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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집트니까 볼 수 있는 풍경'

이집트에서 생활한 지 연수생활을 포함해 벌써 2년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게는 참 낯선 땅인 이집트에 살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일을 겪는데(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웬만한 건 그냥 웃고 지나치지만..)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가볍게 해볼까 합니다. 

이집트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주 꺼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정말 이집트니까 이러지”입니다. 이집트인과 만나보면 내 생각엔 당연한 건데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이 있고, 또 아니 저게 어떻게 가능해 하는데 스르륵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돕니다.

 엄청난 크기의 피라미드를 지을 생각을 한 조상들 때문인지, 가끔 보면 이집트인은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걸 현실로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와! 대단하다’라기 보다는 ‘세상에 어쩜 저런 생각을’ 쪽이 더 가까운 게 문제지만요. 오늘 이야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가 찍은 사진과 함께 SNS상에 화제가 된 사진을 중심으로 ‘이집트니깐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 보겠습니다.



맨 위 사진은 얼마 전에 제가 카이로 시내를 차를 타고 가다 찍은 겁니다. 택시에 차에 빈자리가 없으니 트렁크에 탄 듯합니다. 처음이 아닌 듯 자세가 아주 편안해 보입니다. 보통은 트렁크 문을 열고 그 안에 두 사람이 사이 좋게 걸터앉아 가는 데 저 친구는 혼자 트렁크를 다 차지해버렸네요.

이집트는 교통에 있어서 만큼은 ‘자율성?’을 가장 많이 보장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신호등과 차선, 횡단보도가 없는 나라이다 보니 알아서 사고 안 내고 운전하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속도로에서 역주행도 많이 보게 되고, 길 막히면 그냥 사막 길로 내달리는 차량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역주행 하는 차가 나한테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당당히 비키라며 달려올 때의 황당함은 겪고 보지 않고선 모릅니다. 당연히 승차인원도 잘 안 지킵니다. 

등하교 시간엔 예닐곱살쯤 돼 보이는 꼬마 학생들을 열댓 명은 승용차에 가득 실은 통학차량을 어렵게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에 저렇게 많은 6명까지는 아니더라도 4.5명은 올라탄 장면은 쉽게 볼 수 있죠.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경찰이 단속 안 하냐고요? 잡을 때도 있다고 하던데 전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과적은 어떨까요? 답은 같습니다. 단속은 한다는데 잡힌 건 아직 못 봤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적 차량은 교통사고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차가 실은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집어 진 경우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죠. 출퇴근길에 하루 한 번 고장으로 서 있는 차를 안 보거나 사나흘에 한 번 심각한 교통사고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이집트 구경을 제대로 못 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물에 맨발을 담근 채 전기 설비를 하고, 곡예를 하듯 거꾸로 매달려 실외기를 다는 아저씨, 정말 간 큰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선 저런 분들 많습니다. 제가 연수생 시절에 살던 집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부탄가스통을 써야 했습니다. 가스가 다 떨어지면 가스가게에 가서 사람을 불어와 가스통을 교체하곤 했는데, 맨 처음 가스 교환할 때 기겁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가스통을 가져와 교체한 아저씨, 가스가 새는 지 검사해주겠다더니 밸브에다 라이터불을 켜서 갖다 대더군요. 그런 뒤 씩 웃으면서 ‘다멤?’ (Good?) 이러는데 정말 황당해서 말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정말 가스가 샜으면 어쩔려고.. 이 아저씨가?’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가스 밸브는 세정제를 탄 물을 거품이 생기는 지 검사하는 걸로만 알던 제겐 큰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부터 가스통 교체할 때 새는 지 검사해주겠다면 정중히 사양했지만요.

또 하나, 우리나라엔 많은 데 이집트에선 절대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목장갑’ 입니다. 이집트에서 장갑을 끼고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날라도, 전기 설비를 고쳐도, 쓰레기를 치울 때도, 심지어 하수도를 고칠 때도 다 맨손입니다. 사진에 나온 분들도 맨손이죠? 저러다 손을 많이 다칠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습관 때문인지 오히려 맨손이 편하다고 합니다. 연수시절 주변을 청소하던(말이 온갖 쓰레기도 치우는 일까지 하던) 분에게 목장갑을 드린 적이 있는데, 안 끼시더군요. 그래서 왜 안 쓰냐고 했더니, 맨손이 편하다고, 추울 때나 쓰겠다고 하더군요. 


이집트는 건조한데다 비나 눈이 오지 않다 보니 건물을 쉽게 빨리 짓는 편입니다. 철제빔으로 틀을 만들고 짓는 게 아니라 철근으로 여기저기 기둥을 만든 뒤 벽돌을 한층 한층 쌓아서 짓는 쪽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식 집에는 마루 한 가운데 기둥이 박혀있는 구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집을 지을 때 전선, 인터넷, 에어컨 설치 같은 설비가 들어갈 배선이나 구멍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짓습니다. 

일단 네모 반듯하게 짓고 전선을 설치하면 그때 생각해서 설치하는 편이입니다. 그래서인지 벽에 구멍 안 뚫린 집이 없고 외벽에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치렁치렁 매달려 있지 않은 집이 없습니다. 뭐랄까. 일단 지어 보고 뭐 바꿀 일이 생기면 그때 바꾸면 되지 식이랄까요? 이런 긍정적인 사고가 ‘피라미드’도 가능하게 했겠지만요.

보도 블록 사이에 만들어진, 아니 맨홀을 가로지시는 보도블록이 맞겠죠. 저런 일은 참 많습니다. 맨홀에 대해서 참 이해 안 가는 상황을 자주 접하는 데 도로를 새로 포장하면 보통 낡은 아스팔드를 밀어내고 새로 깔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포장을 하고 나면 도로 면과 맨홀의 높낮이를 전혀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죠. 그래서 50미터 간격으로 맨홀 뚜껑이 차 바닥을 긁을 정도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사진의 맨홀도 역시 도로보다 훨씬 높죠? 

도로를 냈는데 정작 빠지는 길을 안 들어서 애먼 방호벽을 부숴서 통로를 내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한마디로 뭔가 하긴 하는데, 해놓긴 하는데, 해놓고 보면 뭔가 빠져있는 듯한…


이것들은 그냥 맛보기로 드리는 서비스 사진들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사진과 드린 말씀만 들으면 이집트가 사람살기 힘든 곳처럼 보여 좀 걱정이 드네요. 위에 사진들은 말 그대로 ‘이집트니까 볼 수 있는 장면’이지 ‘이집트에서 늘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오죽하면 이집트인들도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너무 엉망이고 너무 제멋대로고 너무 위험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규칙과 관용의 틀을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이집트적인 사고와 이집트적인 관습과 이집트적인 삶의 방식이 형성이 되는 거죠. 물론 유럽과 미주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살기 쉽지 않은 나라지만 혼돈과 균열, 전쟁에 시달리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그나마 안전한 삶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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