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네팔 지진 취재기 ② 해외 재난을 대하는 우리 정부와 네팔인

[월드리포트] 네팔 지진 취재기 ② 해외 재난을 대하는 우리 정부와 네팔인
우리들은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결, 질서, 배려, 양보 등의 미덕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세계가 과거보다 성숙한 결과일까요? 글쎄요, 네팔에서 지진 취재를 하면서 문명인 흉내는 환경과 여건이 마련됐을 때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네팔 카트만두에 들어오니 수도와 전기, 통신이 없었습니다. 딱 세 가지 기본 서비스가 없어지자 바로 야만인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씻지 못하니 청결은 사치가 됩니다. 생존이 담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배려와 양보 등은 아무래도 뒷전입니다. 살아남는 것이 선인 세상에서 질서는 공염불입니다.
네팔 지진 현장

네팔 지진 참상을 알리는 이런 기사들을 숱하게 보셨을 터입니다. 그래서 저는 네팔 지진 현장 취재를 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두 가지 점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같이 생각해볼 만하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해외에서 재난을 당한 자국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우리 정부의 기능에 대해서입니다.

히말라야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입니다. 세계의 지붕을 바라보며 대자연 속에 빠져들기 위해 매년 네팔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히말라야에서 트래킹을 즐기는 한국인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에게 이번 지진은 누구보다도 치명타였습니다. 산사태와 눈사태, 건물 붕괴, 교통 단절, 통신 두절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난을 종합 세트로 당했습니다. 이럴 경우 가장 먼저 누구에게 매달리겠습니까? 자국 대사관이나 공공 기관이겠죠. 하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실망했다는 불만을 쏟아 놓습니다.

"가까스로 통화가 됐더니 ARS 서비스가 나옵니다. 여권 관련 문의는 몇 번 어쩌고저쩌고. 어떻게 직원과 연결됐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현재 상황을 묻는 질문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뻔한 충고뿐이죠."

"어깨뼈와 엉덩이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고 구조대를 보내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현재 사정상 불가능하다고 그러더군요. 결국 프랑스가 전세를 내 자국민을 실어 나르는 헬리콥터에 겨우 한 자리를 얻어 카트만두로 나왔습니다. 물론 5백 달러 이상 내야했죠."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우리 일행 5명의 인적 사항과 위치를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떤 소식도 보내주지 않더군요. 우리끼리 걸어서라도 큰 도로까지 나가야 한다는 의견과 여진 때문에 위험하니 대사관의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논란 끝에 10시간을 걸어서 카트만두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다리는 것은 바보짓이었을 듯합니다."

"처음에는 수많은 국가의 외국인들과 함께 고립됐습니다. 그런데 매일 다른 외국인들의 숫자는 팍팍 줄었습니다. 자국 구조대가 헬리콥터를 동원해 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관광객 숫자가 많은 중국, 인도는 물론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 심지어 이스라엘 같은 곳은 1~2명을 구하기 위해서도 오더군요. 결국 마지막에 남은 외국인은 한국인뿐이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슴이 참 아팠습니다."
네팔 지진 현장

지진을 당한 네팔은 외국 관광객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비행기 편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자국 교민들의 귀국을 돕기 위해 중국은 지진 발생 첫날부터 특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 후에도 매일 같이 중국행 비행기 편을 증편했습니다. 네팔과 가까운 인도는 지진 이후 수백 편을 증편했습니다. 네팔 상권을 쥐락펴락하던 그 많던 인도인들이 지금 싹 사라졌습니다. 인도 정부의 도움 아래 자국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유럽 여러 국가들도 너도나도 특별 전세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지진 발생 엿새 만에 처음으로 특별기를 마련해 네팔에 보내왔습니다. 비행기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부상자들은 그 엿새를 진통제를 먹어가며 버텨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8시 뉴스를 통해 특별기 마련이 너무 뒤늦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네팔 지진 현장

그러자 외교부 담당 간부가 SBS 보도국에 격하게 항의했습니다. 항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도와 중국은 사람 수가 많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특별기를 빨리, 많이 동원한 것이다."

그러면 묻고 싶습니다. 지진 당시 네팔에 우리 관광객이 1천 명 넘게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주 네팔 한국 대사관은 네팔 내 한국인 관광객의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네팔 정부가 입출국 기록을 수기로 작성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 분류해놓은 자료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수는 적은가요?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많아 어떻게든 알아서 오겠지만 오히려 멀기 때문에 특별기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이번 특별기는 2백60명이 탈 수 있는 여객기인데 반도 안 되는 1백1명만 이용했다. 그만큼 수요가 없었다"라고도 변명했습니다. 그것은 엿새 동안 우리 국민들이 이미 스스로 네팔을 탈출했기 때문이죠. 중국,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등을 경유하는 힘든 여정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특별기에 절반을 채우지 못한 것은 엿새 동안이나 늑장을 부린 결과일 뿐입니다.

