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돈줄을 쥐어라'…예결위원장 쟁탈전

[취재파일] '돈줄을 쥐어라'…예결위원장 쟁탈전
 
돈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 없듯이, 예산 앞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원은 없겠죠. 요즘 야당 집안 사정이 하도 복합해 주목을 별로 못 받아서 그렇지, 여당 안에서는 예결위원장 자리를 두고 때 아닌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투에 나온 국회의원은 둘입니다. 판사 출신의 대구 수성구을 주호영 의원, 검사 출신의 경남 진주시을 김재경 의원입니다. 둘 다 3선 의원이지만 공교롭게도 주 의원은 대구경북(TK), 김 의원은 부산경남(PK) 출신입니다.

상임위원장은 국회의 ‘꽃’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예결위원장 자리는 의미가 좀 남다릅니다. 예산을 칼질하는 막강한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산 폭탄을 안 길 수도 있고, 예산을 삭감할 수도 있죠. 지역구에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야하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예산을 많이 가져가느냐 못 가져가느냐는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상임위원장을 나눌 때 법사위원장은 야당에 주고, 예결위원장을 여당이 맡는 것도 다 이런 ‘돈’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서로 예결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선 두 의원의 변을 각각 들어볼까요?

먼저 주호영 의원의 주된 논리는 ‘올해 예결위원장은 내가 하기로 약속됐다.’라는 겁니다. 지난해 19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을 결정할 때 주호영 의원이 올해 예결위원장을 맡기로 지도부에서 미리 정했다는 거죠. 당시 예결위원장을 희망했지만, 정책위의장을 맡게 되면서 3선 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상임위원장을 하지 못한 만큼 올해로 미뤄졌다는 설명입니다.

또, 지난해 정무위원장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김재경 의원을 포함한 3선 의원을 위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이제 와서 김재경 의원이 예결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반면, 김재경 의원의 주된 논리는 ‘윤리위원장 1년 +예결위원장 1년’ 이라는 이른바 ‘1+1세트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기 있는 자리인 예결위원장은 서로 하려 들고, 일을 해도 티가 안 나는 윤리위원장은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폐해를 막기 위해 윤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은 1년 씩 맡아온 관례를 말하는 건데요. 이에 따라 윤리위원장을 1년 한 자신이 이번에는 예결위원장을 맡을 차례라는 논리입니다.

또, 주호영 의원이 올해 예결위원장을 하기로 ‘교통정리’가 됐다는 건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만약 그렇게 했다면 동료 의원들의 동의나 합의절차가 없었던 만큼 ‘당의 사당화’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의원은 격한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때론 읍소 수준의 부탁 아닌 부탁을 해가며 예결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 왔습니다. 동료 의원들에게는 자신이 왜 예결위원장을 해야 하는지, 상대 의원의 주장은 어떤 점이 맞고 틀린지 등의 내용을 담은 ‘친전’을 보내기도 했죠.

자리다툼이 심화되는 상황이 되자, 일단 새누리당 안에서는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먼저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주호영 의원, 김재경 의원 둘 다 친이계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이재오 의원은 “우리 (친이계)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경선 가면 되겠느냐.”며 조율을 해보려 했는데, 두 의원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유승민_640
어제 (22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두 의원을 원내대표실로 불러서 한 시간 넘게 조정을 시도했는데요. 둘 중 한 명은 예결위원장을 맡고, 또 다른 한 명은 여당 몫의 상임위원장 자리인 정보위원장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나왔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상임위원장 배정은 원내대표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나서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조정이 불발로 그친 후, 주호영 의원은 기자들에게 “더 노력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의견) 접근은 안됐다.”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김재경 의원은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자신의 주장을 간략하게 적은 문서를 나눠줬습니다.

예결위원장 쟁탈전을 두고 여의도에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옵니다. 주요 당직을 거치고 정무 특보까지 지낸 주호영 의원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예산을 꼼꼼하게 챙길 거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고요. (참고로 주호영 의원은 의원들에게 보낸 친전에서 ‘논 갈던 소가 밭도 잘 갈 수 있다’는 말을 썼습니다.) 윤리위원장을 하면서 예결위원장을 할 것에 대비해 관련 지식을 쌓는 등 준비를 해 온 김재경 의원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역 구도적인 시각에서 나온 말들도 많은데요. 주호영 의원이 예결위원장이 되면 ‘TK가 다 해먹는다' 는 비난이 당에, 특히 TK인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목소리도 있고요. 여기서 더 나아가 TK인 유승민 원내대표와 PK인 김무성 대표의 의중은 어떻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떠돌아다닙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조정을 시도해보되 안 되면 경선을 한다는 거죠. 이미 유승민 원내대표 본인도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장 경선에 나가 황진하 의원을 이긴 경험이 있습니다. 예결위원장 경선이 치러진다면 현재로선 다음 주 화요일이 유력합니다.

한 의원의 말에 따르면 선거에서 지역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낙선 하는 것도 뼈아픈 일이지만, 경선에서 ‘같은 편’인 동료 의원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는 건 그 충격이 더하다고 합니다. 사정 뻔히 아는 사이에 경선에서 떨어졌으니 얼굴 들고 다니기 창피한 거죠. 더구나 의원들이 A 의원 앞에서는 A의원을 찍어주겠다, B 의원 앞에서는 B의원을 찍어주겠다 약속하는 등 소위 말해 이중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막상 결과가 나오면 배신감이 크게 든다고 하는데요.

의원 뿐 아니라 당 입장에서도 경선은 손해입니다. 일단 승리한 자도 패배한 자도 나름의 상처를 안게 되고요. 경선 과정에서 편 가르기와 상호 비방이라도 심해지게 되면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연출되기 쉽습니다. 경선에 나중에 예산 배정에 미칠 영향도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만약, 어떤 의원이 후보자로 나온 의원을 열심히 도운 끝에 예결위원장에 당선시켰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의원이 나중에 예결위원장이 된 의원에게 “그 때 내가 도왔으니, 우리 지역구 좀 챙겨주쇼.” 라고 부탁을 하면 어떨까요? ‘옛 정’을 생각해서 챙겨줄 가능성이 커지겠죠.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역시 경선보다는 합의를 통해 추대하는 게 제일입니다. 막판에 한 의원이 극적으로 양보를 할 지, 아니면 ‘예산 목장’을 둘러싼 ‘TK 대 PK’ 결투가 벌어질 지 다음 주에는 결론이 날 테니 함께 지켜보시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