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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교야구 감독의 접대비'가 관례?…빗나간 입시 관행

[취재파일] '고교야구 감독의 접대비'가 관례?…빗나간 입시 관행
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이하 A고교) 야구부 학부모회에서 작성한 2014년 월별 결산 장부를 입수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낸 월회비의 지출 내역을 정리한 장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부에는 ‘접대비’와 ‘심판비’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항목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야구 감독에게 왜 접대비가 필요했을까요? 심판비는 또 뭘까요?

이 장부를 제공한 당시 3학년 학부모는 “감독의 접대비는 입시 로비의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A고 감독은 “전례와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그저 선후배 사이에 친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A고 감독은 “현실을 모르면서 로비 운운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덧붙였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학부모들의 증언과 A고 감독의 해명을 토대로 ‘입시 비리 의혹’을 키우는 ’빗나간 관행‘을 고발합니다.

● 5월 접대비만 619만 원
이 장부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5월 접대비’ 항목이었습니다. 한 달 접대비가 무려 619만 원이 넘게 지출됐습니다. 4월 접대비도 400만 원이 넘었습니다. 당시 이 장부를 기록한 학부모는 “5월과 6월에는 3학년 아이들의 진로가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여서 고교 감독들이 대학 감독들을 자주 접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고 감독은 일주일 사이에 200만 원이 넘는 유흥주점 영수증을 두 번이나 가져온 적도 있다.”는 증언까지 했습니다.

다른 학부모는 “감독이 어느 대학 누구를 만났다며 영수증을 제시하면 학부모들은  그냥 믿고 현금을 내줄 수밖에 없다.” “이 돈이 실제로 접대에 들어갔는지 감독이 개인 용도로 썼는지 학부모들은 알 길이 없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A고 감독의 해명을 들어 봤습니다.

“나는 접대를 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이들은 자식이나 다름없잖아요? 아이들 진학을 위해 감독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는지 아십니까? 6월 넘어가면 어느 대학에 티오(정원)이 다 찬다는 소문들이 돌아요. 대학과 프로에 있는 선후배들을 만나 인간적으로 친분을 쌓아 놓지 않으면 아이들 앞길이 막히는 게 현실입니다. ‘전례’ ‘관례’라는 게 있잖아요. 오히려 학부모들이 저한테 대학 감독들을 만나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게 어떻게 ‘접대’입니까?”

A고 감독은 ‘접대’가 아니라면서도 ‘접대해야 하는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대학 원서를 접수하기도 전에 대학 정원이 다 찬다.’는 말까지 거리낌 없이 하며, 입시 비리 의혹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관례’ ‘전례’라고 했습니다. ‘빗나간 관행’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 심판비도 관례?

매월 빠지지 않은 항목 가운데 하나가 ‘심판비’였습니다.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330만 원까지 심판비가 책정됐습니다. 특히 경기가 없는 1월에는 ‘심판찬조금’이라는 명목으로 300만 원이 지출되기도 했습니다.

야구협회가 주최하는 공식경기의 심판비는 야구협회에서 개별 수당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각 학교에서 ‘심판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건 분명 문제가 됩니다. 성적 조작에 대한 의혹까지 부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학부모들은 “심판비를 현금으로 감독에게 주면, 감독이 심판들에게 전달한다고 하는데, 이 돈이 그대로 심판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성적 좋은 학교들은 다 준다고 하는데, 그냥 잘 봐달라고 주는 관행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고 감독은 “심판비는 지급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접대비에 대한 해명처럼 “심판들도 다 야구 선후배인데, 같이 식사나 하고 술 한 잔 하는 거지 심판비를 별도로 책정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역시 ‘관례’라는 겁니다.

● 보너스에 경조사비까지…학부모는 '봉(鳳)'

A고 학부모는 “접대비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의 월급과 보너스, 심지어 감독의 개인 경조사비까지 학부모들이 감당해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한 달 회비가 80만 원인데, 40만 원만 ‘학부모회’에서 관리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학교에다 내기 때문에, 감독 월급은 실질적으로 학부모들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이 밖에도 장부에는 매월 코치들의 급여 보조비가 별도로 책정돼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지난해 A고 감독은 월급 500만 원과 판공비 300만 원을 합쳐 매달 800만 원씩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판공비까지 받는 A고 감독이 ‘학부모회’로부터 별도의 ‘접대비’를 받은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설날과 스승의 날, 추석, 연말 보너스까지 분기별로 정기 보너스가 학부모회에서 연간 2,000만 원 넘게 지급됐습니다.

또 감독의 경조사비까지 학부모들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1월에는 5건의 경조사비용으로 무려 132만 원이 지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차량 유지비’와 ‘화장품 구입비’ 같은 개인 용도의 애매한 항목은 ‘기타 잡비’로 처리됐다고 합니다.

장부의 ‘매월 잔액‘은 ’마이너스‘였습니다. 학부모들이 모은 돈으로는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5월까지 누적 잔액은 -1,7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학부모회에서는 이 부족분을 추후에 다시 갹출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학부모는 ’봉(鳳)‘이었던 겁니다.

● '문제의식' 없는 교육청도 문제

A고 감독은 지난해 한 학부모의 민원 제기로 서울시교육청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은 A고등학교 회의실에서 관련자들을 상대로 6시간의 짧은 조사를 한 뒤 “회계 부적정 사실을 확인했다“며 A고등학교에 ”감독을 중징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학교에서 내린 자체 중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습니다.

비단 이런 사례가 ‘A고 감독’ 한 명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A고 감독 혼자 모든 비난을 안고 끝날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A감독에 대한 민원제기‘를 ‘한 개인의 부정’으로 한정하고 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A감독이 ‘전례’ ‘관례’라며 ‘빗나간 입시 관행‘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는데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A고 감독은 수년 전에도 ‘금품수수’와 관련한 민원으로 서울시교육청의 조사를 받고, 징계를 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징계기간이 끝난 뒤 A고 감독으로 재부임해 또 다시 부정을 저질렀고, 서울시교육청은 또 다시 솜방망이 자체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서울시교육청 자체 조사가 힘들었다면 상위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경찰 고발’을 해서라도 뿌리 뽑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된 안이한 대처가 ‘잘못된 관례’의 악순환을 사실상 방치한 셈이 됐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안이한 대처’마저 ‘잘못된 관례’로 뿌리 내린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왜곡하는 ‘잘못된 관례’를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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