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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녁 7시 반 강남역…그는 왜 스크린도어를 열었을까?

[취재파일] 저녁 7시 반 강남역…그는 왜 스크린도어를 열었을까?
지난달 29일 저녁 7시 반.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에서 29살 조 모 씨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습니다. 수리를 위해 스크린도어 안에 들어갔다 들어오는 기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계 기관에서는 수리할 때 당시 기본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재작년 성수역에서 비슷한 사고가 난 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할 때 지켜야 할 세 가지 수칙을 제시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 1조로 할 것, ▲ 지하철 운행 시간에는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 부득이 들어가야 할 때는 서울메트로에 알리고 운행을 멈춘 후 들어갈 것, 이 세 가지였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숨진 조씨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려 했고, 열차운행이 한창인 시간에 조씨는 서울메트로에 알리지 않고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고를 당한 조씨가 숨져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간단한 수리를 빠르게 처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조씨가 속한 외주관리업체 관계자는 "당시 장애물 감지 센서에 대한 신고로 조씨가 출동했던 건데, 이는 센서에 묻은 먼지를 닦기만 하면 처리되는 고장이었다"고 말합니다. 간단히 수리할 수 있는 거라 금방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었겠느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씨는 왜 그렇게 급했을까요. 역시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의 근무조건이 이렇더라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씨가 일하는 외주관리업체는 서울메트로의 주요 역 24군데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스크린도어에 넣을 광고도 입찰받아 운영합니다. 24개 역 스크린도어에 대한 '전권'과 함께 '모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 업체에서 스크린도어 점검과 수리 일을 맡은 사람은 38명입니다. 이 인원이 24개 역을 24시간 관리하는 겁니다. 순회점검만 이뤄지는 주간에는 6명, 본격적인 수리가 이뤄지는 야간에는 최대 18명이 조를 짜 돌아가면서 일합니다. 24시간, 휴일도 없이 관리돼야 하는 역 하나에 근무하는 사람은 1.58명입니다.

이 1.58이라는 수치는, 외주관리업체가 제시해 서울메트로가 받아들인 수치입니다. 서울메트로 측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게, 그들 스스로 적정 인원수를 1.29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씨가 일한 외주관리업체 외에 나머지 역 97개를 관리하는 하청업체가 있는데, 이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제시한 최소 인원수가 1.29명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업체는 97개 역을 관리하는데 125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1.29라는 수치에 대해 우려합니다. 이 수치가 별도의 안전기준에 따라 산출된 것이 아니라, '표준품셈'이라는 기준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설경영을 전공한 한 교수는 "표준품셈은 공사대금을 산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 위험한 현장에서 적정 안전관리 인원수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며 "경제성과 함께 안전도 고려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1.29명보다 많은 역 하나당 1.58명 수준의 근무환경에서도, 낮에는 혼자 점검하러 다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다른 근무자를 부르는 방식으로 업무가 이뤄집니다. 낮 근무 인원이 6명이 아니라 12명이어서 두 명씩 짝지어 근무할 수 있었다면, 즉 하루 근무자가 24명(6명 + 18명)이 아니라 30명이었다면, 다시 말해 전체 작업자가 지금보다 1/4만 많았다면 조씨는 어떻게 됐을까요. 서울메트로가 제시한 근무조건이 역당 2명이었다면 말입니다.

다시 조씨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죠. 저녁 7시 반, 수많은 사람이 타고내리는 강남역 승강장입니다.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민원이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이때, 스크린도어 문제는 센서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것입니다.

'12시간 동안 24개 역을 점검하다 야간 조와 교대하러 들어간 동료 5명 중 한 명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바로 곁에 동료가 있었다면, 조씨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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