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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원, 경력 판사 비밀 면접…법 위반 가능성 제기

[취재파일] 국정원, 경력 판사 비밀 면접…법 위반 가능성 제기
국가정보원은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신원조사의 근거로 대통령령인 보안업무 규정과 그 시행규칙을 들고 있습니다. 법률도 아닌 대통령령으로 예비 판사에 대해 범죄 경력이나 재산 변동 등을 확인하는 단순한 '신원 조회'가 아닌 개인의 국가관 등을 조사하는 '신원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 '아직 그런 규정이 있어요'?

사법부 구성원이 될 사람을 뽑는 과정에 행정부의 일부인 국가정보원이 개입해 면접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이 규정하고 있다는 주장은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 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사법권 독립을 해할 수 있는 일을 법률도 아닌 대통령령이 가능하게 한다니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은 판결 과정에서의 독립 뿐 아니라 판결을 할 판사 선발의 독립성이 담보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주장하는 보안업무규정이라는 것이 정말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신원조사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여러 명의 변호사와 법학자들을 접촉했습니다. 그런데 접촉한 이들 상당수의 반응은 '아직 그런 규정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규정은 없어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반응한 보안업무규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보안업무 규정

군사정권 시절이던1964년 제정된 보안업무규정은 국가보안을 위해 충성심, 신뢰성 등을 조사하기 위한 신원 조사 대상에 공무원 임용예정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제 56조에는 판사 신규 임용예정자를 신원조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면접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은 이 조항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 법원, "신원조사 대상자는 지원자가 아닌 '임용 예정자'"

규정이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있습니다. 국정원이 '임용 예정자'가 아닌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해 온 점에서 그렇습니다.

보안업무규정에 나타난 신원조사는 목적이 불명확하고, 대상은 너무 광범위합니다. 한 개인의 충성심과 신뢰성이라는 측정하기 모호한 것을 조사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명확하고, 여권을 발급받으려는 사람을 포함해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원조사를 하도록 한 점에서 광범위합니다. 국정원의 자의적 신원조사, 대상자에 대한 사생활 침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사찰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신원조사가 정말 필요하다고 해도 그 대상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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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대전지법 행정1부는 신원조사와 관련해, 보안업무규정에서 명시한 '공무원임용예정자'란 최종 합격자 결정을 거쳐 채용후보자 등록을 한 사람을 의미하며, 단순히 공개 시험에 응시한 지원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그 이유로 신원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 및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서 그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여야 한다."밝혔습니다. 결국, 신원조사는 헌법이 보장한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최종합격자를 결정한 뒤 정말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제한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 근거를 어긴 국정원 면접, 당락에 영향 미쳤다는 의혹도

하지만, 국정원은 최종면접을 앞둔 일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법적 근거로 내세운 보안업무규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경력판사들을 비밀리에 면접을 해 온 셈입니다.

일부 경력 판사 지원자들은 국정원의 이런 비밀 면접이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한 경력 판사 지원자는 SBS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면접 이후 지원자 절반 정도가 떨어졌다"고 말해, 국정원 면접이 단순한 결격 사유를 확인하는 참고 자료가 아닌 최종면접 대상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판사 선발 과정에서 단순히 개입한 것이 아니라 합격자 선발 과정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서, 사법권 독립을 심대하게 침해한 것입니다. 특히, 국정원이 판사 선발 개입을 통해 사실상 사법부를 통제하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 경찰 등 다른 기관은 대면 접촉 피해

대면 접촉, 사실상 인터뷰 형태로 진행된 국정원의 신원조사 방식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국정원은 신원조사 방식은 조사기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대면 접촉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경찰 등 다른 기관은 피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피 평가자에 대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 그리고 잘 봐달라는 피평가자의 인사 청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쪽에 더 고개가 끄덕여 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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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들은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신원조사와 관련해 삼권 분립을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의 구성원을 임용함에 있어서 행정기관 소속인 국가정보원의 개입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의 삼권 분립 원칙에도 반하며, 사법권 독립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사법부 독립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가지지 않고 이를 방치한 대법원은 대단히 무책임하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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