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슬라이드 포토] '한반도 허리를 탈환하라' 65년전 인천상륙작전 재연




1950년 9월 15일 새벽.

대북첩보부대 켈로(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 부대원 16명과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 특공대는 인천 월미도에서 10여㎞ 떨어진 무인도를 탈환한 뒤 등대의 불을 밝혔다.

한국전쟁 초반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상황에서 '한반도의 허리'인 인천에 기습 상륙작전을 시도하기 직전 팔미도를 장악한 것이다.

5시간 뒤 암호명 '크로마이트 작전'이 시작됐다.

인천상륙작전이었다.

당시 군사 전문가들은 "조수 간만의 차가 세계에서 2번째로 커 성공 확률은 5천분의 1에 불과한 도박 같은 작전"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작전을 감행했고 서울을 수복하는 등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엎었다.

인천상륙작전은 261척의 함정과 7만5천여명의 병력이 투입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기록됐다.

북한 군 1만4천여명을 사살했고 7천명을 생포했다.

65년전 대규모 인천상륙작전이 15일 인천시 중구 월미도 앞바다에서 재연됐다.

당시 팔미도 등대의 불빛이 인천 앞바다를 훤히 비춘 것처럼 월미도 북측 방파제에 있는 등대에서 붉은색 연막이 피어 오르며 상륙작전을 알렸다.

곧바로 해군 대잠헬기인 링스헬기 2대가 창공을 누비며 어뢰 공격을 노리는 적 잠수함을 탐색했다.

해군 특수전 전단 병력은 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해상 강하를 시도했다.

특수전 전단 대원 4명이 헬기에 매달려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의 연막탄을 뿜어내자 관람석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해상에서는 해병대 수색대원들이 상륙용 고무보트(IBS)를 타고 해안을 따라 침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공군과 해군 함정의 화력 지원도 잇따랐다.

블랙이글과 F-5 전투기가 공중에서 적 진지를 향해 피폭을 감행하자 해군 함정 2척도 65발의 함포 사격으로 지원했다.

육군 화학중대는 이날 연막탄을 터뜨리며 실제와 같은 피폭 상황을 연출했다.

바다 속의 지뢰인 기뢰를 찾아내 제거하는 '소해작전' 직후에는 상륙장갑차(KAAV)와 공기부양정(LSF)이 해상 돌격을 시작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미군 해병대원 등 후속 군이 탄 상륙함(LST)이 연막탄의 호위를 받으며 해안에 도착했다.

상륙군이 암벽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육지로 올라와 월미도를 장악하는 것으로 65년만에 재연된 인천상륙작전은 끝났다.

30분간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200명을 비롯해 시민 등 행사장을 가득 메운 2천여명의 관객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탄성을 내질렀다.

미군 측에서는 기뢰전함정(MCM)을 비롯해 특수전 병력 1개 소대를, 우리 군은 함정 12척, 항공기 17대, 상륙돌격장갑차(KAAV), IBS 등 전투장비 49대를 지원했다.

상륙작전 재연 행사 전에는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이상훈 해병대 사령관,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의장대 시범과 함께 전승기념식이 열렸다.

정 참모총장은 기념사에서 "참전용사와 선배 전우들이 인천상륙작전에서 보여준 불굴의 투혼과 필승의 신념을 계승해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해군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