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 대가' 이연복 쉐프…그의 버티고 버틴 인생사

권영인 기자, 권재경 인턴 기자

작성 2015.06.18 11:26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null 이미지 크게보기



화교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1950년대 후반, 한 화교 가정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화교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화교인학교. 하지만 일반 학교보다 비싼 등록금 탓에 등록금은 점점 더 밀려만 갔습니다.  때문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일어난 채로 수업을 듣는 일이 소년에게는 일상이었습니다. 

동생들까지 입학해 등록금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결국  소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스스로 공부를 그만두겠다 선언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식당에서 먹고 지내며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의 폭행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견딘 소년에게 돌아온 월급은 고작 3천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이 모든 고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7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당시 최고 명문 중식당 중 하나였던 서울 명동 호화대반점의 막내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식당 주방이 어린 소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요리를 너무나 배우고 싶어서 레시피를 물어보면 소년에게 돌아오는 건 건방지다는 꾸중과 어이없다는 눈총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의 요리과정을 훔쳐보는 것은 물론, 레시피가 궁금한 음식이 있으면 손님이 먹고 남긴 빈 그릇 소스를 몰래 맛보며 차근차근 요리 실력을 쌓아갔습니다. 

꿋꿋이 버틴 5년의 시간 ….
드디어 청년이 된 22살의 이 남자는 주한 대만 대사관 주방장이 됩니다. 대만 대사관을 거쳐간 쉐프 중 가장 어린 쉐프였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았던 그였지만, 다시 한 번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6살에 축농증 수술을 받은 뒤, 부작용으로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기대를 했지만,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후각…. 
사과와 양파의 맛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된 그는 큰 자괴감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각을 잃은 대신 미각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습니다. 

담배를 끊는 것은 물론 절대로 과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맛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요리를 할 때는 언제나 공복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요리사의 꿈을 지켜나간 남자.
그의 이름은 ‘이연복’.
현재 전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스타 쉐프입니다.

어떻게 40년간 중식요리에 매진했냐는 질문에
이연복 쉐프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연복 이름 석자로 설명되는 최고의 자리는….
화교 출신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 차별.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정도였던 가난한 집안 환경.
요리사에게 치명적인 후각 상실.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낸 정당한 대가입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