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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즈푸바오와 뱅크월렛카카오

[취재파일] 즈푸바오와 뱅크월렛카카오
지난 해 초 중국에서 연수할 때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를 한번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가입했습니다. 타오바오의 결제 시스템은 '즈푸바오'(알리페이)입니다.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지만, 계좌 이체의 경우 물건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즈푸바오 계좌로 이체시킨 뒤 구매자가 물건을 받은 다음, 물건에 만족하면 판매자에게 돈이 이체되도록 하는 식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즈푸바오 계좌에 미리 일정금액을 넣어 둔 다음에 쇼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터넷 쇼핑업체는 이 돈을 그냥 가지고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대부분 이 돈을 은행에 넣어서 이자를 받던지,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면서 이익을 챙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이익은 업체로 귀속됩니다. 계좌나 에스크로 서비스를 받는 데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겠지만, 소비자들도 은행 이자율이 낮은데다 금액 자체도 소액이어서 별로 챙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리바바는 이 이자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을 지난 2013년 6월 내놓았습니다. 바로 ‘위어바오’입니다. 우리나라 증권사에서 가입할 수 있는 머니마켓펀드(MMF)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즈푸바오에서 쇼핑하고 남은 돈을 위어바오 계좌로 넘겨 놓으면 이 돈을 운영해서 나오는 이익을 일 단위로 돌려줍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즈푸바오 계좌로 돈을 옮겨 빼낼 수도 있고, 수수료도 없습니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익률인데요, 당시 중국 시중은행의 1년 정기예금 수익률이 3.3~3.5%인데, 위어바오의 수익률은 출시 이후 가장 높았을 때가 6.7%에 달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5.3%까지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은행 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한 중국 대학생의 위어바오 계좌를 들여다봤는데요, 6천 위안을 넣어놓았는데 한 달 여 만에 30위안을 훌쩍 넘는 이자를 받았더군요.

이처럼 수익률도 높고, 편리하고 수수료도 높다 보니 정말 순식간에 엄청난 돈이 위어바오를 유입됐는데요, 출시 8개월 만에 5,000억 위안(당시 환율로 약 87조 원)이란 돈이 모였다고 합니다. 한 중국인 친구는 집에 있는 여윳돈을 탈탈 털어서 위어바오에 넣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군요. (최근 이자율은 3.2% 정도네요.)

또 즈푸바오는 생활 속에도 침투해 있습니다. 상대방 전화번호만 알아도 송금할 수 있습니다. 또 세금 납부나 택시 대금 결제도 즈푸바오로 가능합니다. 정부의 통제가 심한 중국 금융시스템에서 이런 것이 가능했단 사실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우리나라는 왜 안될까?

즈푸바오의 결제 시스템 자체는 우리나라 에스크로 시스템과 같습니다. 다만, 부가적으로 가입자 간 송금이 가능하고, 위어바오라는 파생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은 획기적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도는 계속 있었습니다.

은행이 아닌 모바일 앱을 통한 소액 송금 결제시스템이 있었습니다. KT의 '올레 주머니'가 대표적입니다. 일정 금액을 충전해 놓으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만으로 송금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KT는 '사업상의 이유'로 작년 말 이 사업을 접었습니다.
현재 간편 결제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다음카카오입니다. '카카오페이'와 '뱅크월렛카카오'가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카카오페이는 카카오톡 내에서 개인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등록하여 다양한 곳에서 결제 시 간단한 비밀번호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뱅크월렛카카오는 앞서 얘기한 올레 주머니와 비슷합니다. 50만 원까지 뱅크머니를 충전해 놓으면 온-오프라인에서 결제할 수 있고, 하루 최대 10만 원까지 송금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핀테크의 대표주자라고 하지만, 앞서 말한 즈푸바오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도 지난 5월 핀테크 학술대회에서 이런 현실에 울분을 토했습니다.

"오늘 막말 좀 하겠다. 정말 울고 싶다. 핀테크 기업을 대표해 이 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소액의 돈을 보내는 뱅크월렛카카오 서비스 출시에만 무려 2년 반이 걸렸다. 이 서비스를 처음 기획한 건 2012년 3월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보안성 심의를 통과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그나마 하루 송금액 10만 원이 고작이었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머니마켓펀드 위어바오 잔액이 100조 원인데 경쟁이 되겠느냐."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참석한 자리에서, 원고에 없는 이런 직설적인 발언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맺힌 게 많았다는 것이겠죠. 정부가 말로는 핀테크 활성화를 외치지만 정작 핀테크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정부 규제라는 외침이었습니다.

"한국에 만연한 규제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핀테크는 힘들다. 금융당국의 보안성 심의를 받는 데만 꼬박 1년 반이 걸려 서비스는 한참 뒤에 나왔다.거래 1만 건 중 단 한 건의 사고도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한국의 핀테크 문화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언론에 대서 특필되고 곧이어 금융당국이 촘촘한 규제를 덧씌운다. 뒤늦게 규제를 푼다고 하는데 법을 좀 고치고 시행령을 바꿔도 그게 근본적인 대책일지는 잘 모르겠다. (규제에 길들여진) 한국 금융의 마인드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큰 기업인 다음카카오도 규제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작은 스타트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 규제 당국과 언론은 물론 사회 모두에 책임이 있다."

옳은 말입니다. 정부의 모든 부처가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지금까지의 금융 제도와 규제의 목표는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보다는 사고 방지에 무게가 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시도 앞에서는 눈치보기 바빴고, 머뭇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인사는 "좋게 말하면 무결점주의, 완벽주의지만 사실은 보신주의"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언론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소한 진통도 침소봉대하며 큰 일이 날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까?

며칠 전 금융감독당국은 다음달 중으로 뱅크월렛카카오의 충전 한도를 200만원으로 올리고, 1일 송금 한도도 30만원을 늘린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표의 작심 비판 이후, 그리고 "핀테크와 관련해서 사전 규제를 자꾸 쓸 데 없이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지 두달여만입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 금융은 외국에서 먼저 검증된 경우와, 윗사람이 한마디 할 때만 움직인다"는 자조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편리한 인터넷-모바일 뱅킹만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리나라 금융, 정말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보수적인 금융권에 자극을 줘야합니다. 핀테크 플랫폼과 인터넷 전문은행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의 한국 금융'이라는 황당한 비판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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