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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끊어내지 못하는 마약과의 질긴 악연

[월드리포트] 중국 끊어내지 못하는 마약과의 질긴 악연
"마약 퇴치 전쟁에서 완승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군대를 철수시킬 수 없다."

지난달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마약 단속과 퇴치를 맡고 있는 모범 기관과 기관원에 대한 표창 수여식장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외친 말입니다.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절대 관용이란 없을 것"이라고도 못 박았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서늘한 결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중국 내 마약 관련 상황을 보면 시 주석이 이렇게 얼굴을 붉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시 주석의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 중국 국가금독위원회는 사상 최초로 중국 내 마약 상황을 밝힌 '2014년 중국 마약 형세 보고서'를 냈습니다. 마약과 관련한 중국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그만큼 다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 등록된 마약 중독자수가 295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한 해 늘어난 등록자수가 48만 명으로 20%나 급증한 셈입니다.

마약 중독 등록자는 마약을 사용하다 공안 당국에 적발된 사람들입니다. 마약 중독자 가운데 경찰에 붙잡히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러니 실제 마약 중독자수는 훨씬 많습니다. 앞서 든 보고서에서는 무려 1천4백만 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넘습니다. 중국 당국이 자국의 마약 사용자수를 일부러 과장할 이유가 없으니 이런 수치조차도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마약의 확산 추세입니다. 중독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직업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자로 등록된 사람의 57% 이상이 35세 이하의 젊은 층입니다. 18세도 안 된 중독자가 3만 명에 달합니다. 저연령층에서 마약이 퍼져나가고 있는 만큼 마약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직업도 과거에는 무직이나 자영업자, 해외 근무자 등이 주류였지만 이제는 회사원, 공무원, 연예인 등 상대적으로 사회 안정 선호층이 늘었습니다. 마약이 중국 사회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사용되는 마약 종류도 걱정스럽습니다. 주사기 등으로 투입해야 하는 전통 마약 대신 구강으로 쉽게 섭취할 수 있는 합성 마약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독자의 49%, 거의 절반이 합성마약 사용자입니다. 그만큼 확산이 용이해졌습니다.

사실 중국이 마약과 맺은 악연은 그 어느 나라보다 길고 참혹합니다. 중국은 마약 원료 가운데 하나인 대마의 발상지입니다. 약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대마가 재배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때부터 대마를 가공해 마리화나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대마에 환각과 각성 성분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신장 지역에서 발굴된 2700년 전 고대 무덤에서는 마리화나가 789g이나 발견됐습니다. 당시 신장은 중국의 권역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국의 근방에서 이미 마약의 생산과 제조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중국 한 고대 문헌에서는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무속신앙이나 환자의 치료에 마약 성분을 사용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중국에 고대 문명이 형성된 시기부터 이미 마약은 한 자리를 차지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중국은 마약과 거의 무관하게 살았습니다. 당나라 시절 아라비아 지역과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일종의 조공이나 진상품으로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양이 극히 적고 귀해서 황가나 고위 귀족 사이에 약재로만 쓰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약이 환각제로 퍼지기 시작한 시기는 명나라 중기 이후로 분석됩니다. 중동에서 아편의 수입량이 늘면서 귀족이나 부호들 사이에서 아편이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이 마약과 본격적으로 악연을 맺은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아편 전쟁입니다. 영국이 중국의 비단 등 사치품과 특히 차를 다량으로 수입하면서 막대한 무역적자를 봤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국제적 결제 수단인 은의 보유량이 급감하자 영국의 '악마의 카드'를 꺼내 듭니다.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대량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후의 전개는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중국 사회는 아편의 폐해로 급격히 무너졌고 청나라는 아편 전쟁에 패하면서 서구 열강의 본격적인 침탈을 받습니다. 그리고 끝내 나라가 망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끔찍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성립된 신중국은 당연히 마약이라면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마약 사범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엄하고 가혹한 처벌을 했습니다.

지금도 중국 형법 347조는 '1kg 이상의 아편, 50g 이상의 헤로인과 필로폰을 밀수, 파내, 운반, 제조할 경우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 최고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2kg 이상의 마약을 유통할 경우 대부분 사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지난해 8월 이후 중국에서 마약과 관련한 범죄로 4명이나 사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우리 외교부는 사형만은 피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중국의 마약 사범에 대한 태도가 워낙 강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혹하리만치 엄하게 마약 사범을 처벌하는데도 글 모두에 밝힌 대로 중국의 마약 실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마약을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중국은 마약과의 끔찍하고도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음 글을 통해 설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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