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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세기의 대결' 현장 취재…'돈 잔치'의 끝판 왕?

[월드리포트] '세기의 대결' 현장 취재…'돈 잔치'의 끝판 왕?
 ‘세기의 대결’, ‘평생 두 번 보기 힘든 빅 매치’…바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복싱 경기에 대한 수식어들입니다. 현지시간 지난 금요일, 취재기자도 주말을 온전히 반납하고 라스베이거스 출장 길에 올랐지만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한국의 복싱 팬들은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관중에 비하면 그나마 조금 나을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써야 했으니까요. 
박병일 취파
▲ 계체량 행사
 
경기가 열리기 전날, 두 선수의 계체량 행사를 취재하러 MGM 호텔 아레나로 향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10달러의 입장권을 팔고 행사를 공개한다고 해서 그 또한 이슈가 됐죠. 계체량 행사는 바로 경기가 열린 바로 그 장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취재가 허용된 만큼 카메라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3시간 전에 들어갔지만 이미 카메라를 놓을 곳조차 없을 만큼 취재 석이 꽉 차 있었습니다. (다행히 한 필리핀 방송사가 자기 옆 자리를 양보해준 덕에 목 좋은 곳에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1만 6천 석 역시 꽉 차 있었습니다. 10달러씩 따져도 16만 달러, 우리 돈 1억 6천만원입니다. 행사 주최측은 이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경기 당일 링 주변 좌석이 1만 달러 (비매 입장권)니까 16좌석 가격밖에 안 되는 셈입니다.
 
이미 보도를 통해 보셨지만, 이번 경기 입장권은 최소 165만원부터 830만원대에 달합니다. 또 링 주변 좌석은 1만달러(1천1백만원)입니다. 판매한 입장권은 165만원짜리 5백장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경기 관계자나 가족들, 유명 인사들에게 배포됐다고 합니다. 165만원짜리 좌석은 경기장 좌석의 맨 위층 꼭대기입니다. 링 안의 선수들이 잘 보이지 않아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게 더 나은 그런 좌석입니다. 
박병일 취파
▲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
 
경기 당일, MGM 호텔 안 곳곳에 암표 상들이 보였습니다. 슬쩍 관심을 보여봤습니다. 3천 달러(330만 원)를 부르길래 좌석이 어딘가 봤더니 165만원짜리 좌석이었습니다. 제일 싼 좌석은 흰색 종이(일반적인 티켓 모양)로 돼 있는 반면, 나머지 비매품 입장권은 길이 15센티미터에 폭 10센티미터 가량의 초록색 용지가 비닐커버로 씌어져 있습니다.

 비매품인 이 초록색 입장권을 파는 암표상도 만났는데, 7천 달러 (770만원)을 부르더군요. 좌석이 어디인지는 보여주지 않았는데, 아마도 2천5백달러짜리 (270만 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기장 입장권은 좌석 위치에 따라 1500, 2500, 3500, 5000, 7500, 10,000달러까지로 나뉩니다)   
박병일 취파
박병일 취파
▲ MGM 호텔 로비에 만들어놓은 링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암표 상들이 다가옴
 
사각 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의자를 죽 붙여놨는데, 아마도 링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좌석이 제일 비싸다는 1만달러짜리 일 것이고, 링 코너 쪽 좌석이 7천5백달러짜리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이 사각 링을 기준으로 스포츠 계와 연예계 스타들이 한쪽 링 사이드 좌석에 자리가 배정됐는데, 경기 전에 스타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을 때마다 관중석 전체가 휴대전화를 꺼내 찍느라 난리였습니다. (아무리 줌인 해도 보이지 않을 듯한 높은 곳에서조차 휴대전화를 꺼내더군요) 다른 링 사이드 좌석은 선수 가족들이나 프로모터 들, 그리고 복싱 관계자 등에게 배당됐습니다.

 유명 영화배우인 ‘마크 월버그’조차도 링 사이드 좌석 가운데 맨 끝 열에 앉았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명사들이 왔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링 사이드 바로 옆 좌석은 3억원에 거래됐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암표 상 말고도 합법적으로 티켓에 웃돈을 받고 파는 ‘세컨드 마켓’이 있습니다.) 
박병일 취파
 한국에서는 SBS가 무료로 생중계했습니다만, 정작 경기가 열린 미국에서는 이 경기를 보려면 유료 채널을 통해 99달러를 내고 봐야 합니다. 유료 채널 연간 가입비가 아니라 단지 이 경기 하나만을 보는데 10만원을 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다 보니, 복싱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여러 명이 돈을 모아서 한 집에 모여서 보기도 하고, 아니면 중계권을 산 대형 식당에 가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LA에서는 두 곳의 식당이 입장료를 받고 중계했는데, 중계료가 5천 달러 (550만원)이나 하다 보니 이 두 식당 외에 다른 식당들은 감히 엄두를 못 냈다고 합니다.  
 
