파일] 서울과 평양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3박 4일 동안 박원순 서울시장의 몽골 순방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말이 나흘 일정이지 첫날과 마지막날은 한국에서 몽골로,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동만 했으니 결국은 이틀 일정이었습니다. 그 사이 국내에서 벌어진 박 시장 아들 병역 논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이번 몽골 순방 일정은 상당히 빡빡했습니다. 이번 순방의 성격은 울란바토르시의 바트울 시장의 서울 방문에 이은 답방 형식이었습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몽골측이 서울시를 붙잡고 이것 저것 요구하고 있는 사항이 많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박 시장이 답방을 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서울시가 울란바토르시에 딱히 받아낼만한 것이 없는 상황인지라 사실 박 시장의 순방 기간 중에 쓸만한 기사꺼리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박 시장은 이틀간의 공식 일정 중에 울란바토르 시장과의 만남, 동북아 시장 포럼, 몽골 국립대학 강연, 이태준 선생 공원 방문 등을 빡빡하게 진행했습니다. 먹을 거 별로 없는 잔치상이라도 최대한 알뜰하게 잘 먹어보겠다는 의지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순방 결과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사실 별다를 것도 없는 이번 순방 일정을 동행 취재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동북아국가 시장 포럼 때문입니다. 동북아 시장 포럼은 울란바토르시와 아시아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포럼인데, 동북아시아 여러 국가의 도시 시장들이 참석해 도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지난해부터 포럼이 시작됐는데, 올해는 2차 포럼이 진행된 겁니다. 사실 딱히 별다를 것도 없는 행사입니다만, 1차 포럼에 어느 도시가 참석했는지를 살펴보면 서울시 측이 이 포럼에서 뭘 기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평양시가 1차 포럼에 참석했던 겁니다. 1차 포럼에 북한의 평양, 함흥, 원산, 나선 등 4개 도시 책임자가 참석했는데, 평양에서는 최고 책임자인 김수길 평양시당 위원회 책임비서는 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평양시장 역할을 하는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습니다.

몽골과 북한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양국은 1948년에 수교를 맺었고, 사회주의 연대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990년 우리와 몽골이 수교한 이후와 2000년대 초반 북한 위조화폐 등의 문제로 몽골과 북한의 관계가 한때 소원해지기도 했던 적도 있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다시 회복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 1차 포럼에도 평양시 대표단이 참석했고, 포럼 주최측은 이번 2차 포럼에도 북한측 대표단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겁니다. 실제 서울시측은 여러 루트를 통해 몇 달 전부터 평양시측의 움직임을 면밀히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또 몽골 정부에도 평양시측의 참석을 종용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평양시 대표단이 나온다면 경색 국면인 남북관계를 연결할 또 다른 루트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했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대 정부의 관계보다는 시 대 시간 교류가 운신의 폭이 더 넓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실제 평양시측이 나올 경우를 대비한 이러저러한 구상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두는 등 서울시 입장에선 만발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바라던 모습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평양시측이 이번 포럼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양측은 왜 불참한 걸까요? 서울시측은 북한의 당창건기념일 준비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더군요. 10월 10일이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인데,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겁니다. 또 올해 포럼 개최 시기가 지난해보다 다소 늦춰진 것도 평양시 불참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1차 포럼은 8월 18일에 열렸고, 북한 내부적으로도 지난해에는 당 창건기념일 행사에 김정은 제1비서가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당창건기념일 행사를 별다른 이벤트 없이 지냈기 때문에 평양시 입장에서도  포럼에 참석할 수 있었다는 건데요.

하지만 올해는 북한측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베이징에서 벌어진 중국의 전승절 행사 영향을 받은 김정은제1비서가 올해 당창건기념일 행사를 대규모로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평양시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인 된거죠. 게다가 올해 포럼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9월말에 진행됐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훨씬 더 씬 빠듯해진 셈입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포럼 한달전까지만해도 서울시는 평양시측의 참석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고 합니다. 참석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는 거죠. 적어도 김수길 평양시당 위원회 책임비서는 아니어도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오겠지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평양시측의 참가 가능성은 낮아졌고, 서울시측은 포럼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합니다.

서울과 평양은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창건 기념일 행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포럼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서울시측 분석도 일리가 있겠지만, 지금 같은 남북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측과의 공식적인 접촉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일정동안 빡빡한 일정을 나름 잘 소화한 박 시장이었지만, 먹을 거 없던 잔치상에 뜻하지 않은 별미를 맛볼 기회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또 현장에서 좋은 기사꺼리를 놓친 기자 역시 서울-평양간 만남이 무산된 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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