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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궁화는 정말 나라꽃일까?

[취재파일] 무궁화는 정말 나라꽃일까?
70년 전 8월 15일.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계절에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얻었다. 무궁화가 민족의 꽃으로 일제 강점기를 함께 이겨낸 터라 기쁨은 더 컸을 것이다. 태극기와 함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는 언제부터 무궁화였을까? 어떻게 나라꽃이 됐을까? 정말 나라꽃이 맞을까?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궁금증을 풀어본다.
 
● 무궁화나무, 무궁화 꽃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한다.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 syriacus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에는 시리아 일대를 원산지로 분류했지만 지금은 동아시아 일대를 원산지로 보고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집단 자생지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한국을 원산지로 포함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온난한 곳을 좋아해서 주로 황해와 강원 이남에서 잘 자란다.

꽃은 7월부터 9월까지 3달 가까이 피어있다. 꽃 하나하나로 보면 이른 새벽에 피어나서 12 ~ 15시간 정도 지난 뒤 꽃잎을 다시 오므리고 떨어지지만 다음 날 또 수십 송이가 피어나면서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무궁(無窮)한 것처럼 말이다.
 
● 과거의 무궁화 이름 - 槿, 木槿花

우리 문헌 속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주로 한자이름인 근(槿)으로 등장한다. 고려와 조선의 다양한 문집에서 무궁화는 근(槿), 목근(木槿으)으로 등장하는데 주로 울타리에 핀 꽃이나 잘생긴 남자의 얼굴, 또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죽어 단명의 의미로 쓰인다.

기원전 4세기경 쯤 쓰인 중국의 신화,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훈화초(薰華草)를 근거로 고조선부터 무궁화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꽃이었다는 견해도 있고,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신라를 무궁화의 나라인 槿花鄕으로 표현했다는 문헌도 존재하지만 모두를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해 조심스럽다.
 
● 무궁화 이름은 언제부터?

우리말로 무궁화란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 후기인 문신인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이다. 관련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두 사람이 무궁화 이름을 놓고 논쟁하는데, 한 명은 무궁화(無窮花)가 꽃이 피고 지고 끝이 없기 때문에 무궁(無窮)의 의미로 무궁화라고 부른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옛날 왕이 무궁화(無宮花) 꽃을 너무 좋아해서 육궁(六宮, 왕후와 다섯 후궁)이 무색(無色)해졌다는 의미로 무궁(無宮)이라고 부른다는 주장이다.

各論槿花名 或云無窮 無窮之意 謂此花開落無窮
或云無宮 無宮之意 謂昔君王愛此花 而六宮無色

어느 것이 맞느냐를 떠나서 이미 이시기에 우리말로 무궁화란 이름이 널리 불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한글이 창제된 뒤에는 한글로 "무궁화"란 표현도 자주 나온다.
 
●무궁화는 왜 나라꽃이 됐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 문헌이나 문학작품에는 무궁화의 미덕(美德)을 노래한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인 것은 분명했다. 무궁화가 결정적으로 민족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다.

서양열강과 일제의 침략으로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살던 민중들은 개인은 물론 국가의 존망을 걱정했고, 민족적 자주성과 주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국가와 민족이 무궁(無窮)하길 바라는 간절함은 “피고 지고 또 피는 꽃” 무궁화(無窮花)에 투영됐다.

다양한 종류의 애국가와 문학 작품, 민요, 독립군의 군가 속에서 무궁화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상징이 됐다. 한 송이 꽃으로서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질 만큼 짧은 생명이지만 한 그루의 나무로서 무궁화는 석 달 넘게 꽃을 이어가듯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나 하나쯤 기꺼이 꽃으로 스러질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목숨 아껴 두려울 우리들은 아니다/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묘한 이치니/ 사나이답게 싸워서 무궁화로 지자 - 독립군가 [광복군가] 중에서 ”

“ 반만년래 자란 뿌리 땅을 덮었고/ 삼천리에 뻗은 가지 세계 빛나네/ 가지마다 송이송이 무궁화 피며/ 아름다운 배달 열매 삼천만이다. - 독립군가 [민족의 약동] ”

“ 무궁화 삼천리는 우리강산/ 신성한 삼천만은 우리민족/ 삼천리 삼천만은 우리한국/ 만세만세 영원무궁 - 독립군가 [무궁화] ”
 
● 무궁화는 정말 나라꽃일까?

나라꽃으로서의 무궁화 지위는 해방이후 몇 차례 저항을 받기도 했다. 자생지가 주로 중부 이남이어서 전국에 걸쳐 피는 꽃이 아니고, 원산지도 우리나라인지 불분명하며 진딧물도 많고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진달래 개나리에 비해 늦어도 너무 늦게 꽃을 피운다는 이유에서다. 배꽃과 매화꽃, 복숭아꽃, 또는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과거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노래된 것에 비해 초라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심지어 무궁화는 법적으로 나라꽃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했다. 무궁화 문양은 대한민국의 입법, 사법, 행정부를 상징하는 표상과 국새, 훈장, 태극기의 깃봉, 각종 계급장 등 곳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태극기가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기로 인정받은 것과 달리 무궁화는 어떠한 법에서도 나라꽃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무궁화에 대한 국민들의 친밀도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무궁화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도 활발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엄연한 우리의 나라꽃이다. 나라와 민족이 제일 힘들었던 고통의 시기에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우리 곁을 지켜왔다. 태극기와 함께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였고, 공동체의 표상으로서 제 본분을 충실히 수행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전쟁,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을 함께해왔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나라꽃이다. 영국의 장미, 일본의 벚꽃처럼 대부분의 나라꽃이 왕실을 상징하는 것과 달리 무궁화는 우리 국민 스스로 직접 선택한 우리의 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잠시나마 무궁화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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