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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탈선'한 미국, 안보에 강하고 안전에 약하다

[월드리포트] '탈선'한 미국, 안보에 강하고 안전에 약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 암트랙 열차가 탈선했다. 열차인지 다른 고철 덩어리인지 식별이 어려우리만큼 맨 앞 전동차 한 량은 완전히 파괴됐다. 다른 열차 6량은 마치 물음표('?') 모양으로 휘어져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사고가 터지자 필라델피아 지역 방송은 물론 CNN과 MSNBC 뉴스채널은 즉각 24시간 속보 체제로 전환했다. 구조대원들이 바빴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구겨진 열차 사이에 갇힌 승객들을 찾았다. 사고 직후 피투성이가 돼 현장을 빠져나오는 승객들 모습이 비쳤다. 트위터에는 아수라장과도 같은 열차 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언론들은 사고 초기 부상자가 50명에 이른다고 전했는데, 곧 상황이 달라졌다. 필라델피아 시장은 5명이 숨진 사실을 확인했다. 병원 신세를 진 사람이 140명을 넘어 200명 이상으로 집계됐고 사망자는 6명, 7명, 8명으로 늘었다. 오래지 않아 승객 238명과 승무원 5명 전체 탑승자의 운명이 확인됐다.

사고를 낸 암트랙 188호 열차는 퇴근 시간 워싱턴 DC를 출발해 뉴욕시로 향하고 있었다. 보스턴까지 이어지는 '동북노선(Northeast Corridor)'인데, 밤 9시 30분 쯤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시내 동북부의 '프랭크포드 정션'이라는 갈림길 부근에서 탈선한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한국 교민과 유학생들도 적지 않은 지역이다.
미국 열차 탈선 캡

● 탈선은 왜?

NTSB 국가교통안전위와 FBI 연방수사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사고가 난 지점은 곡선 선로 구간이다.

언론들은 NTSB의 블랙박스 판독 결과를 인용해서 사고 당시 열차가 시속 106마일, 즉 약 170km의 속도로 달렸다고 전하고 있다. 열차는 통상 100마일 이상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데, 도심에서는 시속 50마일 즉 80km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열차가 이렇게 빨리 달렸다면 1차적인 원인 규명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원심력이 작용하는 곡선 구간에서 열차가 갑자기 과속을 했고 어떤 이유로 열차가 선로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과속 외에 더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고 직전 돌덩이 같은 것이 열차 앞 유리 쪽으로 날아들었다는 진술이 나와 FBI가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NTSB는 가능성을 낮게 봤다.

원인이 무엇이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후진적인 사고가 일어난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열차탈선 캡쳐_

● "비용 줄여라" 예산 전쟁

백악관과 정치권은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기 바빴다. 상원의원 시절 워싱턴 DC에서 윌밍턴 집까지 열차를 타고 출퇴근한 것으로 유명한 조 바이든 부통령은 "암트랙은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고 다음날 열린 의회 하원 상임위에서 2016년도 암트랙 지원 예산을 18% 삭감하기로 했다. 감축분은 2억 5,100만 달러에 이른다. 공화당의 전반적인 예산 삭감 기조에 따라 교통 인프라 예산도 '예정대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예산 깎기에 나선 공화당을 비난하며 별도 법안을 내 10억 달러 이상 예산을 늘리려 했지만 표 대결에서 밀렸다. 암트랙은 연방철도청(FRA)의 명령에 따라 사고 지점에 뒤늦게 과속 예방을 위한 자동 열차 통제 장치 (automatic train control) 하나를 설치했다.

이번 사고는 정치권를 비롯해 언론, 사회 각계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과속으로 드러나더라도 현재의 교통 인프라 수준은 낙제점이라는 것이다. 한 엔지니어 단체는 'D+'로 평가했다. MSNBC 방송은 철도에 대한 투자가 중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GDP에 대비해 보면 미국은 더더욱 주요 국가군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열차와 고속도로 터널 등 사회 인프라에 투자할 예산을 달라고 의회를 압박하고 있지만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의회가 예산을 더 투입했다면 이번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공화당의 논리다. 사고 노선을 따라 정치적 기반을 둔 민주당 의원들은 베이너 하원의장을 성토하며 격분했다. 정치적 논리가 어떻게 흐르든 미국민들은 불안하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는 올해 초 기름을 실은 유조 열차가 역시 탈선해 폭발하면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셰일 석유에 불이 붙고 폭발하면서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쳤다. 며칠 전에는 포토맥 강을 가로지르는 하저 터널에서 전기 아킹 현상에 따른 연기가 발생해 워싱턴 DC 지하철 이용객들이 대혼란을 겪었다. 지난 1월엔 같은 원인으로 승객이 숨지기도 했다.

열차 이용객은 공화당보다 민주당 지지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하철이나 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안전한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표 계산이 먼저일까? 의회는 무기 사는 데는 돈을 쏟아 부어도 안전 시스템 확보에 들어가는 돈은 아까운 것일까? 정치권이 외면한다면 국민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세계의 안보 이슈를 주도하는 최강국 미국의 탈선 사고를 보면서 국민 안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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