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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케시마'로 이름 붙여진 독도 자생식물들의 아픔

독도 자생식물 학명에 왠 '다케시마'?

[취재파일] '다케시마'로 이름 붙여진 독도 자생식물들의 아픔
▲ 섬초롱꽃

독도에 사는 우리 식물, 섬초롱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름에 종처럼 생긴 하얀 꽃이나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추위에 강하고 바닷가 산기슭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 민족의 특성을 많이 닮았다. 울릉도나 독도의 바닷가에 주로 서식했다. 요즘은 공원의 화단이나 자연학습원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고유종이다. 한국에만 자생하는 우리 식물이라는 의미다. 섬초롱꽃의 학명은 'Campanula takesimana' 이다. 라틴어로 종이나 방울을 뜻하는 '캄파눌라'는 이해하겠는데 우리 독도를 부르는 일본어 '다케시마'가 붙어있다.
표언구 취재파일
▲ 섬초롱꽃

학명은 국제 명명규약에 따라 표준화된 학술 이름이다. 만국 공동 명칭이란 얘기다. 학계에서는 가장 권위를 갖춘 단 하나의 이름이라고도 부른다. 식물의 학명은 라틴어로 표기된다. 앞에는 속명(屬名)이 붙고 뒤에는 종소명(種小名)이 붙는다. 종소명 뒤에 식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붙기도 한다. 섬초롱꽃의 학명에는 종소명 부분에 독도의 일본어 명칭인 '다케시마'가 기분 나쁘게 붙어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섬초롱꽃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표언구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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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장대

섬초롱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외형은 훨씬 수수한 우리 풀, 섬장대다. 마찬가지로 독도 자생식물이다. 섬초롱꽃처럼 바닷가 산기슭에 잘 자라고 많이 분포돼있다. 5~6월에 하얀색 꽃이 핀다. 이 섬장대의 학명은 'Arabis takesimana Nakai'다.  역시 '다케시마'가 들어있다. 종소명에 '다케시마'가 들어갔고 뒤에 이 식물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일본인 학자 나카이의 이름이 붙어있다.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라는 일제시대 일본인 식물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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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기린초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인 섬기린초다. 역시 독도 자생식물이다. 여름에 노란색 꽃이 핀다. 이 식물의 학명은 Sedum takesimense다. 역시 독도를 부르는 일본어 명칭 '다케시마'가 들어있다.  섬초롱꽃, 섬장대, 섬기린초 뿐만아니라 이렇게 울릉군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는 이렇게 독도의 일본명인 '다케시마'나 일본학자의 이름이 포함된 식물이 32개나 된다.


● 식물학계는 여전히 일제시대?
표언구 취재파일
독도를 'Dokdo'로 표기하느냐,  'Takesima'로 표시하느냐는 민족적 관심사다. 동해를 'East sea'로 표기할 것인지 일본해 즉 'Sea of Japan'으로 할 것인지와 비슷하다. 한·일의 첨예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제기구나 외국 언론사가 어떤 표기를 했는지는 그때마다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2년 전 외교부가 외국에 나가있는 우리 공관에 'Dokdo'나 'Takesima' 표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가 국정감사에서 지탄을 받은 적도 있다. 외교부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병기를 인정한 것"이라는 애매한 해명으로 넘어갔다. 그 만큼 독도는 어느 곳에서도 'Takesima'가 될 수 없고, 그렇게 표기돼서는  안 되는 것이 국민 정서다.

하지만 우리의 풀과 나무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도의 우리 식물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대부분 일제 때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조선에 식물 분류학은 태동도 안했을 시절이니 일본 학자의 독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나카이 다케노신이 그런 학자다. 나카이는 1910년 한국에 왔다. 당시는 그저 식물학도였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자금과 무장병력까지 지원받아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 전체를 뒤졌다. 말을 타고 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해 분류하고 이름을 붙였다. 채집해 일본을 가져간 것만 4천1백종에 이른다. 그리고 한국 식물과 관련 고전과도 같은 저서를 남겼다. 그를 도운 한국인도 있었다. 그의 잔재는 우리 식물학계에 아직도 이어진다는 평가다. 그래서 한국 식물학 발전에 나카이의 공로가 크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 연설에서 주변국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 말과 같은 연장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제가 강도짓을 한 것처럼 나카이도 우리의 식물 주권을 유린한 원흉일 뿐이다.  
표언구 취재파일
금강초롱

그런 일제 수탈의 상징이 돼버린 우리 식물이다. 섬초롱꽃과 비슷한 모양을 한 초롱과의 다년생 식물인 금강초롱이다.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종으로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한 초롱꽃이라는 의미로 금강초롱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식물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ka Nakai'로 명명됐다. 초롱을 뜻하는 라틴어 Campanula 대신에 Hanabusaya가 들어갔다. 이는 한·일 합병 당시 초대 일본공사인 하나부사 요시카다(花房義質,1842~1917)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나카이의 한국행을 도운 사람이다.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금강초롱의 학명에 하나부사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종소명에도 koreana 대신 asiatica를 넣어 일제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상징화했다. 금강초롱은 심지어 하나부사의 한자어를 그대로 따라서 '화방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나카이의 행위는 학자적 양심이나 상식을 벗어난 행위다. 조선총독부의 초대 총독은 데라우치 마사타게(寺內正穀, 1852~1919)다. 그의 이름을 라틴어로 표현한 것이 terauchi로 우리 백합과 식물에 그의 이름을 넣어 학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땅에 자생하는 식물들 중 일제 때 학명이 붙은 것은 대부분 일본인이나 일본어 명칭이 들어갔다.

산림청 소속 부서 식물분류학 박사들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학명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식민지였던 나라의 식물은 비슷한 운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법적인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학계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다른 소장 학자들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우리 식물학계에 '나카이'로 대표되는 식민시대 잔재가 얼마나 남아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다만 정부는 물론 학계도 일제가 붙인 우리 식물의 학명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위한 국가적인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언론이나 국제기구가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에만 분노할 일이 아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우리 식물의 이름에 붙어있는 '다케시마'와 '나카이'를 없애야한다. 특히 몇 안 되는 독도의 자생식물부터라도 바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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