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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징용자 유족 "日 유네스코 등재? 정부 뭐 했나 섭섭해"

* 대담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 한수진/사회자:
 
조선인 강제 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의 산업 시설들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시설을 산업화의 상징으로만 부각시켰고 조선인 수만 명이 끌려간 역사는 끝내 외면했습니다.
누구보다 착잡한 심정으로 이 뉴스를 지켜보고 계신 분일 텐데요.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이신 이복렬 전 호원대 교수 연결돼 있습니다. 직접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교수님 나와 계시지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교수님을 하시마 한국희생자 유족회장으로 소개해 드렸는데요. 하시마 라는 곳도 조선인들이 징용된 곳 가운데 하나인 거죠?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그렇습니다. 우리 삼촌이 1943년이 미쓰비시에 징용됐고 나중에 고향 이웃 동네에 살고 계시던 박규태라는 할아버지로부터 삼촌이 하시마 탄광에서 채탄 작업 중에 사망하셨다는 내용을 잘 들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당시 삼촌 몇 살이셨어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21살 총각으로 징용됐죠.
 
▷ 한수진/사회자:
 
아.. 젊은 나이에. 일본이 패망하기 바로 2년 전쯤 되는 거네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강제로 징용이 되신 거죠?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 당시에 동네의 이장이면 대단히 권력을 가졌는데 하필이면 우리 삼촌이 거기에 차출이 돼서 일본에 가게 된 것이 화근이 됐던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더 안타까운 점은 삼촌의 사망과 관련한 어떤 소식도 일본 정부나 미쓰비시 측에서 전해준 게 없었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나 미쓰비시 회사 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사망 통보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가족들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됩니다. 어머님 특히 할머님이 되시겠는데 할머님에 대한 기억도 있으세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아, 물론이죠. 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 할머니께서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싸리문 옆에 서서 집을 떠난 삼촌을 기다리던 애처로운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또 고모님이나 동네 사람들이 놀러오시게 되면 없어진 아들을 생각하면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에 많이 보았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크면 이 한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일이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 하시마 탄광에는 삼촌분처럼 강제 징용된 한국인 얼마나 됐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노역하다가 목숨을 잃으신 건가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하시마 탄광 그곳에서만 600명의 조선인들이 징용됐고, 죽으신 분이 122명으로.
 
▷ 한수진/사회자:
 
하시마 섬이 악명 높은 무서운 별명까지 있었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하시마 탄광은 지리적인 여건상 나가사키 반도로부터 18km 떨어져있는, 헤엄쳐 도망칠 수 없는 섬이기 때문에 거기 입소가 되면 죽은 시체로만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해서 지옥섬, 감옥섬 또는 군함 모양이라고 해서 군함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얼마나 가혹한 고역을 치렀는지 혹시 또 다른 유족분들에게도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12시간 중노동에 잠자리는 저층에는 조선인, 고층에는 일본인 노동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또 밤이 되면 고향에 가고 싶어서 바다에 도망가서 헤엄쳐 한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 죽은 노동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또 참담한 하루하루를 견디다 못해서 자신의 몸에 다이나마이트로 몸을 묶고 불을 지르기도 한 분도 계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참...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일본의 만행을 증명해줘야 할 다른 유족분들도 이미 연세가 많으시고 또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시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거기서는 아까 말씀드린 그 숫자이지만 일본 전역으로 따지만 어마어마한 숫자가 8만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교수님께서도 이 섬에 하시마 탄광에 여러 차례 다녀오셨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그렇습니다. 6번 다녀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6번이요?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라든지 조그만 흔적 같은 거라도 찾을 수 있으셨습니까?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삼촌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유골이라도 고향 땅에 모시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무연고자 팻말이 달린 납골함도 직접 보셨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죠. 현재 우리 삼촌을 비롯한 122명이 무연고자 이름으로 해서 미쓰비시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금성사라는 사찰에 안치돼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니 이렇게 가족들이 다 살아있는데 말이죠. 무연고자, 이렇게 팻말을 달아놓고?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납골함에 방치를 해놨단 말이죠. 참 우리에게는 뼈아픈 하시마 섬인데 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하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참 우스운 얘기죠. 제가 1991년부터 하시마 조사를 하게 됐는데 한국의 대학 교수가 자기 삼촌이 어떻게 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일본 땅에 왔다고 해서 일본의 언론사들이 30~40개 정도가 제가 갈 때마다 출동해서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 열도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관광지가 되다 보니까 이것을 내세워서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하자고 그런 얘기를 한 거죠.
 
▷ 한수진/사회자:
 
그래서 실제로 지금 눈앞에 두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이곳뿐만 아니라 일본 산업시설이라는 명목으로 23곳을 지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거고. 이 가운데 강제 노동의 한이 서린 곳이 7군데나 되는 거고. 이 뉴스 보시고 어떤 심정이 드셨어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징용 노동자들이 그렇게 해서 죽었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런 것은 다 없던 거로 여기고 자기들의 국익만 챙기는 차원에서 이런 엉뚱한 짓을 하기 때문에 유족으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죠.
 
▷ 한수진/사회자:
 
지금 우리 정부가 좀 미리미리 제대로 손을 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건 좀 막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외교 정책의 실패다. 이런 비판도 있는데 어떠세요? 유족 입장에서도 정부에 섭섭한 점이 있습니까?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일본에서는 이미 3,4년 전부터 말도 안 되는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돈도 뿌리고 위원들도 만나고 다니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그런 걸 별로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까 오늘날 이 지경이 돼서 결론적으로 볼 때는 우리나라의 외교 정책은 정말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정부 측에서는 자문기구에다가 뭘 보냈다, 열심히 여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유족 입장에서는 전혀 손을 쓴 것 같지 않다, 이 말씀이시군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많이 섭섭하단 말씀이시고요. 지금 강제 노동과 관련해서 임금 미지급된 임금 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최근에 노동 임금에 대한 자료가 발견되기도 했다면서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군정이 1950년 5월 1일자로 발표한 중요한 문서를 찾게 됐습니다. 거기에 보면 미국 군정청에서 일본 기업으로 하여금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착취한 노동 임금 금액이 나와 있는데 그것이 약 3,700만 엔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걸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30 내지 40조원 상당의 돈이 되는데 이런 중요한 문서를 찾게 돼서 한국 사회에 이런 돈이 일본에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돼서 한때 당황스러운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미지급된 임금이 지금 일본 법무성에 있다는 거죠?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분명하게 10년이 지나면 국고에 환수하도록 돼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고에 환수하지 못 하도록 명문화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돈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찾아오라는 주장이 있죠.
 
▷ 한수진/사회자: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거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래야죠.
 
▷ 한수진/사회자:
 
지금 일본 정부는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고. 우리 정부는 어떻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별로 관심이 없고 옛날에 한일회담 때 그것은 이미 얘기가 끝난 거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제 주장은 이건 개인이 노동을 해서 번 돈이기 때문에 국가 간에 그런 문제에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분명히 개인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우리 조선 한국인 징용자 수만 명의 한이 서려 있는 시설들, 세계문화유산 되는 거 우리 정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막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복렬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유족회장:
 
네, 감사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하시마 한국인희생자 이복렬 유족회장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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