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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직원에게 다리 주무르게 한 사장, ‘강제추행죄 무죄’

-엇갈린 판결, 그리고 엇갈린 반응

[취재파일] 여직원에게 다리 주무르게 한 사장, ‘강제추행죄 무죄’
신입 여직원과 내기 고스톱을 해 자신의 다리를 주무르게 한 업체 사장에 대해 대법원은 강제추행은 무죄라는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와 이를 놓고 엇갈렸던 법원의 판단 등을 취재했습니다.

● 사건의 재구성

41살 조 모 씨는 지난 2013년 8월 경남 김해시에 있는 자신의 운영하는 업체의 사무실에 26살 여직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직원이 이 업체에 취직한지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사장은 업무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여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사장은 손님이 올 수 있으니 문을 잠그라고 말했고, 여직원은 사무실 문을 잠갔습니다.

사장은 여직원과 함께 김밥을 먹고 나서는 갑자기 덥다면서 반바지로 갈아입어도 되겠느냐고 여직원에게 물었습니다. 동의를 얻은 뒤 사장은 여직원에게 보지 말라는 손짓을 한 뒤 트렁크 팬티만 입은 상태로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업무 교육을 마친 뒤 사장은 여직원에게 고스톱을 치자고 했습니다.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내기 고스톱이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에서는 여직원이 이겼습니다. 여직원은 사장에게 커피를 사달라고 했고, 사장의 돈을 받아 커피를 사 들고 왔습니다. 사무실에 다시 들어오면서 여직원은 또 문을 잠갔습니다.

이어진 두 번째 게임에서는 사장이 이겼습니다. 사장은 여직원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며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소파 앞에 있던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여직원은 사장 옆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뒤 사장의 종아리 부위를 주물렀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여직원에게 ‘다리 말고 다른 곳을 주물러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장은 오른쪽 다리를 여직원 허벅지 위에 올렸고, 여직원은 자신의 다리 위에 얹어진 사장의 오른쪽 다리 무릎 조금 위 쪽 부분까지 주물렀습니다. 사장이 왼쪽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자 여직원은 허리를 숙여 사장의 왼쪽 다리도 주물렀습니다.

● 엇갈린 법원의 판단

검찰이 사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강제추행입니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장의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것인지, 사장의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 것인지가 이 사건의 쟁점입니다. 1심과 2·3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 판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창원지방법원은 사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아울러 사장에게 8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도 명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사장이 오른쪽 다리를 여직원의 허벅지 위에 올려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고, 종아리를 주무르는 여직원에게 “더 위로,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져라.”고 말했다‘고 판시하며 공소사실 대부분을 받아들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사장이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기색이 부족하고, 범행 발생 경위와 수법, 두 사람의 관계 등에 비추어 죄질이 좋지 않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즉, 사장의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추행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나 2심은 판단을 180도 바꿨습니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창원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사람을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 그 폭행 또는 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을 요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폭행 등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폭행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추행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장의 요구가 있었다고는 하나 여직원이 직접 사무실 문을 잠갔고, 여직원으로서는 다리를 주무르라는 사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직원도 “사장이 다리를 주무르라고 했을 때 폭행이나 협박 같은 것은 없었지만 내기를 해서 무조건 들어주기라는 약속을 했고, 피고인이 직장상사이기도 했으며 앞의 내기에서 사장이 커피를 사주기도 했기 때문에 사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라고만 진술했습니다.

재판부는 “사장이 여직원의 신체를 만지는 등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시도하지는 않았고, 여직원 다리 위에 자신의 다리를 얹기는 했으나 이를 두고 여직원이 사장의 다리를 주무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유형력의 행사라거나 이로 인해 여직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장이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사장이 오른쪽 다리를 여직원 허벅지 위에 올리기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여직원이 사장의 다리를 계속 주물렀다며 사장의 행위가 추행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강제추행죄의 두 가지 쟁점 모두 1심과 2심의 판단이 다른 겁니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역시 항소심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강제추행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하고 사장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 엇갈린 반응
법원법원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우선, 무죄 선고가 법리적으로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었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을 요구하는 법 조항대로 판단했다는 겁니다. 판례를 찾아봤습니다. 피해자에게 “사표를 쓰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추행한 경우 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가해자가 사표를 운운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두려움 내지 심리적 압박을 느꼈기 때문에 협박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즉, 사장이 여직원에게 물리력을 가해 반항하지 못하게 한 상황에서 추행하거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해를 가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한 뒤 추행해야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이번 판결이 법 조항을 엄격하게 요구한 판단이라는 비판적인 반응도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가 10살 넘게 차이나고, 피해자가 취업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상황에서 사장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고 강제추행죄를 무죄로 선고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관념과 배치되는 판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리적 억업 상태를 폭행이나 협박에 준해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시행

이번 판결에 대한 반응은 주로 강제추행죄의 첫 번째 쟁점인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행위인지'에 맞춰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장과 신입사원의 관계인만큼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가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는데, 폭행이나 협박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2013년 8월에는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을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없었습니다. 당시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범죄를 처벌하는 경우로는 형법상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한 간음’과 ‘미성년자나 심신 미약자에 대한 간음’ 등 간음을 대상으로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12월 성폭력처벌법이 시행됩니다. 이 법에서는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한 위계나 위력에 의한 추행’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력에 의한 추행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생긴 겁니다.

물론 이번 판결은 사장이 자신의 다리를 여직원 허벅지에 올린 행위를 추행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또 서로 고스톱을 치고 벌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칙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위력에 의한 것이냐는 다시 판단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장과 신입사원이라는 관계에 따른 위력에 의한 추행이 인정된다면 현재로서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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