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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맞춤형 보육'은 예산 맞춤형일까요

[취재파일] '맞춤형 보육'은 예산 맞춤형일까요
●'맞춤형 보육' 도입하겠다!

이 정부는 '맞춤형'이라는 낱말을 꽤 좋아하는 듯하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그렇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급여 체계로 개편한 데 이어 '맞춤형 보육' 체계 개편 또한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의 '맞춤형'이란 각자의 형편 혹은 필요에 맞춤하게...라는 의미일 것이다. 각종 복지 정책을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로 거칠게 나눴을 때 '맞춤형'은 선별적 복지 개념을 깔고 있다. '맞춤형 급여'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생계, 주거, 의료, 교육별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급여를 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 하고 '맞춤형 보육'은 보육 서비스를 받는 부모들이 상황에 맞게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맞춤형 보육' 시행에 앞서 시범 사업 중이다. 경기도 가평과 경북 김천, 그리고 제주 서귀포에서, 7월과 8월, 9월까지 석 달 간이다. 현재는 어린이집에서 모두 하루 12시간 이내 종일제로 보육하고 있는데, 이를 6시간 반일제, 8시간 맞춤제로 각각 적용해보는 것이다. 부모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가평은 6시간 반일제, 즉 오전 7시 30분~낮 1시 30분, 김천과 서귀포는 8시간 맞춤제, 즉 오전 7시 30분~오후 3시 30분을 택하도록 했다. 여기에 서귀포는 실제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차원에서, 종일제를 선택하는 부모에게는 장시간 보육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증빙 서류 제출을 못 하면 8시간 맞춤제를 해야 하는데 전업주부 같은 이들에겐 강제로라도 맞춤제 보육을 택하도록 한 것이다.

●"종일제 신청 90% 이상"

신청 결과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종일제'의 압승이었다. 

가평에선 대상인 2세 이하 아동 668명 중에 661명이 종일제를 택했다. 99%였다. 김천은 1,893명 중 1,803명 95.3%가, 서귀포는 2,715명 중 2,438명 89.8%가 종일제를 선택했다. 가평에서 6시간 반일제를 택한 부모는 단 일곱에 불과했고, 김천은 8시간 맞춤제를 택한 건 90명, 서귀포는 상대적으로 많아 277명이었다. 각각 1%, 4.7%, 10.2%다. 반일제나 맞춤제를 택하면 가평과 김천은 한달에 5만원씩 수당을 주고, 서귀포는 추가 보육을 10시간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했으나 큰 영향은 주지 못했다.


시범 사업 중인 가평의 한 어린이집은, 정원 99명 중에서 현재원은 68명인데 이중 맞춤형 보육 대상아동인 2세 이하는 35명이었다. 6시간 반일제를 택한 아동은 1명도 없었다. 모두 종일제였다. 이 어린이집을 통해 만난 아이 엄마는 반일제를 선택하는 부모가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6시간 반일제로 맡기면 낮 1시 반에 집에 오는 걸로 돼 있더라고요. 그때면 아이들 낮잠 잘 시간이에요. 낮잠 잘 시간에 집에 오게 되면 아이들이 피곤하고 짜증 내게 되는 부분도 있고요. 맞춤형 보육을 원하는 부모 아이들이 집에 가고 종일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게 되는데 애들이 혼자 집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데려다주시는데 각 반 선생님은 1명이니까 남아있는 애들은 피해를 보게 되는 거죠. 원장님이 운전하는 어린이집이 많은데 그러면 2명이 부재 중인 거잖아요. 그 시간에 아이들을 지도할 선생님을 추가로 보충해주거나 그런 것 없이 이렇게만 하면 저희 엄마들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시범사업과 본 사업의 '엇박자'

복지부는 이런 시범사업 상황을 보고 어떻게 판단했을까. 그럼에도 "종일제 80%, 맞춤제 20%"로 내년 사업 예산안을 마련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남인순 의원은 애초 복지부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엔 종일제 50%, 맞춤제 40~50%로 돼 있었다고 밝혔다. 내년 어린이집 보육대상 중 2세 이하 아동은 올해 79만 8천명보다 14만 8천명 적은 65만 명인데, 이중 종일제는 34만 2천명 정도가 선택한다고 가정하고, 맞춤제는 30만 7천 명이 택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최종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비율이 80:20으로 바뀌고 대상 아동 수도 75만 3천 명으로 늘었다는 게 남 의원의 설명이다. 처음 예산안과 최종 정부안의 대상 아동이 10만 명 가량 차이나는 건, 복지부가, 2세 이하 아동의 가정양육수당을 일괄 한달 20만원으로 인상하면서 10만명 정도가 가정양육으로 전환할 것으로 가정했다는 게 역시 남 의원의 설명이다.)