사흘 전 제 8시 리포트에 인터뷰를 해주신 한 한국인 관광객은 인터뷰 후에 저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구하기 힘드니 도와 달라"고. 저 역시 여객기 자리를 구할 특별한 방안이 없어 쩔쩔 매자 "SBS가 외교부나 대한항공에 압력을 넣어 특별기를 마련하게 하면 안 되나요." 거의 울 듯 한 모습으로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주 네팔 대사관이 그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안위를 챙기고 구조 활동을 벌이며 교민들의 구호에 나서기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민들과 협조해 유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여지는 있었습니다. 우리 외교부에서 특별 예산과 긴급 구호단을 편성할 수도 있습니다.

카트만두에서 제가 잠시 묵었던 숙소는 많은 트래킹 방문자들이 거쳐 가는 곳이었습니다. 숙소 사장은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 각지의 안내원들과 필사적으로 연락하며 우리 관광단체의 안위를 챙기고 빠져 나오는 방법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어디까지 빠져나오면 차량을 보내 카트만두로 후송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방안을 마련하고 제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카트만두의 선교사들은 사실상 대한민국의 긴급 구호대 역할을 했습니다. 각자가 사역지로 삼고 있는 곳, 아니 그 외의 지역에 사는 네팔 현지인들의 피해도 파악하고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고 복구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네팔에 주재하는 어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상황실보다 더 긴박하고 애를 태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는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무능을 목격했습니다. 하물며 국내에서도 그러니 해외에서 재난을 당한 자국민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재난을 대하는 네팔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네팔 지진 현장
히말라야 등산 중에 이번 지진을 겪은 사람들이 전하는 네팔인들의 모습입니다.

"진앙지 부근의 실상은 참혹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무너지고 파묻힌 곳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밭에서 일하다 대지진을 겪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온 네팔인들은 형체도 없이 무너진 잔해를 마주 하더니 가슴에서 짜내는 듯한 절규를 했습니다. 하지만 딱 10초였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잔해를 치우고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거예요. 생과 사에 대한 그들만의 관념이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산사태와 눈사태로 수많은 외국인 등산객들이 히말라야 산속 마을에 고립됐습니다. 갖고 간 식량이 떨어져 모두들 등산로 쉼터의 매점에서 과자 등을 사서 버텨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과자 값을 지진이 일어난 뒤에도 지진 전과 똑같은 가격을 받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자로 연명해야 하니 부르는 게 값일 텐데 말이죠."

"고립된 수많은 등산객들이 그나마 덜 파괴된 마을로 피신했습니다. 덜 파괴 됐다지만 진앙지 부근이니 오죽 했겠습니까? 완파 되지 않았다 뿐이지 대부분의 집이 열악한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피신한 등산객들에게 감자를 쪄서 주고, 밥을 해주고, 물을 끓여 줬습니다. 감사하다며 돈을 주려고 하면 한사코 손사래를 치면서요."

"지진 이후 가이드와 포터들이 안절부절 못하더군요. 집과 연락이 되지 않아 가족들의 안위를 모르겠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일행을 버려두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산길이 끊어져 버스가 다닐 수 있는 대로까지 꼬박 10시간을 걸어 나가야 했는데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와줬습니다. 그들 아니었으면 아마 아직도 산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네팔_640
이번 지진 취재기의 앞 선 글에도 밝혔듯이 네팔에 오는 내내 저는 근심걱정 했습니다. 우리 교민이나 관광객들의 고통, 또는 네팔인들의 아픔에 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현지가 혼란스럽다는데 제대로 취재를 할 수 있을까, 통신 사정이 좋지 않다는데 기사나 제작한 리포트를 어떻게 송출하지, 나만 지진 현장에 늦게 도착해 바보 소리 듣는 것 아닐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5천 명 넘는 사람들이 생명의 끈을 놓치고 그 수십 배의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현장에서 무슨 사치스런 고민이었나 싶습니다. 나도 언젠가 히말라야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대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네팔인들의 겸허함을 배워가야겠습니다.  

▶ [월드리포트] 네팔 지진 취재기 ① 카트만두로 가는 멀고 험한 길
▶ "실외로 대피" 문자만…정부 대처에 관광객 '분통'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