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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현대판 심청 "봉양 자금 빌려주면 후반생 드릴게요."

[월드리포트] 현대판 심청 "봉양 자금 빌려주면 후반생 드릴게요."
 심청, 효녀의 대명사죠. 그런데 단골 논술 연습 문제이기도 합니다. 심청이의 효도 방법은 과연 바람직했는가?저는 논술 세대가 아니라서 이를 주제로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학교(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토론을 한 적은 있습니다. 당시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바른 효도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리라 싶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심청이와 비슷한 실제 상황이 벌어져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 여대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 대대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사범대 여학생이 부모의 길러주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사회를 향해 2백만 위안을 빌리려한다'는 긴 제목의 짧은 글입니다.

자신을 쓰촨의 한 사범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판스베이는 2백만 위안, 우리 돈 약 3억8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돈으로 부모에게 대도시 아파트와 생활 가구, 전자 기기를 사드린 뒤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사회보험권을 얻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곧 직업을 구해 앞으로 15년 동안 빌린 돈을 다 갚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자 대신 남은 후반생을 돈을 빌려준 독지가를 위해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즉 자신이 벌어들이는 모든 재산은 그 독지가의 것으로 삼고 정성껏 모시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 석에 자신을 제물로 판 심청이의 현대판이지 않습니까?

글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의 첫 반응은 '글쓴이의 진심을 믿을 수 없다'였습니다. 동정을 얻어 푼돈이나 받으려는 일종의 광고라는 것이죠. 설사 진심이라 하더라도 충동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에 불과할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효도의 방법이 옳나, 그르나를 떠나 황당무계한 생각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이 판스베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올해 23살의 실제 사범대 졸업생이고 취업을 준비 중인 여성이었습니다. 판씨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는 했어도 해당 글을 본인이 썼으며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내놨다고 해명했습니다. 판씨가 설명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67세이시고,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습니다. 위로 30대인 오빠가 2명 있습니다. 농촌 출신인 부모는 제가 14살 때 루저우라는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조그만 상점을 빌려 가계를 운영해서 우리들을 키웠습니다. 형편은 곤궁했지만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밝게 살았습니다. 부모는 스스로에게 쓸 돈을 아껴서 우리 남매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두 오빠는 집안의 대들보가 되기보다 캥거루족이 됐습니다. 육순이 넘은 아버지가 아직까지 오빠들의 생계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신산한 삶과 힘든 생활을 보면서 저는 간절한 꿈을 갖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말년에 궁핍에서 벗어나 모자람 없고 편안한 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올 6월 신문에서 한 사고 기사를 읽고 제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대형 사고로 여러 사람이 숨졌는데 그 가운데 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사고 직전 자신의 아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사고를 예견한 듯한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누구나 말년에는 의외의 일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더 미루지 않고 삶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결심을 실천에 채 옮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죠. 저는 그 기사를 보고 부모에게 안락한 삶을 마련해드리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판씨는 그만한 돈을 모을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학창 시절 여행 가이드 자격증을 따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1개월 동안 실습도 해봤고 직업 가이드들의 삶을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가이드들이 1년에 평균 20만 위안(3천7백여만 원)을 번다고 하더라고요. 필요한 돈을 계산해보니 부모가 생활할 만한 아파트의 보증금이 20만 위안, 가구와 생활 도구를 마련하는데 20만 위안, 부모 두 분의 사회보험을 얻는데 필요한 돈이 40만 위안 등 모두 80만 위안이었습니다. 평균적인 가이드라면 4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돈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8년이 걸릴 지, 10년이 걸릴 지 기약이 없어 보였습니다. 몇 년 동안 영어를 공부해 고급 가이드가 되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죠.

이래저래 따져보니 길어도 15년이면 그 돈을 모을 수 있겠다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부모님이 기다려줄 리가 만무하죠. 풍수지탄을 하지 않기 위해 글에 올린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좋은 분이라면 제 2의 부모로 모시면서 후반생을 그 분을 위해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판씨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친구의 설명입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판의 설명을 계속 듣다보니 그녀의 진심이 이해가 되더군요. 그래서 돕고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닙니다. 도덕성이나 가치관이 건전한 밝은 친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판씨의 방법에 동의하십니까?

실제 언론을 통해 자세한 사연과 배경이 소개되면서 판씨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습니다. '진정한 효성'이라느니, '현실적으로 부모를 봉양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느니, '이런 방법 밖에 쓸 수 없는 중국의 현실이 문제'라는 댓글이 속속 붙었습니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이 하나로 모입니다. '딸의 후반생을 팔아서 받은 돈을 어느 부모가 편하게 쓸 수 있겠나!'

사회학자 후광웨이의 평가입니다.

"판씨를 질책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이런 방법을 절대 추천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해 직업도 없는 여성에게 2백만 위안의 거금을 빌려주는 일은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신용이 있습니까, 담보가 있습니까? 따라서 이에 응하는 경우는 비정상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정상적인 직업 생활을 영위해야지 변칙적인 방법으로 한꺼번에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는 건전하지 못합니다. 단 1천 위안이라도 매달 드리는 것이 부모를 더 기쁘게 하지 않겠습니까?"

판의 지극한 효심과 굳은 의지라면 설사 부모가 당장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성취해가는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방법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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