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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립운동했는데…외면받는 '전설의 항일 투사'

<앵커>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 단원들의 단체 사진입니다. 맨 오른쪽의 청년이 의열단을 만든 약산 김원봉 선생입니다. 전설적인 항일 투사였지만, 월북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준모 기자가 약산 선생의 유일한 혈육을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일제가 무려 320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며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 바로 항일 무력투쟁을 주도한 약산 김원봉 선생입니다.

[김원봉 선생/실제 육성 : 조선의용대의 공작의 임무는 (일제에 대한 선전전)인 것입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 단장과 임시정부 국방장관직을 역임하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1948년 월북했다가 1958년에 숙청 당하면서 남과 북은 물론 고향에서도 외면받은 비운의 독립운동가입니다.

이곳은 약산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있던 자리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가 복원이 이뤄지지 않아 이렇게 잡초만 가득한 공터로 방치돼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혈육인 막내 동생의 소망은 오빠의 복권입니다.

[김학봉/김원봉 선생 막내동생·85세 : 나 혼자 열심히 기도합니다. 우리 오빠 서훈 받게 해달라고. 그리하면 내 한이 안 풀어지겠나.]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김원봉 선생에 대한 서훈 신청은 번번이 심사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성영/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장 : (김원봉 선생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해도 된다는 민족주의자였지, 어느 한쪽에 경도된 사회주의자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원봉 선생의 항일 투쟁을 재조명하고 서훈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학모, 영상편집 : 장현기, CG : 이요한, 화면제공 :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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