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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려 이어 조선 보물선까지…누가 '마도'의 보물창고를 열었나?

[취재파일] 고려 이어 조선 보물선까지…누가 '마도'의 보물창고를 열었나?
혹시나 하던 기대가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해 10월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이 넉 달여에 걸친 수중발굴 결과 조선시대 선박으로 확인된 겁니다. 마도 앞바다에선 2007년 태안선을 시작으로 마도 1호, 2호, 3호, 4호선까지 고선박이 다섯 척이나 발견됐습니다. 마도 3호선까지는 모두 고려시대 선박으로 확인됐는데 이번에 4호선이 처음으로 후대인 조선시대 선박으로 밝혀진 겁니다. 

사실 마도 4호선은 발견 당시부터 조선시대 배가 거의 확실할 것으로 예상돼 왔습니다. 배와 함께 인근에서 100점이 넘는 조선백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심증'이 사실로 확인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엔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백자들 덕분에 마도 4호선이 조선 선박일 거라는 심증을 갖게 된 것인데, 확인해 보니 정작 이 백자들은 마도 4호선과는 전혀 관계없는 유물들로 확인된 것이죠. 조사 결과, 마도 4호선은 1417년에서 1421년 사이 침몰된 선박인 반면, 백자들은 수백 년 뒤인 18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확인됐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전문가들은 마도 4호선이 침몰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백자를 싣고 인근을 지나가던 다른 선박이 다시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먼저 가라앉은 마도 4호선 위로 나중에 침몰한 선박의 백자들이 쌓이게 된 거죠. 이런 추정이 맞다면, 마도 4호선 인근에 18세기에 침몰한 또 다른 배가 더 있을 거라는 뜻이 됩니다. 설레는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바다의 경주' 마도

행정구역 상 충남 태안군에 속하는 마도는 신진도와 가의도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섬입니다. 아래 지도에서 '신진도' 표기 바로 왼쪽에 있는 작은 섬이 마도입니다. 이 섬 근처에서 2007년 이후에만 고선박이 5척이나 발견됐습니다. 이 때문에 마도 해상은 '바다의 경주'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마도 인근에서 발견될 고선박이 줄을 이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닻돌'이 124점이나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석에 줄을 매달아 배가 정박할 때 내리는 닻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박마다 닻을 하나씩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닻돌이 124점 나왔다는 얘기는 그 아래 가라앉은 배가 그 숫자만큼은 된다는 뜻이 됩니다. 말 그대로 인근 바다 전체가 보물창고라는 얘기지요.
▲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닻돌

마도 근처에 침몰선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인근 해역이 암초가 많은 탓입니다. 마도 주변 바다는 배들이 지나기 어렵다고 해서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리다가 나중엔 편안히 지나다니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안행량(安行梁)'으로 바꿔 불리기도 했습니다.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태조부터 세조까지 60년 동안에만 마도 인근에서 선박 200척이 침몰하고 선원 1,200여 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 이전과 이후까지 따진다면 얼마나 많은 배가 물 속에 잠겨있을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 수백 년 닫혀 있던 보물창고, 왜 갑자기 열렸나?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수백 년 넘게 물속에 깊이깊이 숨겨졌던 배들이 왜 근년 들어 갑자기 줄지어 발견되는 걸까요? 바닷물이 순식간에 줄면서 해수면이 낮아진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이 꽁꽁 닫혔던 보물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일까요?

그 열쇠는 뜻밖에도 방조제입니다. 원래 마도 인근에선 마도와 신진도 사이를 가로지르며 위아래로 해류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신진도와 마도 사이에 방조제를 놓자 해저 지형이 바뀌고 물길이 막히면서 마도와 신진도 윗부분에서 동서로 흐르도록 해류 방향이 바뀐 겁니다. 이로 인해 그 아래 갯벌들이 쓸려나가면서 묻혀있던 배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물론, 방조제를 놓을 때는 기대는 커녕 전혀 예상도 못했던 뜻밖의 일입니다.
▲ 마도 해역 해류 (방조제 건설 전)
▲ 마도 해역 해류 (방조제 건설 후 )

수백 년 전 유물들을 잔뜩 싣고 있는 고선박들은 말 그대로 보물선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선 지도 한 장을 들고 보물섬을 찾아 나선 주인공이 갖은 시련을 겪고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보물선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전혀 다른 용도로 지은 방조제 덕분에 생각지도 못 했던 수백 년 전 보물선들을 줄줄이 찾게 됐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연이든 행운이든 수백 년 잠들었던 보물선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그 배들은 물론 그 속에 실린 유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그 자체로 보물일뿐더러,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은 마도 해역에 서해유물보관동까지 짓고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발굴에는 수중발굴 전문가들은 물론, 수중탐사 로봇까지 동원합니다. 발견은 우연히 이뤄질 수 있어도 제대로 된 발굴은 치밀한 계획과 노력, 투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조선 선박 발굴을 계기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보물선들이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하면서, 열악한 수중에서 발굴작업에 애쓰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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