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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도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그를 찾기 위한 시간

유해도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그를 찾기 위한 시간
"1910년 2월 14일 피고 안중근 사형."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일본의 초대 총리이자 제1대 대한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그는 의거 직후 체포돼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갇혔고 이듬해 사형 선고를 받아 같은 해 3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안중근 의사는 형이 집행되기 전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일제 침탈에 맞서는 동아시아인들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그의 시신을 유기해버렸다.

광복 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안중근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김월배 교수는 저서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간양록'에서 그동안 확보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에 대한 모든 자료와 앞으로 진행될 유해발굴 사업에 참고될 만한 정보, 유해발굴의 실효성 있는 방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김 교수는 2005년 중국으로 건너간 후 지난 10년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 데 헌신했다.

그의 오랜 노력을 토대로 책에는 과거 진행된 한·중 내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성과, 뤼순 감옥에서 단독으로 유해발굴을 시도한 사실, 유해 매장지에 대한 일본 측 사료, 당시 신문 보도와 사료, 안중근 의사 수감 당시 일본인과 뤼순 감옥의 중국 측 근무자·수감자 증언, 1970년대 뤼순 감옥 주변 거주자의 증언 등 의미 있는 자료가 집대성됐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찾기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의 노력이 모두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 의사 매장지에 대한 근거가 될만한 자료를 전면 공개하지 않고 있고,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지표 투과 레이더' 도입을 꺼린다.

저자는 "이런 한계 속에서 우리 정부도 미온적이고 단발적인 참여만 하고 있다"며 "한·중·일 공동 유해발굴위원회를 설립해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동거울.

320쪽.

1만8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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