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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제 잔재' 국세청 별관, 철거가 정답이었나요?

[취재파일] '일제 잔재' 국세청 별관, 철거가 정답이었나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접한 사진일 겁니다. 국세청 별관이 철거된 모습입니다. 국세청 별관 건물은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철거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꼭 철거해야 했냐는 겁니다. 일제 잔재는 무조건 없애는 것이 정답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치욕스러운 역사라도 후대가 기억할 수 있게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독일이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를 그대로 남겨서 그 현장을 역사교육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례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우슈비치 포로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우고 싶은 역사 현장을 스스로 보존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굳이 철거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친일파 청산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있는 듯합니다. 일제 잔재에 대한 처리 방법 중 건물 철거는 그냥 없애버리는 1차적인 접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일제 잔재는 그동안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친일파 청산과 같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친일파 청산은 아직도 현장 진행형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정작 해야할 친일파 청산과 같은 일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철거’와 같은 단순한 것으로 일제 잔재를 정리하는 시늉을 하는 것 아니냐는 염증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국세청 별관을 철거한 건 잘못한 결정일까요? 일단, 저도 잘 몰라서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봤습니다. 우선 한국사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조광 고려대학교 한국사 교수의 자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 교수는 국세청 별관 건물에 대한 한국사적 의미를 짚어줬습니다. 조 교수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국세청 별관 건물은 ‘독립’과 ‘민주주의’ 이 두 가지의 운동이 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조 교수의 자문을 바탕으로 국세청 별관 건물에 대해 간단히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국세청 별관 건물은 1937년 일본이 지은 건물입니다. 일본이 지었다고 무조건 일제 잔재는 아니겠죠. 이 건물이 일제 잔재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건물이 세워진 터입니다. 건물이 세워진 곳은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에 새롭게 왕후로 맞아들인 순헌황귀비를 기념하는 사당인 ‘덕안궁’이었습니다.

이 덕안궁은 덕수궁 안에 있었습니다. 덕수궁은 고종이 살던 궁입니다.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숨겼던 고종이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은 궁이 덕수궁입니다. 그리고 덕수궁은 고종이 일제의 침략 야욕에 대한 강한 의지 표명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덕수궁 터에 일본이 마음대로 건물을 지어 조선총독부 체신국으로 사용한 겁니다.

조 교수는 이런 일본의 행위를 대한제국의 기억을 없애기 위한 행위라고 평가했습니다. 대한제국의 기억은 조선 전통과 조선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의 원천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건물이 일제 잔재이고, 철거돼야할 건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독립 의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는 헐어버리는 게 옳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국세청 별관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장소라고 설명하면서 철거 후에 시민들의 공간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를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항일 독립운동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419의거라든지 6월항쟁과 깊은 관련이 되는 지역입니다 419의거 전날 418때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바로 그 국회의사당 앞 지금의 그 자리에 모여가지고서 이제 항의를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418의거 이후에 419로 이어졌던 것이고 그리고 그 뒤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는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6월 항쟁이 1987년에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는 시민광장이라고 명명된 이 자리는 바로 대한제국의 전통이 서려있는 곳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현장이고 또한 독립투쟁을 전개했던 그러한  아주 절실한 그렇다면은 이 지점은 그렇다면 시민광장이라고 불리우는 이 지점은 대한제국의 전통을 기반으로 해서 그 전통과 역사를 되찾고자 하는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자리입니다. 또한 그 독립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지향했던 419혁명이라든지 6월항쟁이 같이 일어났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결집된 지점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에 그곳은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건축사 전공인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안 교수는 국세청 건물이 있었던 터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길’과 ‘대한제국’ 그리고 ‘서울의 중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안 교수의 설명을 정리했습니다.
“세종대로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출범시키면서 출범시킨 길입니다. 대한제국이 출범되면서 새로운 두 개의 길이 만들어졌는데, 세종대로와 함께 만들어진 길이 소공로입니다.  조선시대 500년 내려왔던 도시중심이 대한제국의 출범과 함께 광화문에서 지금의 이 두길 만나는 서울시청, 대한문 앞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접점에 철거된 국세청 건물이 있었습니다. 건물 철거는 도시 중심 공간을 되찾는 것이고 역사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철거는 근대 한국의 출발점이 된 대한제국의 중심적인 공간을 다시 회복해서 우리의 역사를 그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건물을 철거해서 광장을 만드는 의미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세청 별관이 1930년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기 때문에 건축사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증축과 변형도 많았고, 이런 건물 자체의 건축사적 의미보다 건물과 도시역사의 관계속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제 잔재의 청산의 방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두 전문가는 사안에 따라 방법은 달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공감대 형성은 충분한 설명과 정보 제공이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철거하든 보존하든 앞으로 어떻게 그 공간을 활용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세청 건물이 철거된 현장입니다. 현장에는 23개의 건물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는 당시 건축자재를 공급했던 회사로 추정되는 합자회사의 이름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축당시의 기록도 그 시절 그대로입니다. 건물은 사려졌어도 건물과 함께 했던 시간의 흔적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이 그 곳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철거된 곳에 시민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설계공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기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었고, 그 아픈 역사 속에서는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그리고 그 고통을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을 쳤는지, 새롭게 조성될 광장에서 후손들이 그대로 느끼며 한편으로는 지금의 서울을, 대한민국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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