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는 크게 ‘법률상 무국적자’와 ‘사실상 무국적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법률상 무국적자는 어떠한 국가의 법률로도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출신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했는데 후에 위장결혼으로 밝혀져 우리나라 국적이 취소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출신국의 국적을 회복할 수가 없어서 무국적자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상 무국적자는 국적을 가질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국적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모국의 박해를 피해 우리나라로 망명을 신청한 난민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가 대표적인 경우지요. 아이가 국적을 가지려면 부모가 우리나라에 있는 모국 대사관에 출생등록을 해야 하지만 정부의 박해를 피해 왔기 때문에 출생등록 신청을 못하는 것이지요. 제가 만난 무국적 아동들이 바로 이런 난민 신청자의 아이들이었습니다.
8살 아이는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무국적자의 경우도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다닐 수 있지만 고등학교는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이 결정돼 고등교육 이상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현재 부모가 난민 신청이 진행 중이어서 국민건강보험도 들 수 없는 상태인데 아이의 치료는 물론 아이 어머니인 산모의 치료도 매우 큰 걱정거리입니다. 그나마 멀리 떨어진 카톨릭 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더라도 난민지원단체로부터 받는 월 40만 원이 수입의 전부인 이 가정에 약 값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지요.
보도가 나간 후 인터넷 댓글 등 대체적인 반응은 “아이들이 매우 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국적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그래서 대안을 제시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국적을 주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아이가 부모님의 출신국 국적을 회복하려 할 때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주자는 것이지요.
그 방법이 바로 공적인 ‘출생 등록’입니다. 현재 무국적 아동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오직 병원의 출생증명서 밖에 없는데 이 출생증명서로는 추후에 부모님 출신국에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인정하는 공적인 출생등록으로 이들에게 국적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법무부는 현행 법 체계 상 출생등록은 곧 국적 부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 ‘UN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이 협약은 무국적자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무국적자가 천 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들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더해가고 있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무국적자의 출생등록을 허용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 정부도 이제는 무국적자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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