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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항공의 위험한 비행 '조종 중 신용카드 조회'

- 대한항공 조종사들, 비행 중 신용카드 조회 논란 
- 대한항공이 지난해 7월부터 면세품 판매 위해 조종사에게 카드조회 지침까지 마련해 지시  
- SBS 보도 후 지침 철회…탑승현황표와 신용카드 이름 확인 후 판매하기로


●18년 전 여름, 대한항공 801편 추락하다  

1997년 8월 6일,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은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근처 밀림에 추락하고 말았다. 비행기는 세 동강이 났다. 탑승자 254명 가운데 228명이 사망했고, 26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낡은 공항 시설과 조종사의 실수가 원인이었다. 그날은 대한민국 최악의 비행기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신용카드 조회 중

대한항공은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걸까.

"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비행 중에 승객 신용카드를 조회하고 있다고요?" 처음엔 듣고도 내 귀를 의심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조종사들이 카드 조회를 하고 있다는 건가. 대한항공이 기내에서 면세품을 파는데 지난해 7월부터 면세품 가격이 500달러 이상일 경우 조종사에게 고객 신용카드를 조회하도록 지침을 내렸다는 제보였다. 위조 카드 결제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윤을 위해 승객 안전을 담보로 하다니, 무모한 지시였다.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입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조종사들을 만나야했다.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직원들이 언론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조종사들은 용기를 내 직접 실상을 전해주기로 했다. 조종사들을 만나기로 한 날, 오히려 내가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이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까 고민도 됐다. 조종사들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종사 A : 저희가 특히 비행에만 전념하고 있어야 할 그 때에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서, 카드조회를 해요. 카드조회 창을 띄우고, 그 다음에 카드번호를 치고, 또 유효기간 치고, 이런 식으로 카드 한 건당 수 십 번의 키패드를 만져야 하죠. 그 다음에 회신까지 오면 객실 승무원에게 전달하게 되죠. 비행 중 적으면 한 건, 많을 때는 7~8건 되는 경우도 있고요.]


● 착륙 시간 다가올 때 카드 조회 요청 몰려…대형 사고 위험 

수백 명을 태우고 안전 운항에만 전념해야 할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신용카드 조회 때문에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조종사들은 특히 착륙 시간이 다가올 때 조회 요청이 몰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조종사들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종사 A : (한 동료는) 강하하는 도중에 그 요청이 와서 굉장히 집중하기 힘들었다고 하고요.]

[조종사 B : 항공기는 공중에 떠서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잠깐 실수해도 큰 데미지를 입을 수 있어요. 저는 카드 조회 때문에, 수치를 계산해서 넣어야 하는데 빼고 했다든지, 스위치 조작을 해야하는데 잊어버린 적도 있어요. 라이트를 켜야 하는데 라이트를 안 켠 경우도 있었고요. 이걸 하다보니 잊어버리는 여지가 많은 거죠. 그게 하나의 사고의 요인이 된다는 거예요.]

[조종사 C : 카드 조회에 집중하다보면, 조종사 둘이 들어가서 둘이 확인해야 하는데, 한 사람 들어서 한사람이 실수하면 실수로 바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거죠. 통신도 하고, 비행 모니터도 하고, 착륙 준비도 하고, 컴퓨터에 필요한 사항도 넣고, 브리핑도 하는 사이에 카드조회도 해달라는 거예요. 비행기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비행과 전혀 상관없는 데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생기는 거죠.]


● 대한항공 "40분 전 조회"…현실은 무용지물

조종사들을 만난 뒤 어떻게 알았는지 대한항공 측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한항공은 "착륙 40분 전에 한 해서만 신용카드 조회를 실시하고 있다"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칭다오나 일본 후쿠오카 같은 단거리 국제노선은 비행시간이 1시간 남짓이기 때문에 이륙 후 40~50분가량 식사를 제공한 뒤 면세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40분 전 조회 규정은 현실적으로 무용지물이다.

[조종사 A : 현실적으로 단거리 구간에서는 불가능하고요. 착륙이 가까운 시점에, 15분, 20분 이전에도 신용카드를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이 있어요.] 

대한항공은 조종사들이 사내 게시판 등을 이용해 문제를 제기하자, 지난 5월, 단거리 노선의 경우 카드 조회를 '생략 가능'하다고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안전을 고려해 비행 중 카드조회를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 안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해 책임지고 있는 조종사들이 "비행에 지장이 되고, 실제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더 이상 카드조회의 위험성에 대해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은 지난 1년 넘게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종사 B : 안 했을 때 혹시 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했어요. 자포자기 비슷하게. 불이익 당하면 기종을 바꾼다든지. 기장 될 때 불이익을 주지 않을까… 뻔하거든요. 그 편수에, 누가 카드 조회를 했다, 안 했다 다 나오거든요.]

● 대한항공의 두 얼굴…"카드 조회는 해라"

대한항공은 왜 이 신용카드 조회에 매달렸을까. 아래는 대한항공의 공식 입장이다.

[대한항공 홍보실 : 안전운항에 지장이 없도록 항공기 도착 40분 전에 한해서 실시하고 있고요, 불량 카드로 인한 범죄 예방과 올바른 신용사회 정착을 위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도난된 신용카드나 복제 카드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기업이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것 자체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이익을 위해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매번 비행기에 탑승하는 수백 명의 승객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조종사 인터뷰 과정에서도 이런 대한항공의 두 얼굴을 또 한 번 볼 수 있었다.

[조종사 A : 비행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행위에 대해서는 금하고 있으면서도 가짜 카드인지 아닌지 조회를 하라고 하는 것은.. 역설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 새정치연합 간사인 김기식 의원은 이 사안에 대해 "면세품 판매를 위해 이런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며 "이점을 방치한 국토교통부나 국민안전처의 책임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 국민안전이 가장 중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항공사가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국토교통부나 국민안전처가 전면 조사해서 명확히 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대한항공 면세품 판매 목표액은 2천3백억 원 

대한항공의 조종사 측은 이처럼 조종사가 신용카드 조회를 하는 곳은 국내 항공사와 국제 항공사 통틀어 대한항공 외에는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나는 "비행 중 신용카드 조회는 하지 않으며, 블랙 리스트 고객 명단을 따로 만들어 위조카드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에어부산, 진에어, 티웨이 등 다른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로 조종사의 카드조회 업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독 대한항공만이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일까. 

세계적인 유통전문지 무디리포트가 발표한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의 지난해 판매 목표액은 1억 9400만 달러, 한화로 무려 약 2300억 원에 달했다. 이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 조종사들은 승객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위험천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희생양은 조종사와 승객뿐만이 아니다.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에 따르면, 객실 승무원들은 면세품 판매 실적 때문에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12년 1월에는 면세품 판매를 담당하던 한 승무원이 판매액과 실제 수금액에 차이가 생기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대한항공은 지금도 객실 승무원들을 상대로 면세품 판매 실적을 평가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이익 앞에 승객도, 조종사도, 승무원도 없었던 것이다.

● SBS 보도 후…대한항공 "카드 조회 방침 철회하겠다" 

지난 7일 SBS 8뉴스 보도(링크:면세품 팔려고…비행중 조종사 위험한 카드 조회)가 나간 뒤, 대한항공은 늦게나마 조종사 카드조회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조종사가 조종석에서 신용카드를 조회하도록 한 회사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대신 탑승객 명단표와 고객 신용카드 이름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대책이 나온 것을 환영한다. 혹여나 앞으로도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지 계속 지켜볼 작정이다. 18년 전 악몽을 우리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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