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누가 '연평해전'에 스크린 1013개를 밀어줬나?

최호원 기자 bestiger@sbs.co.kr

작성 2015.06.29 10:02 수정 2015.06.30 13: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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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호원 영화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 5일만인 어제(28일)까지 관객 140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제2연평해전 13주기이니 관객은 더 늘 겁니다. 그만큼 연평해전의 스크린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습니다. 개봉 당일 667개였던 스크린은 28일 일요일 1013개까지 올라갔습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많고, 과거와 비교해봐도 최다 스크린 확보 역대 한국영화 10위입니다. 광해(1001개/1232만 명), 변호인(925개/이하 관객 1137만 명), 7번방의 선물(866개/1281만 명)보다 많고, 수상한 그녀(1027개/865만 명)와 국제시장(1044개/1426만 명)보다 조금 적습니다. CGV, 롯데, 메가박스 등 모든 극장체인들이 연평해전을 밀어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연평해전'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 남북 함정 사이에 일어났던 제2연평해전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당시 북한 고속정의 기습공격으로 우리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 고속정에서도 13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군의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고, 여야 정치인들도 대거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보수 성향의 신문과 종합편성 채널들은 연일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모두 '숨진 장병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뜻에 동감한 일반 시민 6000여 명이 이 영화제작에 소액투자 및 기부를 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물론 극장 체인들이 재미있는 영화와 화제의 영화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연평해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고려할 때 이 영화에 스크린 1013개를 몰아주는 현재 극장가는 분명히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통상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려면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영화가 재미있어야 하고, 둘째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내는 화제성도 있어야 합니다. 또, 셋째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계열 극장체인으로부터 많은 스크린을 제공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쟁작들이 부실해야 합니다. 연평해전은 어떤 경우에 해당될까요? 1) 영화의 재미 2) 화제성 3) 대기업 작품 여부 4) 부실한 경쟁작들...

 1) 개봉 전 시사회 때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남자 관객들에 비해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희생 장병들의 영결식 장면 등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성 관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재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제2연평해전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른 영화들이 "그 영화 재미있어"라는 관객 후기를 통해 화제성을 높이는 것과 달리 연평해전은 외부에서 화제성을 키워준 측면이 있습니다. 당장 순제작비 60억 원의 절반을 투자한 국책은행 IBK기업은행이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많이 들면 더 많은 이자를 챙겨주는 '연평해전 통장'까지 출시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죠. 해군 함정 등을 지원한 군도 한창 단체 관람 중이죠. 국방부 합참 해군사령부에 이어 해군은 모든 부대에서 외부 단체 관람에 나섰습니다. 해군 병력은 6만여 명입니다. 여기에 정치권도 난리죠. CGV 측은 "화제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3) 이 영화는 당초 CJ E&M이 투자배급에 나섰다가 김학순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결국 투자배급을 포기한 작품입니다. 이후 '변호인'을 투자배급했던 NEW에서 이어받아 지금 투자배급을 하고 있죠. NEW로서는 보수 정권이 불편하게 생각했던 '변호인' 개봉 이후 세금조사까지 받았던 터라서 이번 작품으로 정치색에 대한 오해를 상당부분 지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투자배급사의 가장 큰 어려움인 투자자 모집이나 마케팅배급 부분을 기업은행과 군, 정치권이 전방위로 도와주고 있으니 사실 손 안 대고, 코푸는 셈입니다. 경쟁사인 NEW의 작품에 대기업 극장체인들이 보조를 맞춰주고 있는 것 자체가 희한한 일입니다.

4) 그렇다고 경쟁작들이 부실하지도 않습니다. 용산 참사를 참고로 해서 만든 법정 영화 '소수의견'(시네마서비스 배급)은 '상당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해외영화제에서 주목하는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이십세기폭스코리아)도 굉장히 신선한 작품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은 가치가 충분합니다. 앞서 개봉한 '극비수사'와 '쥬라기월드'까지 고려할 때 더욱 연평해전의 스크린 1013개는 불가사의합니다.
[취재파일] 최호원 영화[취재파일] 최호원 영화 이쯤 되면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극장체인들이 시장자본주의에 따라 연평해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연평해전에 더 많은 스크린을 열어줬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극장들은 "아닙니다. 화제성이 크기 때문에..."라고 하던데, 정말 그럴까요? 관객들의 인기가 높고 화제성이 크다면 스크린을 가장 많이 열어준 날 그만큼 관객들의 좌석점유율이 높아야 합니다. 연평해전이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28일 좌석점유율은 52.3%였습니다. 

 역대 최다 관객 영화인 '명량'의 경우 1587개 스크린을 확보했던 2014년 8월3일 좌석점유율이 86.3%였습니다. '광해'의 경우 최다 스크린 날 73.6%의 좌석점유율을 보였습니다. 도둑들(1091개) 73.3%, 수상한 그녀(1027개) 81.0%입니다. 이 정도 호응이 있어야 스크린 1000개 이상이 열리는 겁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시장'은 최다 스크린이 열린 날 좌석점유율 29.3%였습니다. 비슷한 스크린수를 유지했던 다음날 52.3%가 나왔네요. 당연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죠.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하고 롯데시네마가 밀어줬던 '역린'은 스크린 1054개 확보한 날 좌석점유율 39%였습니다. 이 경우는 그냥 계열사 작품을 밀어준 겁니다. 그런데, 연평해전은 대기업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계 관계자는 "현재 연평해전 스크린 수는 각 극장체인의 실무 프로그램팀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2004, 2005, 2007년 국방부를 출입 취재했던 터라 더욱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평해전을 '의미있는' 영화로, 나아가 '재미있는' 영화로 평가하는 분들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스크린 1013개가 배정하는 걸 정상이라는 생각하는 영화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극장들, 영화투자사, 배급사, 제작사 모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알 겁니다. 연평해전이 더 좋은 작품으로 제작돼 '정당하게'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겁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만 목적으로 하는 영화는 국방홍보원이 만드는 국방영화로 충분합니다. 상업 극장가로 나서는 영화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미국 국방부와 CIA가 지원했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이라크 전쟁 미군 저격병 이야기)'와 '제로 다크 서티(2012/빈 라덴을 찾는 CIA요원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두 영화는 미국 현지에서 각각 4개, 5개 스크린으로 소규모 개봉했다가 2, 3주 뒤 정말 영화의 힘으로 스크린 수를 2000, 3000여 개로 늘렸죠. 이게 올바른 겁니다. 제2연평해전 13주기를 맞아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깊이 애도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극장가가 '영화를 영화로' 평가하는 원칙을 지켜주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