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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방학이 괴로운 아이들

방학 기간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겠죠. 저는 과외 금지 세대라 방학이 실제로 공부에서 해방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적어도 초, 중학교 시절에는 방학에 공부 이외의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수영장으로, 놀이공원으로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학생들은 방학에도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방학이 아니라 보학, 모자랐던 공부를 보충하는 기간인 듯합니다. 각종 과목의 학원을 등록하고 '특강'을 쫓아다니느라 바쁩니다.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가슴 아프고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학생들도 '방학 괴로움'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육열이 우리나라 뺨치는데다, 중국 역시 어느 대학을 나오느냐가 향후 인생을 결정짓기 때문에 방학을 글자 그대로 '공부를 쉬는 기간'으로 삼는 학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중국 학생들은 한술 더 뜹니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총망라한 모습입니다. 무슨 소리이냐고요? 이른바 입시 명문 학교들이 학생들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붙잡아두고 몰아붙이는 우리의 1980년대 모습부터, 아르바이트 대학생에게서 개인과외를 받는 1990년대의 행태와, 유명 학원에 막대한 수업료를 주고 밤늦도록 학원가를 전전하는 2000년대 이후 상황이 모두 뒤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지역마다 교육 환경이 다르고, 빈부 격차도 어마어마하고, 입시 제도와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교육계의 부조리 현상도 나타납니다. 바로 현직 교사들의 '사교육 시장 진출' 문제입니다.

올해 초 중국 교육부는 '초등, 중등학교에서 현직 교사들의 유상 보충학습 규정'이라는 행정명령을 각급 학교에 시달했습니다. 쉽게 말해 '학교에서 돈 받고 보충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금지령'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 소학교(초등학교), 초중학교(중학교)는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고 상급 학교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보충 수업에 매달려 왔습니다. 방과 후나 방학에 현직 교사들이 일정한 과외 수업료를 받고 보충수업을 했습니다. 학교가 '학원' 노릇을 한 셈이죠.

그런데 중국 교육부가 이를 금지한 것입니다. 보충 수업료와 관련된 각종 비리가 만연한 탓도 컸지만 주요하게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에서 나온 조치입니다. 특히 방학에 지나친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여론의 비판을 수용했습니다.

정부의 조치가 나오면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중국답게 이번 방학에 모든 학교의 보충수업은 일거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만고불변의 원칙이 있죠.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는 대책이 있다.' 현직 교사들이 자신의 집에서, 또는 일정한 장소를 빌려서 보충 수업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하지 말라고 하니 학교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학생과 선생님들은 이번 여름 방학에도 '보충학습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주 6일 보습'과 '현직 교사의 보충학습 교사 변신' 현상은 여전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장시성 난창시의 중학생 샤오판(가명)의 올 여름 방학 생활은 이렇습니다. 매일 집과 학원을 쳇바퀴 돌듯 다닙니다. 

월, 수, 금은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수학 과외,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과학 과외를 받습니다. 매주 화, 목, 토는 저녁 6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영어 과외를 합니다. 토요일 오전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음악 과외에 참여합니다.

샤오판은 당연히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거의 매일 과외가 있어서 학기 때보다 더 바빠요. 그래도 학기에는 토, 일 이틀을 쉬었는데 이제는 하루 밖에 쉬는 날이 없으니까요.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그나마 샤오판이 위안을 얻는 것은 학원 선생님이 자신의 학교에서 가르치던 담당 과목 선생님이라는 점입니다. 새로 적응할 필요가 없죠. 같이 학원 수업을 듣는 반 친구들은 학교에서 매일 보던 친구들입니다. 함께 동병상련을 할 수 있어 그나마 낫습니다.

저장성 닝보시의 한 중점 중학교 학생인 차이모 양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학교 선생님 집에 가서 어문 보충 수업을 듣습니다. 물론 차이모가 다니던 학교의 담당 교사입니다. 같이 듣는 친구는 20명쯤 됩니다. 어문 외에도 수학, 영어, 물리 보충 수업을 받습니다.

역시 각 과목의 현직 교사입니다. 각 과목의 교습비는 1천5백 위안, 우리 돈 28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차이모 양의 경우 4과목을 들으니 1백10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딱 1개월 만에 이런 보충 수업비를 들여야 하니 한 학기 등록금보다 비싼 셈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녀를 무조건 보냅니다. 학습 효과가 우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내지 않았다가 입게 될 손해가 두려워서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샤오판의 아버지가 털어 놓는 말입니다.

"학교 과목 담당 선생님이 가르치잖아요. 정식 학기에 들어가면 방학 보충 수업 때 가르쳤던 내용은 당연히 건너뛰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겠죠.  또 행여 시험에 방학 때 수업한 내용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요? 이런 저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무조건 보내야죠."

한 고교 교사의 토로입니다.

"만약 방학 보충학습을 하지 않으면 학기 중에 진도를 맞추기가 힘들어요. 가르쳐야 할 내용이 많은데 너무 진도를 빨리 빼면 학생들이 따라오기 힘들죠. 할 수 없이 방학 동안 일정 부분 진도를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방학 보충수업을 듣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 전 베이징 대학 학생들과 집단 토론을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중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경험을 묻자 정확히 반으로 나눠졌습니다. 사설 학원이나 '푸다오', 즉 과외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다는 그룹과 순전히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만 경험했다는 그룹의 수가 똑같았습니다.

당시 '그래도 중국은 공교육이 절반은 살아 있네.'라며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실상을 알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공교육이 '사교육화'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1980년대 겪었던 현상과 비슷합니다.

비록 우리나라처럼 엄청난 사교육비에 가계 경제가 왜곡되는 현상은 상대적으로 작다 하더라도 중국의 교육 역시 건강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경구를 금과옥조로 삼는 두 나라가 왜 이렇게 근시안적인 교육 제도와 행태에 얽매여 있는지 불가사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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