취재하면서 이 경기를 보려고 덴마크에서 온 사람도 만났는데,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어떻게든 입장권을 구해보겠노라고 미국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복싱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끝내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MGM 계열의 호텔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또한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취재기자가 MGM 그랜드 호텔 내부를 수소문해서 대형 스크린이 있다는 곳을 찾아가 봤는데, 다름 아닌 호텔 1층에 있는 백 여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바’ 였습니다. 바의 오픈 된 벽과 입구는 돈 안내고 보는 ‘무전관람’을 막기 위해 검은 천으로 막아놨고 그 주변에 덩치 큰 미국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이 바에 들어가는 입장료만 150달러 (16만원)이었습니다. 물론 들어가서 음료나 음식을 따로 시켜야 합니다. 그나마도 이미 매진되는 바람에 이 바에 들어가는 입장권마저도 5배 가까운 웃돈을 붙여 암거래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TV 보도를 통해 비판 기사가 나왔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돈을 내는 만큼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니까요. 
박병일 취파
▲ 이날 경기 주최 측은 트위터로 승자 예측 행사를 진행했는데 전문가들 예측과 달리 파퀴아오 승리를 더 예상했음
 
취재기자는 링 사이드의 중계석과 취재석 쪽에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취재는 불허했습니다. 아예 입구에서부터 카메라를 반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취재를 하려 했지만 이 또한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복싱 팬들이 포스터 앞에서 사진 찍고 있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하자 보안 요원이 달려와 가로 막았습니다.

 미국은 사유지와 공유지 개념이 엄격해 사유지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취재했다가는 시큐리티 (보안요원)들이 몰려와서 카메라를 빼앗거나 촬영 분을 지우게 합니다. 경기장 내에서도 취재기자가 휴대전화를 꺼내서 동영상 촬영을 하려니까 10초도 안돼 어디선가 보안요원이 달려오더니 ‘No Video!’를 외치더군요. 그러니까 스틸 샷만 찍으라는 겁니다
 
경기장 내부에는 거의 10미터 간격으로 보안요원이 서 있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누구도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3분짜리 라운드가 지나고 1분 쉬는 동안만 서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관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겠지요. 동시에 누군가 좌석을 이동해서 앉는 모습을 포착하면 금새 달려와 입장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내쫓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네들의 중계권을 지키고 입장권을 지키려는 조치로 해석됩니다. 그래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여러 번 보도됐습니다만, 이번 경기 대전료만 2억 5천만 달러 (2680억원)입니다. 메이웨더가 1억 5천만달러 (1619억원)을 파퀴아오가 1억 달러 (1199억원)을 챙겼습니다. 12라운드를 했으니 두 선수가 1초당 1억 2천만원을 벌어들인 셈입니다.

 메이웨더는 자기가 만든 회사인 TMT 소속입니다. The Money Team의 약자인데, 메이웨더 별명이 Money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단 두 차례 경기로 1억 5천만 달러를 벌어 들여 스포츠 선수가운데 연간 수입 1위를 차지했습니다. 친구에게 슈퍼 카를 선물하는 등 대놓고 재력을 과시하는 전형적인 배금주의자입니다. 미국 자체가 워낙 그런 나라긴 하지만 말입니다.
 
박병일 취파
▲ 메이웨더의 전용 버스
 
이번 경기가 열린 주말 기간,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호텔은 평소 주말보다 3배 넘는 호텔 숙박료를 받았습니다. 뭣 모르고 우연히 이 기간에 휴가를 잡아 라스베이거스를 놀러 온 여행객들은 덩달아 비싼 숙박료를 문 셈입니다. 세기의 대결을 기대하고 미국 전역에서 달려온 복싱 팬들은 교통비는 물론 비싼 숙박료에 암표 값 (아니면 경기를 방송하는 바 입장료)으로 엄청난 돈을 써야 했을 겁니다.

 그런 복싱 팬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는 1초당 1억 2천만원을 벌면서도 전세계가 그렇게 기대했던 세기의 대결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돈만 챙긴 허세 쇼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습니다. 2박 3일 취재를 끝내고 일요일 오후 LA까지 꽉 막힌 사막 도로를 5시간 넘게 달려오면서 취재하러 갈 때와는 달리 엄청난 피로감이 밀려왔던 것도 실망과 배신감이 컸던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세기의 대결을 보겠다며 큰 기대감을 갖고 라스베이거스를 찾아 와, 바가지 상술을 고스란히 참아냈던 다른 복싱 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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