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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훈련장 못 구한 박태환' 이것이 방법이다

[취재파일] '훈련장 못 구한 박태환' 이것이 방법이다
지난 3월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국제수영연맹(FINA)로부터 18개월간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박태환이 훈련할 수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1주일 전부터 각 언론사에 의해 보도됐습니다. 박태환의 부친 박인호씨는 “수영장이 없어서 아무 훈련도 못 하고 있다”며 "한국의 50m 레인 수영장 중 공공시설이 아닌 곳이 어디에 있나? 그렇다고 25m짜리 레인이 있는 사설 수영장에서 훈련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는 공공시설로 분류된 국내의 50m 수영장에서 정말 훈련을 할 수 없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국제수영연맹(FINA)의 관련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결론은 ‘할 수 있다’입니다. 국제수영연맹 ‘도핑 규제 규정’ 제10장 12조 1항은 자격정지를 받은 선수의 훈련 제한에 대해 이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an Ineligible Athlete cannot participate in a training camp, exhibition or practice organized by his or her Member Federation or a club which is a member of that Member Federation or FINA or which is funded by a governmental agency."

위 규정을 박태환의 경우에 적용해 알기 쉽게 풀어쓰면 이렇습니다.

1. 박태환은 대한수영연맹이 주관하는 훈련캠프, 시범경기, 연습에 참가할 수 없다.

2. 박태환은 대한수영연맹의 회원으로 돼 있는 수영장이 주관하는 훈련캠프, 시범경기, 연습에 참가할 수 없다.

3. 박태환은 정부 기관의 기금이 사용된 훈련캠프, 시범경기, 연습에 참가할 수 없다.


박태환 측은 최근 훈련을 재개하기 위해 예전 스승인 노민상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운영하는 수영클럽에서 함께 훈련할 수 있는지를 노 감독에게 문의했습니다. 노 감독은 “스승으로서 어떤 일이든 도움이 된다면 도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노 감독의 클럽이 소속돼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수영장 측은 훈련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수영장은 정부 기관의 기금이 사용된 수영장입니다. 따라서 FINA 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은 올림픽수영장이 제공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노민상 감독이 가르치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훈련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과 똑같은 사용료나 강습료를 내고 수영장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박태환이 올림픽수영장을 사용하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올림픽수영장 측과 별도로 계약을 맺어 수영장의 1개 레인을 혼자 사용 즉, 전용(專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공시설로서의 올림픽수영장의 공적(Public) 개념이 박태환이 사용하는 1개 레인에 한해 사적(Private) 개념으로 전환됩니다. 예를 들어 박태환이 오는 12월말까지 올림픽수영장 측과 1개 레인을 전용하는 조건으로 개인 돈으로 수천 만 원을 지급해 계약을 체결할 경우 FINA 규정의 족쇄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더 확실한 방법은 제3자가 올림픽수영장과 계약을 맺은 뒤 그 제3자가 박태환과 다시 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올림픽수영장의 사용은 제3자와 박태환과의 ‘사적(私的) 거래’가 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박태환이 1개 레인에서 혼자 훈련을 펼칠 경우 노민상 감독의 지도에도 역시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박태환 1인 개인 훈련에 올림픽수영장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나 정부 기관의 기금이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방법을 쓴 단적인 사례가 중국의 수영스타 쑨양입니다. 쑨양이 지난해 5월 금지약물 복용으로 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자 호주수영연맹은 ‘금지약물 관련자에 한해 호주수영연맹이 지원하는 14개 공공 수영장에서 훈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쑨양은 해마다 훈련해온 호주 골드코스트의 마이애미 수영클럽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됐고 대신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런어웨이 베이 스포츠 슈퍼 센터’(Runaway Bay Sports Super Centre)로 장소를 옮겨 훈련을 이어왔습니다. 50m 실외수영장, 20m 실내수영장, 400m 트랙, 피트니스 센터 등 각종 시설을 두루 갖춰 세계 유명 선수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호주 수영장

그런데 문제는 이 수영장이 호주수영연맹이 지정한 14개 공공 수영장은 아니지만 분명히 정부의 자금이 사용된 공공시설이란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쑨양 측은 좋게 보면 ‘묘안’, 나쁘게 보면 ‘꼼수’를 생각해냈습니다. 지난 1월18일 호주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런어웨이 베이 스포츠 슈퍼 센터가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시설이지만 쑨양은 자신의 전용 레인을 돈을 주고 빌리는 방법으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Although the facility is state-funded, it is understood Yang has exploited a loophole by paying to hire his own lane.)

한국에 국제대회 규격(50m)의 풀은 올림픽수영장, 인천 박태환수영장, 한국체대 수영장 등 많이 있습니다. 어떤 수영장이든 1개 레인을 전용하는 계약을 맺는다면 박태환은 얼마든지 국내에서 마음껏 훈련할 수 있습니다. 50m 풀을 갖춘 수영장 측이 대한수영연맹이나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문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박태환 측이 제시하는 사용료가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계약을 맺으면 그만입니다. 국가대표 훈련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대한체육회 김영찬 훈련기획부장은 SBS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 대한체육회, 대한수영연맹 등 공공 기관의 지원이나 혜택이 없이 박태환 개인 부담으로 혼자 연습을 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m 규격을 갖춘 수영장 측의 비협조로 만약 박태환의 국내 훈련이 정말로 불가능하다면 호주나 미국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곳에는 사립대학을 비롯해 개인 업체가 운영하는 50m 수영장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태환의 징계는 소변 샘플 채취일인 지난해 9월 3일부터 시작해 내년 3월 2일 끝납니다. 하지만 징계가 끝나는 시점으로부터 2개월 전에는 각종 훈련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즉 2016년 1월3일부터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물살을 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오는 12월까지 약 7개월간 어디에서 훈련할지가 박태환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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