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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보육교사 증언으로 어린이집 원장의 아동학대 발각

[취재파일][단독] 보육교사 증언으로 어린이집 원장의 아동학대 발각

 지난 3월 말 경기도 의정부경찰서에 어린이집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어린이집 원장 34살 이 모 씨가 일부 원아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등 상습적인 학대를 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다름 아닌 보육교사의 말을 통해서였습니다. 아이의 담임을 맡았던 보육교사가 어린이집을 그만둔 뒤 아이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격담을 털어놓은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원장선생님이 나 때렸어"…아이들의 이상행동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처음 학대 의심을 품게 된 건 아이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지난해 10월 어린이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고 돌아온 3살 딸이 유난히 풀이 죽어 있어서 아이를 달래려고 어린이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이때 사진에 등장한 원장의 모습을 본 아이가 “원장선생님이 나 때렸어”라고 말한 겁니다. 이상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며 온몸으로 저항하는가 하면, 자다가 일어나 경기를 일으키며 전에 없던 배변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부모가 학대 사실을 알게 된 건 몇 달이 지난 뒤였습니다. 어린이집을 그만둔 보육교사를 통해서였습니다. 교사는 그날의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손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자 원장 이씨가 화를 내며 아이의 머리를 때렸다는 겁니다. 보육교사는 이씨의 학대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교사들에게 “아이를 달래주지 말라”고 나무라더니 “선생님들이 잘못하면 아이가 맞는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머리를 세 차례 더 때렸다고 보육교사는 전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학부모들에게 알려지면서 피해 증언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명확한 이유를 찾거나 설명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이상행동이 학대에서 비롯됐다는 의심을 품게 된 겁니다. 부모를 어두운 방에 데려가 혼자 세워두고 문을 닫는다거나, 친구에게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킨다거나, 친구를 때린 뒤 “울어”라고 말하는 등의 이상행동이 여러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당한 학대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아닌지 조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보육교사가 털어놓은 어린이집 원장의 만행

 양심고백을 한 보육교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학대가 실제로 이뤄졌으며 자신이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원장이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질렀으며 가끔은 때리기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학부모들 앞에서는 그런 내색 없이 아이들에게 잘해줬다고 합니다. 어린이집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다섯 칸짜리 식판에 푸짐하게 담긴 점심식사 사진을 올린 뒤 실제로는 두 칸짜리 식판에 밥과 국만 담아 아이들에게 먹였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학대는 그렇게 은밀히 이뤄졌습니다.

 어린이집 내부에 설치된 CCTV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원장이 보육교사들을 감시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합니다. 원장이 싫어하는 아이에게 잘해주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모습이 CCTV에 찍히면 그걸 빌미로 교사들을 혼냈다는 겁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도 보육교사 여러 명이 그만뒀습니다. 이 교사 역시 원장의 횡포를 견딜 수 없어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라도 있어야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러 번 망설였다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어린이집을 그만둔 뒤 용기를 내 어머니들에게 학대사실을 알리고 경찰에서 증언했습니다.

● 피의자로 입건…원장은 혐의 부인

 경찰은 학부모 여러 명과 보육교사들을 조사한 끝에 원장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지난해 벌어진 폭행은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CCTV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 눈으로 보이는 상처나 학대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없어 혐의 인정이 어려울 뻔했지만 보육교사들의 진술이 유효하게 작용했습니다. 어린이집을 그만둔 보육교사 3명이 원장의 아동학대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일단 이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쳤습니다. 또, CCTV 화면에 찍힌 추가 학대가 있는지, CCTV를 고의로 삭제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원장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취재진과의 통화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신고 내용대로 아이들을 괴롭힌 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적인 감정이 좋지 않던 학부모들과 보육교사들이 작당하고 자신을 모함했다는 겁니다. 피의자로 입건되긴 했지만 당사자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 재판 과정에서 진실공방이 예상됩니다. 물론 아직 결론을 예단할 순 없습니다. 다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분명히 나뉘어 보입니다.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원장의 아동학대를 폭로한 보육교사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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