아무튼 정부 최종 예산안에서, 종일제는 80% 60만 3천명, 맞춤제는 20% 15만 명으로 전제했다. 최소 20%는 6시간이나 8시간의 맞춤제를 선택할 것이라고 봤다는 거다. 시범사업에선 90~99%의 부모가 종일제를 택했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부모의 20%는 맞춤제를 택할 것이라고 봤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 같다. 심사로 걸러내는 것이다. 종일제 보육이 필요하다는 걸 부모들이 증명하도록 하는 증명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는데 그 서류 심사를 하게 된다. 이런 게 부모의 필요에 의한 정책일까.

● 더 치열해지고 더 어려워지고…

맞벌이, 한부모, 다자녀, 다문화 등 현재 어린이집 입소 대기할 때 우선순위를 매기듯 내년부터는 종일제 보육을 원하는 부모들은 부모의 재직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를 심사해 정부가 장시간 보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모들의 순위를 매기고 예산의 범위를 벗어나면 탈락시키는 식이 될 듯하다. 지금도 좋은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 오랜 기간 대기하기도 하고 경쟁해야 하는 부모들에게 경쟁의 짐을 하나 더 얹어준 셈이다.

어린이집도 '맞춤형 보육' 도입이 반갑지만은 않다. 보육시간이 다소 줄어들 수 있겠으나 그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료도 줄어든다. 맞춤제는 종일제의 80% 수준으로 보육료가 책정됐다. 정부는 종일제 보육료를 7% 정도 인상했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수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어린이집들은 지금도 정원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경쟁에 밀려 맞춤제를 선택하게 된 부모들이, 추가 보육을 부탁할 때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피해는 어린이집 몫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 어린이집 원장의 말이다.

"저는 맞춤형 보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한테 가장 큰 문제는 보육료예요. 지금 종일제 보육료로도 교사들 기본 급여 주고 어린이집 운영하는 데도 정원이 다 찼을 때나 괜찮은 보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한 아이가 빠지고 두 아이가 빠진다면 0세 반은 교사 1명이 3명을 봐야 되는데 그 보육료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교사 급여도 지급하기 쉽지 않아요."

"전업주부라고 해서 다 맞춤형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들 보내놓고 치우고 빨래하고 이러다 보면 금세 아이들 올 시간 되는 거거든요. 어머니가 차 마실 시간도 사실 없는 거죠. 지금은 7시 반부터 7시 반까지니까 부모님들이 일이 있을 때, 아이들 병원에 가실 때는 1시 반에도 오시고 2시 반에도 오시고 자율적으로 하세요. 어쨌든 종일반 안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저녁을 드신다거나 그러면 7시 반 넘어서라도 당직 교사 있으니까 충분히 해드렸어요. 그런데 만약에 애가 6시간 보육만 신청했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일이 생기셨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그 아이를 6시간 만에 데려다줄 수는 없잖아요. 그 영아들을 어디다 데려다 줄 거예요. 저희가 계속 봐줘야죠. 아직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봐요."


● 맞춤형 보육은 부모 맞춤형일까, 예산 맞춤형일까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지난 1월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뒤 "전업주부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수요를 줄이겠다"고 발언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가정양육수당 20만원보다 어린이집 보육료가 더 높은 만큼 전업주부라도 '어린이집 보내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 때문에 어린이집을 불필요하게 많이 보내고 있으니 (그래서 정부의 보육료 예산 부담이 날로 커지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겠다는 게 장관 발언의 취지였다. 

올해 2세 이하 보육료 예산은 2조 9천 694억원이었는데, 내년 예산(정부 안)은 2조 8천 234억 원이다. 올해보다 1천 460억 원이 줄었다. 예산을 맞춤하게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물론 앞으로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한다.) '불필요한 수요'라면 분명 줄여야겠지만, 과연 이게 '불필요한 수요'인지, 부모의 필요에 '맞춤형'인지, 예산에 수요를 맞추는 건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남인순 의원은 이를 놓고 "정부의, 예산을 줄이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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