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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냥산업의 마르지 않는 젖줄 '미국 사냥꾼'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교에 있는 미국인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년)의 자택에 가면 곳곳에 걸린 박제된 동물의 머리가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응접실 벽에는 헤밍웨이가 잡은 초식동물의 머리가 군데군데 걸려 있습니다.

서재 책상에는 어린 맹수의 박제된 머리가 아가리를 벌린 채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마초(남성다움)적인 성향의 헤밍웨이는 생전에 총을 들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사냥을 즐겼습니다.

사냥에서 얻은 '전리품'을 집으로 가져와 두고두고 기념했습니다.

쏴죽인 동물의 사체를 집으로 가져와 상업적으로 거래하지 않고 자신의 과시용 박제 기념품으로 두려는 사냥 행위를 '트로피(trophy) 사냥'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9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에서만 야생동물 1만1천 마리 이상을 덫을 놔 사로잡거나 죽였습니다.

헤밍웨이와 더불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폴크너도 트로피 사냥을 즐긴 미국인입니다.

짐바브웨의 '국민 사자' 세실의 머리를 잘라 죽인 인물로 지목된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55)에 대한 전 세계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29일(현지시간) 소개한 내용을 보면, 아프리카 사냥산업을 지탱하는 건 미국 사냥꾼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총기 소유의 자유를 헌법으로 인정한 미국의 국민답게 이들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노는 야생동물을 향해 맘껏 총을 갈겼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미국의 소리' 방송을 인용해 전한 보도를 보면, 남아프리카 사냥 산업의 연간 규모는 7억4천400만 달러(약 8천634억 원)에 달합니다.

열흘짜리 코끼리 사냥 패키지 상품의 가격은 3만6천 달러, 코뿔소 사냥 상품은 10만 달러나 합니다.

허가된 구역에서 사냥을 위해 길러진 야생동물을 잡는데에도 2만 달러가 들어가지만, 사냥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해마다 9천 명 정도가 트로피 사냥을 위해 남아프리카 대륙을 찾는 상황에서 이들의 90%가 미국인입니다.

이들의 사냥을 돕는 지원 인력은 7만 명입니다.

노는 땅에서 고용 효과를 내는 사냥 산업이야말로 가난한 아프리카 대륙 여러 나라에서 수익성 높은 관광 상품입니다.

사냥꾼들이 낸 사냥 참가비는 역설적으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사용됩니다.

독특하게 총 대신 활로 사자 세실을 사냥한 파머는 합법적인 사냥 구역이 아닌 일반 사유지로 사자를 유인해 죽인 뒤 머리를 자른 혐의로 비난을 자초했습니다.

사자를 죽인 것은 후회하나 전문 가이드를 통해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던 파머의 해명에도, 그의 잔인한 사냥 방식을 두고 '괴물', '범죄자',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취미'라는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무려 40시간 동안 세실을 추적해 죽인 뒤 머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기는 데 파머가 쓴 돈은 5만 달러입니다.

짐바브웨 수사 당국은 밀렵을 위해 사유지를 무단으로 침범한 혐의로 파머를 조사할 참입니다.

동물 애호가들은 단순히 박제품을 챙기려는 트로피 사냥이 불법적인 행위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크게 반대합니다.

합법을 가장해 불법으로 사로잡은 동물의 가죽과 뼈를 암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

동물 개체 수의 기록적인 감소도 걱정하는 대목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야생 사자는 1세기 전만 해도 20만 마리에 달했으나, 무분별한 사냥으로 최근에는 3만 마리로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이에 반해 제한된 구역에서의 사냥은 미국 낚시 야생동물보호국과 세계야생동물기금에서도 지지하는 방식이고, 여러 종의 동물 중에서도 약한 동물을 사냥함으로써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며 트로피 사냥을 옹호하는 측도 있습니다.

오히려 큰돈을 내고 사냥에 나선 미국인보다 이들을 호도해 불법 사냥으로 이끄는 현지 전문가와 가이드가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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