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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칼레의 전쟁…초대받지 못한 자의 비극

[월드리포트] 칼레의 전쟁…초대받지 못한 자의 비극
프랑스 땅 칼레는 영국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다. 해저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건너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3천 명~5천 명 가량의 아프리카, 아시아 출신 난민이 있다.

내전과 기아, 독재를 피해 목숨을 걸고 자국을 탈출해 프랑스까지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칼레에서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영국 행이다. 영국에 가면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브리티시 드림’(British dream)을 꿈꾸는 것이다. 몸은 프랑스에 있지만, 마음은 영국으로 향해 있다.

합법 이민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으로 몰래 들어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난민들은 칼레에 멈췄다 영국으로 들어가는 화물트럭, 열차, 배 등 모든 교통수단에 몸을 숨긴다. 영국 잠행에 성공하거나, 경찰 단속에 걸려 쫓겨 나거나 둘 중 하나다. 올 들어서만 밀입국 시도가 3만 7천 건이나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차에 치이고 질식해 6월부터 지금까지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정부는 겉으로는 영국과 공조해서 국경을 통제한다. 경찰 병력도 추가 투입해 막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부 공식 발표와 달리 칼레시 부시장의 언론 인터뷰는 직설적이다. “칼레에 모인 난민의 99%가 영국으로 가고 싶어하는데 이유는 영국이 주는 혜택 때문이다”고 말했다.

부시장은 “난민들은 영국에서 불법 취업을 하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영국 정부는 불법 노동자들을 단속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업을 어렵게 만들어 난민의 영국행을 포기하게 만들든가, 아니면 적정 수준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다.
영국은 강력한 국경 통제 외에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국 내부적으로 반 이민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섣불리 난민을 받겠다고 발표할 수 없다. 대신, 영국 정부는 난민에게 주는 혜택은 영국이나 프랑스나 비슷하다며 브리티시 드림은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혜택을 비교해보자. 난민이 망명을 신청할 경우 영국은 결혼한 성인에게는 일주일에 72.52파운드(13만2천원)를 준다. 프랑스는 유로화를 환산하면 80.15파운드(14만6천원)를 준다. 프랑스가 조금 더 준다.

반면, 프랑스는 자녀에 대한 추가 지원금이 없지만, 영국은 미성년자에게도 나이에 따라 지원금을 준다. 자녀가 있다면 영국이 더 나은 셈이다. 영국은 망명 신청자에게 주택을 지원하는데, 거주 지역이나 집의 유형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프랑스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집세를 비교하면 런던이 파리보다 25% 가량 집세가 비싸 런던이 주택을 구하기 더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 지원도 유사하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망명 심사가 진행중인 동안에는 건강보험을 지원해 준다. 자녀 교육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망명 신청 이후 의식주와 관련해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큰 차이가 없어 영국 정부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영국과 프랑스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다. 먼저, 일자리다. 실업률은 프랑스가 10%가 넘지만, 영국은 5.5%다. 영국이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는 건 명확해 보인다.

칼레 부시장의 말처럼 지하경제 또는 불법 노동시장의 문제도 중요하다. 난민들은 망명 신청이 거부될 경우를 포함해 불법 신분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증빙 서류 없이 일하기 쉬워야 한다.

OECD 조사에서 영국은 전체 고용에서 불법 이민자 비중이 1%인데, 프랑스는 0.75%라고 한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영국에 일자리가 더 많아 보인다. 역사적 관계도 중요한 요소이다. 칼레에 모인 난민들은 파키스탄, 수단,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출신들이 많다.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들이다. 영어에 익숙하고, 영국에는 출신지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 정착하기 쉽다. 프랑스의 경우도 지난해 망명 신청자가 가장 많았던 나라는 콩고인데, 콩고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식민지였다. 언어와 풍습이 조금이라도 익숙한 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칼레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이다. 난민이 모여들자 난민 수용소가 생겼고, 수천 명의 망명 신청자들이 거주했다. 2001년에서 2002년,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이었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난민 수용소를 해체했다. 그의 반 이민 정책은 익히 알려져 있다. 수용소에서 쫓겨난 난민들은 칼레항 근처에 천막을 치고 하루 하루 삶을 이어갔다.

물도 화장실도 없는 이 곳을 ‘정글’이라 부른다. 정글에서는 민족간 다툼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했다. 지난해 9월 수백 명의 난민이 페리로 몰려들어 영국 행을 감행하면서 정글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흘렀고, 해법을 마련하자는 목소리는 컸지만 결론은 없다. 유럽에서 난민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고, 내 영토에만 없다면 못 본 척 해야 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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