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1만4천 명 흥남철수 도운 '한국판 쉰들러' 눈물

"유일하게 아는 한국말이라고는 '빨리빨리'였습니다. 우리는 단 한명이라도 더 배에 태우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진정한 영웅들은 자유를 얻으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에게 달려온 이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해 1만4천여 명의 피난민을 구한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 로버트 루니(83·변호사)씨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65년전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속에서 공포에 질린 피난민들이 서로 앞다퉈 빨리 승선하려고 아우성을 치던 당시 흥남부두의 장면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3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미국 연방의회 오리엔테이션 영화관에서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노병들과 미국 의회, 한인단체, 주미 대사관 관계자들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국제시장'의 특별상영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과 대표적 친한파 의원인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이 주최한 이번 상영회는 현시점에서 그 의미와 상징성이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연방 의사당에서 한국 영화가 상영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여기에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오는 25일 한국전 발발 65주년을 앞두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피로써 맺어진 '혈맹'으로서의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확인하고 미국 의회 내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입니다.

또 재미 한인과 북한 이산가족간 상봉을 추진하는 친한파 의원들의 노력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로이스 위원장은 "이산가족들이 살아있는 동안 북한의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도록 미국 국무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상영회는 당시 아비규환과 같았던 흥남철수 작전을 기억하는 노병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특히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로서 피난민 구출을 도왔던 루니 씨는 영화 초반 긴박하게 돌아가는 흥남철수 장면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판 쉰들러'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마을을 버리고 부두로 달려왔다"며 "그들이 자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바다였고 그 마지막 배가 바로 우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부두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고 최대한 빨리 태웠다"며 "아기를 등에 업고 있고 양손으로는 다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었던 여인들과 두명의 아이를 큰 코트 안에 숨겨두고 있었던 노인이 생각난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배에 올라탄 피난민들에게는 음식도, 물도, 전기도 없었지만 자유를 향한 풍족한 마음이 있었다"며 "거제도로 내려오는 동안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루니 씨는 당시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중공군이 불과 3천∼4천 야드 앞에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흥남부두로 들어가려는 결정을 내렸느냐'고 묻자 라루 선장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5장의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구절로 답을 대신했다고 전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몰아친 최악의 기후조건에서 루니 씨를 비롯한 빅토리 호 선원들은 1950년 12월22일 14시간에 걸쳐 1만4천여 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빠져나갔습니다.

승선 정원 2천 명의 7배가 넘는 피난민을 태운 빅토리 호는 3일만인 25일 부산을 거쳐 거제도 장승포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흥남철수 과정에서 선박 내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우라는 명령을 내린 당시10군단장이었던 에드워드 아몬드(1892~1979) 소장의 외손자인 토머스 퍼거슨(72) 예비역 대령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후세들에게 한국전쟁의 의미와 교훈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의회 상영회는 올해초 워싱턴DC 부근인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에서 연달아 개최돼온 각종 상영회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의회 상영회 이후 국제교류재단(KF)과 우드로윌슨센터와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주요 지역에서 상영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상영회에는 이병희 미국 동부 재향군인회장을 비롯해 한·미 참전용사 50여 명과 안호영 주미대사, 신경수 국방무관, 유현석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자혜 허드슨 문화재단 대표, 마크 쇼우 CJ E&M 아메리카 대표,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박철희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상영회 후 "미국 의회라는 뜻깊은 장소에서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돼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며 "이번 영화가 미국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