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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학원 뺑뺑이 대안은 없을까?…믿고 맡기는 방학학교

[월드리포트] 학원 뺑뺑이 대안은 없을까?…믿고 맡기는 방학학교
기자의 아이는 프랑스 초등학교에 다닌다. 한 번은 봄방학이 끝난 뒤였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방학 때 무엇을 했는지 그림으로 그리라고 한 모양이다. 아이는 집에서 장난감 갖고 노는 장면을 그렸다. 교사는 그림 밑에다 “참 안됐네” 라는 글을 남겼다. 프랑스식으로 위로하는 말이지만, 부모로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일하는 아빠 때문에 휴가를 갈 수 없었는데…

아빠도 똑같이 당했다. 엊그제 엘리베이터 안에서 옆집 사람을 만났다. 나에게 휴가를 안 가냐고 물었다. 일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하니, 역시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참 안됐네.” 늘 나오는 프랑스식 대화법이지만, 막상 들어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오늘 아침 보니 그 집은 바캉스를 떠난 모양이다. 창문이 다 가려져 있다. 프랑스에선 방학에 휴가를 못 떠나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불행한 일이 된다. 불우이웃이 따로 없다. 부모가 일하면 아이도 휴가를 못 가, 졸지에 다른 사람의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프랑스인이 휴가를 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인 부모도 직장을 다니면 휴가 기간이 아닐 때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이 때 프랑스인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아이를 보내는 곳이 있다. 프랑스어로 ‘centre de loisirs’, 번역하면 여가센터라고 할 수 있다. 방학 때 아이를 맡아주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보면 방학학교인 셈이다. 휴가 못 가는 불우한(?)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교육 복지인 셈이다. 여가센터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운영시간?
수업이 없는 수요일 오후와 방학 기간에 운영한다. 수요일은 점심 시간 이후부터, 방학은 보통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하루 종일 이용할 수도 있고, 반나절만 이용해도 된다.
 
장소?
지방자치단체가 공립학교 건물을 빌려 운영한다. 파리의 경우 평소 662개 공립학교에서 운영하고 여름 방학의 경우 바캉스를 떠나는 학생들이 많아서 280여개로 줄여서 운영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여가센터로 가거나, 운영 프로그램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간다.
 
대상?
3세~14세까지 맡아준다.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여가센터도 있다.
 
프로그램?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매일 바뀐다. 아이와 부모가 상의해서 그날 그날 선택할 수 있다. 실내활동으로는 회화, 조소, 공예, 연극, 비디오 제작, 노래, 게임 등이 있다. 야외활동은 수영장, 수족관, 동물원, 박물관 가기, 소풍, 영화관 가기, 자전거 타기 등이 있다. 4~5일간 집을 떠나 시골이나 해변에서 캠프를 열기도 한다.

부모 부담?
부모는 소득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파리시의 경우 부모 소득을 10등급으로 분류한다. 여가센터에 하루 종일 보낼 경우 저소득층인 1등급은 하루 0.5유로(640원)를 낸다. 중간소득층인 5등급은 8유로(1만2백원), 고소득층인 10등급은 21유로(2만7천원)쯤 한다. 4박 5일 여행을 보내면 5등급이 하루 15유로(2만원) 정도 낸다.

추가 부담?
부모는 아이가 어떤 활동을 선택해도 추가 부담이 없다. 부모가 내는 비용은 점심식사와 간식을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 실내 외 활동에 필요한 교통비, 입장료, 교재비 등 제반 비용은 지방자치단체가 충당한다. 세금을 거둬 교육 복지에 사용하는 것이다.
 
강사진?
여가센터는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정규 교사가 아니다. 우리로 치면 특별활동 강사인데, BAFA라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 아이들 연령에 대한 이해, 대처방법,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여러 활동을 배워야 한다. 실습 기간도 거쳐야 한다.
바캉스를 못 가는 프랑스 아이들에게 이만한 시설은 없다. 여가센터에 가면 동네 또래 친구들이 있어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고, 매일 새로운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안전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니 만족도가 높다. 그래서 유치원, 초등학생의 60% 정도가 방학학교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한국도 직장이 있는 부모는 방학이 늘 고민이다. 과하지 않은 부모 부담과 정부가 관리하는 믿고 맡길 시설이라는 조건이 갖춰진다면 프랑스식 여가센터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예산 문제가 걸릴 것이다. 세금을 얼마나 거둬 어느 정도 투입해야 하느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파리시는 기자에게 예산을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프랑스 한 지방도시의 경우 여가센터 예산에서 시가 60%, 부모가 40% 정도를 분담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모든 복지가 그렇듯이 제도에 대한 필요성과 공공성, 실행 의지가 더해지면 원형 그대로든 변형이든 시행이 가능하다. 방학 때마다 친인척 도움 받기가 미안하다, 아이들 학원 ‘뺑뺑이’도 정도껏 해야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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