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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력판사 '국정원 면접' 법적 근거 있나?

[취재파일] 경력판사 '국정원 면접' 법적 근거 있나?
국가정보원이 경력판사 지원자에 대한 신원조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면(對面)조사의 법적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보안업무규정이다. 지난 1964년 3월에 만들어진 이 규정 33조(신원조사)에는 '국가정보원장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신원조사를 한다'고 나와 있다. 그 대상에 가장 먼저 '공무원 임용 예정자'가 나와 있고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규정한 시행규칙으로 들어가면 '판사 신규 임용 예정자'가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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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업무규정과 시행규칙의 상위법은 국가정보원법이다. 국정원법 3조(직무) 2항을 보면 '제1항 제 1호 및 제2호의 직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과 같은 항 제5호에 따른 기획.조정의 범위와 대상 기관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령은 국정원이 말하는 보안업무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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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정원은 국가정보원법 1항 1호와 2호
 
1-1.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對共), 대정부전복(對政府顚覆), 방첩(防諜),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

1-2. 국가 기밀의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다만, 각급 기관에 대한 보안감사는 제외한다.


이 두 가지에 근거해 신원조사를 실시한다는 이야기다.

1-2를 먼저 보자. 판사 신규 임용자에 대한 신원조사가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나 자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1-1이라는 말인데 국외 정보는 아닐 테니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 및 작성이 신원조사의 근거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럼 1-1에 나온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은 법령에도 나와 있듯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 4가지 항목을 위해서다.

괄호 안에 나온 4가지 항목을 예시적 규정으로 볼 것인지 한정적 규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예시적'으로 본다는 말은 이 법령에는 4가지만 써 놨지만 예시에 불과해 이 외에 다른 사유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고, '한정적'으로 본다는 말은 규정된 4가지만으로 한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괄호 안 표현에 '등' 이라는 말도 없을 뿐더러 만약 이를 예시적으로 본다면 국정원의 정보 수집 범위는 무한정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는 한정적 규정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대다수의 법조인들을 말하고 있다.

그럼 경력판사 임용 예정자들에 대한 신원조사의 근거가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이라는 국내보안정보 수집을 위한 것이라는 건데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원자들에 대한 조사가 대공 업무 관련인가, 경력판사 지원자가 대정부 전복을 기도할 수 있어 신원조사를 벌인다는 말인가. 지난 2005년 인권위 결정문에도 '보안업무규정이 국가정보원법 3조를 근거로 신원조사 목적 및 대상과 범위를 정한 것은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헌법 제37조 2항에 반한다'고 나온 바 있다. 결국 국정원이 내세우는 그 근거라는 것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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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내려온 관행대로 고위 공무원이라는 직책의 중요성과 해당 지원자의 국가관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신원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치자. 만약 그런 것이라며면 법적근거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법만이라도 정확히 규정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반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의적 법해석이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행복 추구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할 소지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안업무규정의 세부항목을 정리한 시행규칙에도 그러한 규정은 나와 있지 않다. 국정원은 그저 "조사방식은 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의 고유권한"이라는 말 뿐이다. 판사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모호한 법적 근거에 방식은 기관 맘대로라면 이것이 어떻게 법치국가에서 이뤄지는 법 집행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법 자체에 대한 수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을 그대로 두려면 업무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문제는 법적 근거를  둘러싼 상황이 이런데도 대법원이 경력판사 지원자의 대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국정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인 근거가 있고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말이다. 대법원이 근거와 절차의 문제를 논의하기 앞서 규정 자체에 법적 미비점은 없는지, 진행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해봤는지 모르겠다. 대법원은 국정원이 경력법관 지원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등의 조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신원조사는 법적 근거가 있고 조사방법에 대해 법원에서 관여하거나 간섭할 영역에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실망스럽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법원 캡쳐_640

적어도 대한민국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에서 핵심 구성원인 판사를 임용하는 과정에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 나서 면접을 하고 사상검증 의혹까지 제기되는 질문을 하는데도 사실관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오불관언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무능하다고 봐야 할지 비겁하다고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다.
법원 재판 캡쳐_5

국민은 법원으로부터 신속하게 재판을 받아야 할 권리도 있지만 성실하고 충실하게 재판을 받아야 할 권리도 있다. 국정원으로부터 사실상의 면접을 받고 법대에 앉아 국보법 등 재판을 하는 판사를 두고 어느 피고인이 '나는 성실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판사 자신은 '난 누구보다 떳떳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건 본인만의 생각일 뿐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사법부 독립성 순위를 보면 한국은 144개 나라 가운데 82위를 기록했다. 잠비아(69위)와 스리랑카(72위) 보다도 낮다.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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